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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 :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는 마음
살면서 한 번이라도 이 감정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가만히 있어도 어딘가 서늘해지고 뜻 없이 과거를 복기하며 자신을 소리 없이 채찍질하는 이 감정들은 삶에 있어 가장 처치하기 힘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브런치를 떠난 한동안 캐나다라는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1년 간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당일은 내가 출국길에 기대했던 그것과는 너무 달라져있었다. 폐암, 그리고 그 암이 뇌까지 전이된 엄마의 상태는 단 한 달 만에 급격하게 나빠졌다. 내가 한국에 도착한 2023년 11월 1일, 엄마는 그날 중환자실(ICU)에서 더는 말할 수 없는 호흡기를 목에 끼운 채 고통받고 있었다.
캐나다에서 힘들고 우울함으로 묘사되는 날들도 많았지만, 난 대부분의 날들을 행복하게 보냈고 한국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자유로움이라는 감정을 느껴왔었다. 한국에서 27년 간,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그곳에선 정답이 아니었다.
반대로, 그곳에서 정답으로 생각하는 가치들은 한국에서는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는 그 공간의 차이에서 오는 숨통과 같은 자유로움을 충분히 즐겼다. 하지만, 그동안 엄마는 자신의 아픔을 숨기고 나의 괴짜 같은 삶을 지지하고 있었다.
비행기표를 바꾸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오는 귀국일정을 다시 잡았다. 그 기간 동안 캐나다에서의 나의 삶은 하루 종일 차가운 냉기가 내 몸을 감싸 안았고 손발은 매일 더 차가워졌다.
하지만, 때론 한국에 가고 싶지 않은 미친 마음까지 존재했다. 아픈 엄마를 마주할 자신도 없을뿐더러, 행복하게 지냈던 11개월에 대한 시간이 바보같이 느껴질 것만 같았다. 이제 난 한국에 가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것에 대한 고민도 배제할 수 없었다. 돌아간다면, 내가 느낄 그 죄책감의 크기는 나 스스로가 감당할 만한 수준의 크기일까?
한국에 돌아왔고, 내가 돌아온 지 정확히 22일 만에 엄마는 숨을 거뒀다. 중학교 때, 친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겪게 된 한 사람의 죽음이자 나를 세상으로 인도해 준 엄마라는 존재의 죽음이었다.
아, 도대체 이 세상의 인간들은 어떻게 '누군가의 죽음'을 제각각의 형태로 극복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분명 나만 이렇게 힘든 것이 아닐 텐데. 세상 사람들에 대한 경이가 생길 만큼, 죽도록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상속과 같은 엄마의 사후 문제가 정리된 후, 나는 태국으로 한 달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날이 24년도 4월 즈음, 그리고 내가 떠난 직후 16살의 반려견의 몸 역시 급격하게 좋지 않다는 연락을 받았다.
난 2주간의 태국에서의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2주간 반려견을 돌보았다. '돌보았다'라고 말하기도 나 자신이 떳떳하지 못할 정도로 미안한 감정만 들었던 그 마지막 추억들은 5월 2일이 돼서야 모두 끝이 나버렸다.
28년 간 날 키운 엄마라는 존재의 죽음과, 16년 간 내 옆을 지켜 줬던 반려견의 죽음을 6개월이라는 시간 안에 모두 겪어버리니 더는 집에 있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모두 그 존재들의 흔적들만 가득한 곳에서 슬픔을 온전히 극복하고, 내 삶으로 돌아오기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것만 같았다.
그로부터 19일이 지난, 5월 21일. 나는 싱가포르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떠나는 여행을 떠났다.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한 것. 이 뒤범벅된 감정들을, 그곳에 가면 잠깐이라도 잊고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치유받고 싶었고, 아무 생각 없이 900km를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삶, 눈을 뜨면 길을 걷기 시작하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맥주를 마시고 잠에 드는 그런 하루하루를 살고 싶었다. 아빠의 오래된 40L 가방에 짐을 싸며, 인천공항으로 떠나는 날. 28세, 여자, 혼자, 떠나는 그 여정을 보는 아빠의 눈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한 번도 안 메본 그 가방 들고, 어떻게 걸어 다니려고 그래?
인천 공항을 가는 버스를 타며 내가 아빠한테 뱉었던 말을 똑똑히 기억한다.
아빠, 원래 처음엔 다 힘들어. 처음이 다 그래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큰 백 팩을 등에 멘 사람은 나뿐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나만 보는 것 같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난 그렇게, 묵묵히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내 남은 여정에 대한 어떠한 확신 없이 산티아고 길을 향해 한국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