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현물 이벤트 상품의 최소 단위가 암묵적으로 정해진 듯하다. 이벤트 주체 브랜드가 무엇이든 간에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기프티콘을 최저 상품으로 지급한다. 아마 이디야에서도 이벤트를 진행한다면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기프티콘을 주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그렇게 이런저런 곳에서 받은 스타벅스 기프티콘은 신경 쓰지 않으면 몇 개씩 쌓이곤 한다. 이벤트만이 아니다. 언택트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부터, 어지간한 지인 간의 선물은 스타벅스 기프티콘 하나로 퉁치곤 했다. 적당히 챙겨야 하는 사이라면 커피 두 잔과 케이크가 있는 기프티콘을, 그냥 보내긴 해야 되는 사이라면 적당한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고 받았다.
다른 모든 것처럼, 기프티콘 소모하기는 너무나 쉽다. 스타벅스에는 예쁜 굿즈가 참으로 많(았)다. 그중 나를 사로잡은 건 머그잔이었다. 기프티콘이 대충 조금 쌓였다 싶으면 퇴근하는 길에 근처 스타벅스를 들러서 예쁜 머그잔을 사 오곤 한다. 간혹 가다 집에 친구들이 서넛 찾아와 커피를 대접해야 할 때도, 모두의 손에 스타벅스 머그잔을 쥐어줄 수 있다. 근처 스타벅스가 리저브 매장인 것도 참 다행인 일이다. 산미가 적고 바디감이 짙은 원두가 들어오는 달이면, 리저브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이러니 내 스타벅스 등급이 골드 레벨에서 떨어지기는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아, 물론 스타벅스의 본 기능에도 충실히 사용한다. 예전에 재형저축 만기를 맞아 나는 스타벅스 테이블을 차지하기 위해 나에게 조금 큰 선물을 했다. 바로 맥북 에어다. 다들 아시다시피 스타벅스에서 주문할 때, 마시고 갈 거라고 하면 맥북 소지 여부를 묻지 않던가(거짓말이다). 글을 쓰거나, 가벼이 영상 편집 등을 하러 스타벅스에 갈 때는 맥북 에어를 꼭 움켜쥐고 가곤 한다. 충전 케이블이나 어댑터는 가져가지 않는다. 맥북 에어의 배터리가 다 되면,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나곤 한다. 뭔가 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이 '있어빌리티'가 떨어지기도 하잖아.
예전에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것이 되게 멋지게 느껴졌다. 나에겐 커피는 레쓰비 혹은 조지아 외에 없었다. 편의점에서 이천 원 미만의 돈을 지불하고 얼음 컵과 커피 팩을 조립하면, 마치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테이크 아웃한 것과 비슷한 모습이라는 것에 상당히 놀라워 했다. 자신감을 얻고 싶을 때마다 그 방법을 애용하기도 했다. 밥 값에 버금가는 커피 값을 지불하는 것에 적응하는 것까지는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다. 조금 많이 오래 걸렸다.
이제 스타벅스 기프티콘은 새로운 재화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하지만 모두에게 통용되는 재화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방금 20대의 나에게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선물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20대의 나는 받고서 좀 더 있어 보이게 쓸 기회를 노리다가 유통기한을 지나버리고 후회할 듯하다. 다이소가 아닌 곳에서 컵을 사기도 하고, 가끔은 백반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다음 주 끼니 걱정 없이 주말을 즐길 수도 있는 30대의 나. 그런 지금의 나에게나 적용되는 재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