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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Jul 04. 2021

1화. 내 이름은

호칭

‘호칭’에 익숙해진다는 건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어릴 땐 몰랐다. 이름을 지켜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어릴 적엔 내 이름 석자만으로 살 수 있었는데, 나이가 들고 나서부터는 ‘호칭’이 내 이름을 대신해서 사용된다. 직장에서는 이름 대신 직급으로 불리고, 그 외는 직급 또는 소율 엄마, 며느리, 사모님으로 불린다.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남편과 친구뿐이다. 어릴 땐 나를 내 이름 하나만 불렀기 때문에 이름으로 불리는 게 당연했는데, 이젠 이름으로 불리는 게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내 이름을 지켜내고 싶었다.      

      

결혼 전엔 ‘예비신부님’로 불리는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결혼 후 임신이 되고 ‘임산부’나 ‘어머니’라 불릴 때도 어색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보니 ‘어머니’는 괜찮지만, ‘소율 엄마’는 영 어색하다. 

가족에게까지 내 이름이 아닌 소율 엄마로 불리긴 싫었다. 

엄마는 내 아이에게만 허락할 수 있는 호칭으로 주고 싶다. 


아이 엄마 대신 평소 부르던 대로 내 이름을 불러주길 바랐다.  왜일까? 왜 내이름에 갈망했던 것일까?       

어릴적에 엄마의 이름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는데, 그이유를 생각해보니 엄마의 이름으로 불러주는 곳은 많이 없었다.  엄마는 주부이셨는데, 집에서 아빠마저도 엄마 이름을 내 이름 뒤에 엄마를 붙여서 ‘기쁨 엄마’ 또는 ‘기쁨아’라고 불렀다. 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바로 엄마를 부르는 호칭이었던 것이다. 

자연스레 엄마의 이름이 사라지는 것을 본 나는 엄마 스스로 자신 이름으로 살아가길 바랐다.

나도 미래에 엄마라는 직책이 되면 내 이름이 사라질까 봐 그런 게 아닐까.

       

아이를 낳고 처음 맞이한 내 생일날, 

가족은 나의 생일 축하와 더불어 아이의 엄마가 된 걸 축하해 주었다. 


“소율 엄마~ 축하해”

라고 엄마의 축하를 받았다. 아이를 가지고 전업주부가 된 나는 가족에게만큼은 내 이름을 지키고 싶었다. 나는 내 이름으로 살고 싶으니 기쁨이라고 불러달라고 말했다. 아빠는 유난이라면서 엄마가 되는 게 싫은 거냐고 말했고, 엄마만 그저 가만히 끄덕거렸다.           


‘그런 건 아니라고, 내가 엄마가 돼서 기쁘지만, 나는 나의 존재로 불려주길 바랄 뿐이라고.      

그저 내 이름이 아닌 소율 엄마로 불리지 않는 것 가지고 엄마가 된 걸 싫어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다.      


내가 엄마가 되어도 나는 기쁨이니까. 내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듯, 엄마 아빠에게 어여쁜 딸, 기쁨으로 남고 싶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 이름으로 불리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그 이상 그 이하의 생각은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며,  엄마라는 호칭은 내 아이에게 주고 싶을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순간 잠잠해졌지만, 모두 동의해 주었다. 그 이후 나는 내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번 경험으로, 호칭은 남에게 불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지켜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배웠다.


이름은 불러주는 이가 있을 때 반짝거린다.

오늘, 당신의 이름을 소중하게 불러주는 이가 있는가? 있었다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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