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속에서 질서를 잡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까?
혼돈 속에서 질서를 잡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열역학 제2법칙을 깨고 살아갈 수 있을까?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엔트로피는 증가할 뿐 감소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 에세이지만, 읽고 나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철학서처럼 느껴졌다. 저자가 의문을 가졌던 생각들이 100년 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행했던 일들과 맞닿아 있다. 그는 자기 믿음에 대한 확신과 집착이 어떤 충격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혼돈이 그 사람을 집어삼킬 것이다." 혼돈에 항복하기를 거부하는 저자 룰루 밀러는 우연히 발견한 100년 전 인물 데이비드 스타 조던를 롤 모델로 삼으려 했다. 그가 존경했던 사람이 사실은 역겨운 인물이었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이 너무 강한 나머지, 이성도 무시하고 도덕도 무시하고, 자기 방식이 지닌 오류를 직시하라는 수천 명의 목소리도 무시해 버린 남자." (p.203)
룰루밀러가 롤모델을 삼으려고 했던 데이비드의 삶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오히려 그의 삶을 통해, 집착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마치 처음엔 좋은 이미지로 생각했던 사람이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그런 사람이 아닌 것처럼. 그래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더 파보기로 한 것처럼 저자도 데이비드의 삶을 쫓아 가본다.
혼돈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려던 시도는 처음에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집착을 낳았다. 데이비드는 어류 체계를 완성하려는 과정에서 많은 숨은 진실들을 무시했고, 결국 그가 평생을 바쳤던 '어류 체계' 속의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왜 그는 평생을 어류에 몰두했을까? 그가 자기 믿음에 대한 오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더 끔찍한 것은 그가 우생학을 현실화했다는 점이다. 페니키스 섬에서 만난 루이 아가시가 데이비드의 정신에 '자연 속의 사다리' 개념을 심어주었고, 그 개념은 '박테리아에서 시작해 인간에 이르는 객관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하는 신성한 계층구조'였다. 이에 따라 데이비드는 인간을 우월한 자와 도태되어 제거해야 할 자로 분류하고, 이를 실행에 옮겨 자궁을 묶는 방식으로 도태되어야 할 사람들을 제거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주는 교훈은 자기 고집과 확신, 그리고 확증 편향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은 '민들레 법칙'이다. 누군가에게는 쓸모없어 보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유용할 수 있다. 즉, 중요하지 않은 존재는 없으며, 다윈의 철학처럼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실현 가능성이 많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결과를 보기 위해 계획하고 실행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우리가 살면서 실현불가능하거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나가는 것이 과연 옳은 행동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이 그저 공상은 아닐까. 내가 생각하고 계획했던 것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닌지, 그저 우리는 우주의 수많은 먼지 중 하나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다시 점검해보아야 할 시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