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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뷰어X Jun 10. 2018

선물같은 공연, <오페라의 유령 콘서트>

by ReviwerX 카일

해마다 돌아오는 5월이지만 올해의 5월은 좀 특별하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 70주년 기념 콘서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웨버가 세계적인 작곡가이긴 하지만 칠순 기념 공연을 한국에서 하는 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실은 1998년 영국 로열 알버트홀에서의 50주년 기념공연을 시작으로 10년 주기로 세계 각국에서 공연하는 전통이 생겼다고 한다. 올해의 기념 공연은 한국에서 시작해서 영국으로 이어진다. 이번 한국 공연은 두가지 컨셉으로 진행되었는데 먼저 2일에 2회에 걸쳐 앤드류로이드웨버 갈라 콘서트가, 4일부터 6일까지 5회에 걸쳐 오페라의 유령 콘서트가 진행됐다. 전자는 웨버의 작품 넘버로 구성된 익숙한 형태의 갈라콘서트였으나 후자는 오페라의 유령 전막을 콘서트의 형태로 꾸민 것이다.


샹들리에도 마스크도 없는 오페라의 유령

이 공연의 독특한 점은 기존 갈라 콘서트처럼 넘버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연기와 대사까지 다 구현했다는 것이다. 무대 세트와 의상을 갖추지 않았을 뿐 오페라의 유령 전막을 본공연과 똑같이 연기한 것이다. 흔치 않은 형태의 이 콘서트는 경험많은 노련한 배우들의 열연으로 본공연 못지 않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팬텀 역의 라민 카림루는 7년 전 더이상 팬텀 역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으나 이번 콘서트를 통해 다시 한번 연기력과 노래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특이하게도 팬텀의 트레이드 마크인 마스크없이 팬텀을 연기했다. 마스크가 없으니 팬텀의 감정과 고뇌가 여과없이 표현되고 그것이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되는 효과가 있다. 사실 마스크가 있거나 없거나 라민 카림루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소리만으로도 객석을 가득 채우는 유령의 흔적은 그 시절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에 같이 앉은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애나 오번이 연기하는 크리스틴은 세상 모르는 순진한 소녀와 촉망받는 프리마돈나, 연민 가득한 성숙한 모습까지 유연하게 표현해내는 감정의 폭이 넓다. 재미있게도 팬텀 역의 라민 카림루와 크리스틴 역의 애나 오번과 라울 역의 마이클 리가 한 무대에서 호흡을 맞추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단 5회의 공연이 아쉬울만큼 그들의 '케미'는 아름답고 특별하다.


배우들은 대사와 동선, 몸짓으로 넘버만으로 부족한 이해를 돕는다. 마스크 없는 팬텀은 크리스틴이 마스크를 벗기는 씬에서는 오른손으로 한쪽 얼굴을 가리고 돌아서 있는다. 지하로 끌고간 크리스틴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힌 씬에서는 드레스도 면사포도 없지만 머리카락을 넘겨주고 원피스 자락을 매만져 준다. 라울 역의 마이클 리는 문이 없지만 문을 쾅쾅쾅 두들기고 거울을 밀고 들어간다던가 밧줄이 없지만 밧줄에 목이 졸려서 버둥거리는 연기를 한다. 짐짓 유치할 수도 있는 상황을 배우들은 설득력있는 연기로 채워낸다.


다인종 다국적 통합 무대

이 공연을 위해 세계적인 팬텀 라민 카림루와 사랑받는 크리스틴 애나 오번이 내한했다. 라울은 국내에서 활동하는 마이클리가, 마담 지리는 정영주가 맡았다. 이외에도 <오페라의 유령>을 공연한 경험이 있는 여러 외국 배우와 한국 배우들이 한 무대에서 <오페라의 유령 콘서트>를 선보였다. 주연 배우 못지 않게 칼롯타, 앙드레, 페르맹 등 조연 배우들의 연기는 극을 빈틈없이 촘촘하게 채운다. 


재미있게도 이번 콘서트는 각국에서 다양한 배우들이 모였다. 한 무대 위에서 동서양, 흑인백인황인까지 다양한 국적과 다양한 출신지의 배우들을 볼 수 있다. 굳이 한사람씩 출신지를 열거하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이런 무대를 보는 것은 사뭇 생경하면서도 감동스럽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도 다인종 캐스팅에 신경을 쓴다고 하지만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고 한국은 아예 다인종 캐스팅이 드물다. 


콘서트의 형식이기는 하나 전막을 다 공연하는 이번 <오페라의 유령 콘서트>는 가수라기보다는 각자 캐릭터를 갖춘 배우로서 무대에 서는 것이기에 이런 캐스팅은 더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특별히 마담 지리 역을 맡은 정영주는 영어 대사가 익숙하지 않아서 몰입이 깨지는 순간이 있지만 특유의 카리스마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게 보인다. 이런 시도 자체가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는만큼 여러모로 특별한 공연이라 하겠다.


콘서트의 또다른 주인공, 오케스트라

콘서트이니만큼 이 공연의 무대는 45인의 오케스트라로 채워져 있다. 이 콘서트를 위해서 웨버의 작품으로 그래미상을 받은 데이빗 캐딕을 음악 수퍼바이저로 초빙해 왔다. 일반적인 뮤지컬 공연에서는 커튼콜에서야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존재를 새삼 확인하게 되지만 이 콘서트의 주인공은 단연 오케스트라와 그들의 음악이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떠올릴 수 있는 단서는 전광판에 띄워진 오페라의 유령 로고와 붉은 장미 뿐이다. 그러나 경매 장면이 시작되면 순식간에 작품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오케 피트가 아닌 무대 위에 펼쳐진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생동감이 넘치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지휘자의 손짓에 따라 들고나는 연주 덕분에 듣기만 하는 음악이 아니라 보고듣는 음악으로 경험이 보다 다양하게 확대된 것이다. 덕분에 팬텀이 등장하기 전 긴장감이 고조될 때 더블베이스의 무거운 연주를 볼 수 있고 마스커레이드의 흥겨운 넘버에선 신 나는 드럼 연주를 볼 수 있다. 배우들이 무대에서 퇴장한 순간에도 세트없이 비워진 무대는 음악으로 채워진다. 이런 형태의 콘서트는 런던 공연에 이외에는 세계에서 처음이다. 


<오페라의 유령 콘서트>는 기대한 것보다 훨씬 멋진 선물을 받았을 때처럼 기분좋은 놀라움을 선사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완성된 형태의 공연을 올리기 어려울 때 이런 콘서트 형태의 전막 공연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고 관객 입장에서는 쉬 만나기 어려운 작품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다양한 공연을 전막 콘서트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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