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uxley Oct 10. 2023

당신을 덜 좋아하기로 했다.

  매튜 매커너히 주연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끊임없이 나오는 키워드가 하나 있다.     



  사랑.     



  영화는 사랑의 힘에 관해 끊임없이 설피한다. 사랑을 위해 가망 없는 행성에 착륙하고, 어린 딸을 생각하며 블랙홀 속에서 무모해 보이는 시도를 한다. 영화에서의 사랑은 우주적 존재로서 기능한다.   


   

  나는 사랑을 생각한다. 사랑을 원하고, 사랑을 주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언젠가 친구와 통화했을 때, 친구는 내가 헌신적인 사랑을 갈망한다고 말했다. 가정적이고 아가페적인 사랑을 추구한다고. 그래서 스스로를 몰아세운다고. 그렇게 말하며 나의 사랑은 지대한 관심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집착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니 조심하라고. 친구의 말을 새기며 나는 나의 사랑이 나와, 내가 좋아하는 사람 모두를 잃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두려웠다.     



  대체 사랑이 뭐길래 나는 그것에 목멜까? 잠시 생각해보자면, 그리고 지난날들을 톺아보자면, 두 개의 사건이 있었다. 그 일들은 내게 결핍과 두려움을 안겼다.

  열일곱 살에는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다. 적응하지 못했다. 낯가림이 심했던 나는, 친한 친구 하나 없던 먼 곳의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왜 굳이 그리도 먼 학교로 갔느냐고 묻으면, 중학생 시절에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이 있었기에, 라고 답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을 피하고 싶었고, 매일 보던 아이들과 매일 보던 동네에 질려버려 새로운 환경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원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런 포부는 처참히 부서졌다.

  아이들은 나를 꺼렸다. 나는 그런 아이들의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갈 수 없었다. 말 한마디 쉽게 붙일 수 없었고, 함께 급식을 먹을 아이조차 없어 점심을 거르기 부지기수였다. 혼자 텅 빈 교실에 남아 시간을 죽이던 참담한 심정은 여전히 떠올리기 힘들다. 

  아이들은 앞에서도 나를 비난했고, 뒤에서도 비난했다. 그러며 벌레를 쳐다보듯 나를 쳐다봤다. 언젠가 문제집과 책상에는 치욕적인 낙서가 그려져 있었고, 나의 옆자리에 앉게 된 아이에게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낸 아이도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던 그 날의 비난들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코 잊지 못한다. 

  여담이지만, 그런 못된 아이들 사이에서도 내게 잘해주던 아이들이 있었다. 가뭄 속 다행이었다. 그렇기에 그 아이들과는 여전히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스무 살에는 첫 연애를 했다. 안타깝게도 으레 첫사랑이 그렇듯, 얼마 가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첫사랑의 클리셰를 나라고 이겨낼 수 없었다. 그저 두루뭉술하게 말하자면,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었다. 스무 살의 나는 너무 어렸고, 너무 미숙했다. 그래서 그분을 품기에는 나의 마음이 지나치게 좁았다.

  미치도록 후회했다. 지금은 모두 극복했고, 그분을 더는 생각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지옥을 사는 기분이었다. 일 년 동안 잠만 잤다. 나의 스물한 살은 기억조차 하기 싫은 한 해로 남게 되었다. 스물두 살이 되었어도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고, 가끔, 하지만 아주 둔중키도 생각나던 그분이 새로운 애인이 생겼을 때는 소주 세 병을 맥주잔에 부어 물처럼 마셔댔다. 처음이었기에 그랬을까. 덕분에 나의 이루던 많은 요소가 변해버렸다.     



  위 두 사건으로 인해 나의 가치관과 자아는 아주 커다란 변곡점을 맞이했다. 

  누군가에게 또다시 버림받게 될까, 누군가에게 또다시 멸시당하게 될까 봐. 그것이 주던 총체적 감정은 죽음보다 두려웠다. 과장을 보태지 않고.     



  또다시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천성적으로 배려니 다정함이니, 그런 따스한 심성과 거리가 멀던 나는 지나칠 만큼 공부하며 연습했다.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따듯한 글을 썼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     



  나의 관계는 늘 불안정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실수, 그러니까 아주 작은 실수 하나로 당신과의 관계가 박살 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나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면 당신이 나를 떠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무서웠다.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지나치게 헌신적인 사랑이 시작되었다. 누군가에게 한없이 무언가를 퍼다 주어야 마음이 편했고, 당신과의 관계를 지켜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특히 연애에 있어서 철저한 을의 연애를 하게 되었고, 당신의 작고 사소한 변화 하나에 나의 심정은 지옥을 맛봤다.   


  

  사람은 당길수록 멀어진다는 말. 나는 지나칠 만큼 나의 감정을 표현했다. 과거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일이 왜 부담스러운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상대에게도 마냥 기분 좋게 다가올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늘 마음을 표현하는 일을 좋아했고, 그것에 중독된 사람처럼 지나치게 나의 감정을 스스럼없이 퍼부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지기로 마음먹었다.

  그간의 나는 속도 조절 따위 하지 않았다. 당신을 향한, 당신 마음의 속도를 향한 배려심이 부족했다. 어떻게 발맞춰갈지, 어떻게 진심 어린 모습으로 다가갈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느낀 바가 있다. 당신을 덜 좋아하기로 했다.     



  당신을 덜 좋아해야, 당신을 좋아하는 나와, 내가 좋아하는 당신을 지킬 수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의 관계가 이어져 발전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보다 감정 표현을 절제하고, 적당한 수준의 마음을 보여주는 일. 그것이 우리 사이에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무작정 얼굴을 들이미는 누군가를 아무도 좋아하지 않으니깐. 당신의 심정에서 당신을 이해하기로 했다.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당신을 좋아하기 위해 당신을 덜 좋아하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