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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뷰어X Mar 15. 2018

당신들 곁에만 머문 추억, 뮤지컬 <광화문 연가>

by reviewerX 롤라

<광화문 연가>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중가요 작곡가 故 이영훈의 곡으로 구성된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벌써 같은 제목으로 세 번째 공연이지만 작품은 매번 다른 이야기로 관객을 만났다. 하지만 그 와중에 작품을 관통하는 ‘추억 회상’이라는 주제는 꾸준했다. 모습은 달라도 작품이 전하는 이야기는 매한가지였던 셈이다. 하지만 <광화문 연가>가 핵심으로 내세운 ‘추억 회상’은 모든 관객을 아우르기엔 왠지 뒷심이 부족하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단점을 드러내다 

이번 <광화문 연가>는 임종을 앞둔 명우의 병실에서 시작한다. 몇 분 후면 죽을 명우의 영혼은 육체와 분리되어 곧 죽을 자신을 본다. 명우는 혼란스러워할 틈도 없이 ‘월하’를 만나 자신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이제 병우는 젊은 시절의 자신과 첫사랑이었던 수아를 본다. 짧은 사랑 끝에 이별, 그리고 평생 잊지 못했던 수아와의 추억을 더듬으며 명우는 자신이 놓지 못했던 추억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깨닫는다. 첫사랑, 추억, 죽기 전의 깨달음 등 <광화문 연가>의 이야기는 꽤 익숙하고 때론 상투적으로 보이지만, 이 작품이 ‘추억 회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보였다.  


<광화문 연가>에서 가장 돋보였던 것은 현재와 과거, 환상과 현실을 한 무대에 모두 녹여낸 독특한 연출이다. 중년 명우는 자신의 기억을 관찰하기도 하고 때론 그 기억에 직접 뛰어들어 기억을 복기한다. 그 존재 자체가 판타지인 월하는 노래를 통해 현실에 환상을 덧입힌다. 이렇게 <광화문 연가>의 무대 위에 과거, 현재, 환상, 현실이 뒤엉키며 명우의 기억이라는 꽤 매력적인 시공간을 무대 위에 구현했다. 또 서울시뮤지컬단과 협연으로 풍성한 앙상블 무대도 볼만했다. 군무와 합창에 힘이 더해지니 흥과 에너지가 넘쳐났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매력을 상쇄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광화문 연가>가 주크박스 뮤지컬 형식을 취했다는 것이다. <광화문 연가>는 주크박스 뮤지컬의 장단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기존에 익숙한 노래를 사용함으로써 관객에게 쉽게 공감이나 익숙함을 획득할 수 있지만 이야기와 노래의 연관성이 쉽게 생기지 않는다. 뮤지컬을 위해 쓰인 노래가 아닌데다가 이미 노래 안에 완성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아 노래와 이야기 사이에 위화감이 생기가 쉽다. 이 때문에 주크박스 뮤지컬은 극과 상관없이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는 상황-예를 들면 콘서트-을 만들어 극과 노래 사이의 이질감을 자연스럽게 해소하기도 한다. 이 경우 주인공이 가수이거나 그와 비슷한 상황에 있어야 한다는 전제 때문에 보통 주크박스 뮤지컬은 가사와 이야기의 관계성에 집중하여 곡을 선택적으로 배치하는 방법으로 위화감을 최소화하려고 한다.  


<광화문 연가>에서 노래는 위에서 이야기한 두 가지 방법으로 쓰인다. 노을 앞에서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며 ‘붉은 노을’을 부르고, 과거의 기억 속으로 돌아간 명우가 첫사랑 수아를 처음 만나는 자신을 보며 ‘소녀’를 부르는 식이다. 가사와 장면이 딱 맞아 떨어지지 않지만 최대한 기존 노래를 활용한 장면이다. 또 월하는 특별한 제약 없이 자유롭게 노래한다. 월하는 그 존재 자체가 이미 판타지이기 때문에 지금껏 진행되는 이야기와 달리 다소 생뚱맞은 노래를 부르더라도 분위기 전환 혹은 장면 전환으로 이해된다. 게다가 월하의 노래는 그 자체를 ‘쇼’로 즐기기에도 그만이다. 이영훈 작곡가와 함께 시대를 보냈던 관객이라면, 아니 이영훈 작곡가를 모르는 관객이라도 월하의 노래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 정도다.  



