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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xley Oct 14. 2023

수수한 사람


  수수한 사람이 좋다.     



  여름에는 리넨 소재의 옷을 입고, 겨울에는 그리 비싸지 않은 옷을 꼭 맞듯 소화해내는 사람. 화려하지 않고, 그를 향한 시선 속에 그리 거슬리지 않는 요소가 한가득 채워진 사람. 모나지 않은 스타일의 누군가를 좋아하는 편이다.

  성격도 마찬가지. 그가 입는 수수한 옷차림처럼 부드러운 성격을 가진 사람이 좋다. 자극적인 피자보다는 슴슴한 맛의 식빵을 좋아하는 것처럼, 나는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그간 지나치게 자극적인 존재들에게 적셔진 채로 살았던 탓일까, 요즘은 모나지 않은 존재에게 마음이 간다. 길가의 고양이, 연한 아메리카노, 잔잔한 노래. 세간의 뾰족뾰족한 존재들로부터 지켜주고픈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너희가 비를 맞지 않았으면 좋겠고, 나는 비가 올 때면 너희들에게 우산을 씌워주고파. 뭐, 그런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런 존재들에게서 세상의 희망을 꿈꾼다. 밝고 폭신한 아이들이 지켜져야 세상이 맑아진다고. 구름 아래와 지구 위의 모든 모난 존재가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모나지 않은 존재들이 지켜져야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오랜만에 교회에 가게 되었다. 신앙심이 깊은 할머니가 내게 함께 가자고 말한 덕이다.    


 

  교회에 가지 않은 지는 햇수로 약 10년. 10년이면 흔한 말마따나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그 많던 중고등부 아이들의 상당수는 아마 주일 예배를 그만두었을 테고, 지금까지 다니고 있는 아이들은 청년부가 되었다.

  기대되기도 한다. 어떻게 변했을까. 아버지와 할머니의 입김에 밀려 교회를 다니던 아이들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을까, 스타일은 어떻게 변했을까, 같은 호기심이 문득 떠오른다. 아마 각자의 시간을 머금어가며 성장해, 10년 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겠지.      



  최대한 꾸미고 갈 생각이다. 꽤 치기 어린 판단이려나? 뭐, 아무렴 상관없다. 쉽게 말해 10년 만의 컴백인데, 좀 꾸미고 가면 어떤지. 내 마음이다. 오랜만이라며 인사해주시는 어른들과 어쩌면 마주치게 될 또래들에게, ‘나는 이렇게 잘 지내왔고, 이렇게나 정성스레 나를 가꾸며 성장해 왔다’라는, 지나온 시간의 성과를 보여주고 싶다. 맞다. 이건 어떻게 보면 과시욕이다.     



  무슨 옷을 입고 갈까, 무슨 신발을 신고 갈까. 기대된다.   



        

-

  휴학생의 비애. 뭐 그런 게 있다.

  많은 휴학생이 자신의 휴학 기간에 많은 일을 한다. 이를테면 스펙을 쌓기 위한 봉사활동이나 대외활동, 혹은 어학 공부처럼. 하지만 그리도 열심히 사는 휴학생보다 더 많은 휴학생이 하릴없이, 그리고 하염없이 자신의 휴학기를 흘려보낸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뭐든 하고 싶지 않아서, 뭘 하고 싶어도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어찌 됐건 그들은 ‘무엇’이라는 의문을 가지고서 그리 많은 활동을 하지 않는다. 여기, 할 일이 없어서 브런치에 비정기 연재나 하며 하루하루를 축내는 나처럼.     



  돈이 되지 않는 연재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기자단 활동을 신청했고, 토익 공부를 간간이 하기도 한다(여기서 ‘간간이’라는 말은, ‘의미 없지만, 의무감에 억지로 하는 공부’를 의미한다).

  하지만 아직 어떠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렇게 휴학의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서, 빠르다면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다.      



  궁금하다. 휴학이 끝나고 졸업을 하게 될 때쯤, 나의 스펙은 어떻게,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지. 뭐가 됐든 지금보다야 낫지 않을까?

  그도 그럴 것이, 늘 생존본능과 위기 감지가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굶어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로부터 탈출해야 한다는 불안감. 그것은 나를 움직이게 했고, 무엇이든 만들어 냈다. 수년 전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던 내가 그랬고, 어찌 됐건 뭐라도 해야 한다며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대고 있는 지금의 내가 그렇다.     


  제발 이번에도 살아남을 수 있길. 새로운 공부를 해야겠다. 새로운 대외활동을 알아봐야겠다. 일단 좀 쉬다가 내일부터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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