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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블블랙 May 21. 2021

내 첫 스타트업을 퇴사하면서 얻은 것

내 20대 마지막 해. 내가 처음으로 몸담은 스타트업을 퇴사했다.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던 걸 보면, 온건히 내 의도는 아니었다. 난 그 회사에서 4년이 안 되는 동안, 세 개의 상품을 개발부터 서비스까지 참여했다. 정말 귀중한 경험이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정말 귀중한 경험이었다.


퇴사 당시에는, 함께 일하던 동료분들에 비해 내 경력이 워낙 일천한지라 자세한 내용은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눈치 없던 내가 느낄 정도로 분위기는 조금씩 나빠져만 갔었다. 하지만 당시 대표님이 모두를 불러 모을 때도 난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대표님은 말이 잘 정리가 안 되는 듯 평소답지 않게 서두를 길게 끌으셨지만,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았다.


퇴직금과 월급 한 달 치를 지급할 테니 다들 나가라.


부끄럽게도, 난 퇴사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내 역량이 성장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었고, 뭔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달라져야 하는 것에는 내 마음가짐만이 아니라 주변 환경도 포함되어 있었다. 주변 환경, 그중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소속된 회사가 내 의사와 무관하게 바뀌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바뀐다기보다는 없어지는 거지만.


난 놀랍게도 차분했다. 실업급여를 신청했다. 아주 신중하게, 다음 회사를 알아봤다. 합격 통보도 꽤나 많이 받았다. 실업 급여를 반 정도 타고나서, 천천히 고른 회사는 아예 새로운 플랫폼을 경험할 수 있는 회사였다. 그 이후로 좋은 기회가 있어 2021년 현재 몸담고 있는 회사로 이직하여 만족스럽게 재직 중이다.


지금까지 이쪽 업계 밥을 먹고 있으면서, 스타트업을 경험한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정말 아쉽게도, 스타트업의 마무리가 좋았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임금체불로 국가의 도움을 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경험은 반 정도가 갖고 있었다. 와중에는 결국에 포기한 사람도 제법 있었다. 그네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하면 다들 놀라워했다. 그런 분이 계시냐면서. 나도 새삼 내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곤 했다. 그러게요.


그런 이야기를 그네들과 하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그 대표님 생각이 한창 들곤 했다. 그 대표님은 열정이 넘치시는 분이었다. 첫 상품을 개발할 당시, 내가 작업하고 있던 부분이 있었다. 폴리싱이 필요한 상태에서 우선 퇴근을 하고, 다음 날 출근해서 그 부분을 보면 이미 폴리싱이 되어있었다. 그 대표님은 그런 식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챙기는 플레잉 코치였다. 그렇게 열정이 넘치던 당신께서, 양심없이 몇 개월 더 버티면서 기회를 노려볼 수 있는 길을 포기하고 모두에게 퇴직금과 월급을 챙겨준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나중에야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건 '의리'였다. 고용주와 고용인간의 '의리'였다. 대표님 당신께서도 고용주이기 전에, 한 명의 활활 불타오르는 젊은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불을 애써 잠재우면서 고용인들에게 '의리'를 지킨 것이다. 너무 늦게 깨달았다. 대표님 당신께서 의리를 지켜주셨을 때, 난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다행히도 그 대표님께서는 당시보다 더 큰 회사를 운영중이시다. 당시 같이 일하던 분들도 그 회사에서 함께 계시는 걸 보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난 스스로 결론을 내린 이후, '의리의 사나이'가 되었다. 지금 회사에서는 나에게 비전과 방향 제시를 통해 원동력을 부여한다. 난 회사의 그 비전과 방향에 부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성과를 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지금 회사와의 관계를 단순히 법적인 고용주, 고용인의 관계로 인식하지 않는다. 일방적인 파기 가능한 계약 관계가 아닌, 의리로 생각하고 있다. 내가 첫 스타트업을 퇴사하면서 얻은 것. 바로 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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