보편성을 담아야 했는데 특수성을 담았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광화문 연가>의 이야기와 노래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한계라고 생각하려 해도 그 위화감은 너무 크다. 이영훈 작곡가의 곡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곡의 가사 하나하나를 귀에 담기 어려웠던 관람 환경 탓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 결정적으로 <광화문 연가>와 이영훈 작곡가의 곡 사이에는 특수성과 보편성이라는 간격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광화문 연가>의 작가 고선웅은 프로그램북에 이런 말을 썼다. “내 눈에 이영훈의 곡들은 화자가 대게 ‘거기, 그때’에 머물러 있었다.” 작가 고선웅의 말처럼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에는 추억을 회상하는 이가 화자인 경우가 많다. 이는 <광화문 연가>가 핵심으로 내세운 ‘추억 회상’과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영훈 작곡가의 곡은 특정한 누군가의 추억 회상에 머물지 않는다. 서정적인 선율과 아름다운 노랫말에는 사랑의 설렘, 이별의 아픔,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이 서려있어 세대를 막론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성을 지닌다. 그래서 노래 속 화자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지 않더라도 노래가 불러일으키는 아련한 감정에 쉽게 빠지게 된다.  

하지만 <광화문 연가>는 그렇지 못하다. 작품은 큰 틀에서 사랑이라는 보편적은 주제를 그렸지만 그 안에는 계속해서 특수한 상황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보편성을 잘 풀어냈다고 말하기가 망설여진다. 가장 직접적으로 도드라지게 보이는 건 <광화문 연가>는 1막의 상당 부분을 할애한 학생운동 장면이다. 학생운동은 명우와 첫사랑 수아가 헤어지는 결정적인 이유지만 지금처럼 공들여서 길게 재현해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사랑의 장애물로서의 역할을 넘어 구체적으로 재현되는 학생운동은 일부 관객에게는 또 다른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관객에게는 낯선 인상만 남길 뿐이다.  


명우의 대사나 행동에서도 모두가 공감하기 힘든 요소들이 있다. 밑도 끝도 없이 여자친구에게 스킨십을 요구하는 장면은 여성 관객이라면 쉽게 웃고 넘어갈 수 없다. 또 죽기 직전 자신이 계속 잊지 못했던 첫사랑의 뒷모습은 결국 아내였다고 깨닫는 장면은 또 어떤가. 줄곧 첫사랑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첫사랑을 잊지 못해 평생을 괴로워했던 명우를 내세웠음에도 마지막에는 안전하고도 착한 결말로 급선회한다. 남겨진 아내와 후련하게 세상을 떠나는 명우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작품은 이를 두고 ‘사랑이란 기억 속에서 변형될 수 있다’고 말한다. 멋진 말이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럴 것도 같다. 하지만 극이 처음부터 ‘왜 명우는 운명의 상대 수아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기억 속 여행을 시작한다는 걸 감안하면 갑작스러운 반전과 결말에 공감하는 관객보다는 어리둥절한 관객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광화문 연가>가 보여주는 특수성은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가 가진 보편성과 배치되며 극과 노래의 위화감을 더 크게 만들었다. 애초에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들이 객석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주크박스 뮤지컬의 약점을 더욱 부각하고 말았다. 그렇기에 작품 안에서 음악과 드라마가 함께 빛나는 순간은 정말 몇몇 ‘순간’ 밖에 없었고 결국엔 음악 따로 이야기 따로 남는 뮤지컬이 되고 말았다. <광화문 연가>가 애초에 의도했던 대로 관객들의 추억을 끄집어내길 원했다면 작품에서 다룬 소재에서 좀 더 보편적인 감성과 이야기를 끄집어냈어야 했다. 학생운동이 등장했더라도 그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데 애쓸 것이 아니라 ‘사랑의 장애물’로서의 역할을 더 부각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랬다면 좀 더 많은 관객에게 공감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가 더 살아났을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공연되는 <광화문 연가>는 이랬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추억 회상이라는 컨셉트. 좋다. 여러 시공간이 얽힌 연출. 좋다. 서울시뮤지컬단과 협업을 통해 풍성한 볼거리를 선보이는 무대. 좋다. 하지만 이야기와 음악은 글쎄다. 둘을 떼어놓고 보면 괜찮은 것 같다. 하지만 <광화문 연가>는 뮤지컬이다. 그것도 주크박스 뮤지컬. 이미 세상에 나온 노래로 뮤지컬을 만들고자 했다면 원곡이 가진 특유의 감성과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했다. 뮤지컬의 이야기에 억지로 맞춰 넣는 것이 아니라. 그랬다면 <광화문 연가>가 애초에 원했던 것처럼 오랜 후에 다시 기억 속에서 꺼내 볼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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