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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xley Nov 03. 2023

가을의 완보

  매일 산책을 한다. 



  날씨가 좋아서, 하늘이 어여뻐서, 가을이라 산책한다. 은은한 가을볕을 맞으며 완보한다. 그렇게 한두 시간 정도의 걷기를 마치면, 늘 마음이 깨끗해지는 기분이 든다.      



  한창 우울증에 허덕였을 때도 매일 같이 산책을 했다. 하루하루가 어두웠으니, 강제로라도 나의 눈앞에 빛을 쏴야만 했다. 또한, 집 안에 계속 있다가는 내가 나를 죽여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가야만 했다. 간이 철봉에 매달아 놓은 전선으로부터 멀리 도망쳐야만 했다. 그때의 나는 죽음이 두려우면서 두렵지 않았다. 죽음의 결과는 두렵지 않았지만, 그것의 과정이 두려웠다. 어찌 됐건 간에, 나는 역설적이게도 두렵지 않던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대낮의 시간으로 뛰쳐나갔다.     



  이후로 산책은 습관 아닌 습관이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매일 나가 걸었다. 그리고 산책하기에는 가을이 적격이었다. 여름처럼 습하지 않았고, 겨울처럼 낮이 짧지도 않았다.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햇살. 더군다나 가을 날씨는 매일 자로 잰 듯 밝고 말간 하늘을 품고 있었기에 그것을 사랑하기에는 충분했다.  


    

  가을의 완보. 당신 덕분에 오늘을 살아낼 수 있다. 오늘도 날씨가 좋아서, 하늘이 어여뻐서, 가을이라 산책한다.           



-

  요즘은 술에 빠졌다. 정확히 말하면 술자리에 빠졌다. 술자리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즐겁다. 그러다 보니, 술이 좋아졌다. 술은 술자리의 상징이니, 자연스레 술에 빠지게 되었다.     



  원래에는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술자리에 참석해도 한두 잔만 마시는 수준이었지. 더군다나 술만 마시면 잠이 잘 오지 않아, 술을 향한 거부감은 심하면 심해졌지, 그 인식이 밝아질 수는 없었다. 신념 아닌 신념. 하지만 그것은 얼마 가지 못했다.     



  최근 들어 여러 좋지 못한 일들을 겪었다.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좋지 못한 취급을 받으니 위로받고 싶어졌다. 자연스레 친구들을 찾게 되었다. 언젠가 쓴 글에서도 말했지만, 여러 사람에게 데이고 나니 오래도록 알고 지내온 친구들 외에는 맘을 잘 붙이지 못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그저 웃음을 주고 좋은 말을 해주었으니깐, 그 모습에 믿음직하고 마음이 편했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단순한 즐거움만 남아있어 좋았다. 어떤 두려움이나 공허함 따위가 존재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러니 술자리가 좋아졌고, 술을 좋아하게 되었다. 뭉근히, 은은히 달아오른 취기가 이제는 즐겁다. 잠을 자지 못해도 좋다. 위로받고 단순하게 웃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체중 관리가 어려워졌다는 점만 빼면, 마땅히 즐겁다.     



  오늘도 술을 마시고 싶다. 술과 함께 친구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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