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ReviwerX 나타샤
무대가 밝아지면 가운데 뒤편으로 자전거와 바퀴, 장비들이 연결된 큰 기계가 보인다. 이 작품의 소재이자 주제인 무한동력 장치이다. ‘무한동력’이란 에너지원이 고갈되지 않고 끊임없이 돌아가는 장치를 뜻한다. 에너지를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무한동력은 젊은이에 가깝다. 젊은이들은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고 끊임없이 활력과 희망이 샘솟는다.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 청춘’이라는 문학적 묘사가 있듯이 청춘은 새로움과 기대감의 상징이다. 그런데 작품에 등장하는 청춘들은 현실의 난관에 끊임없이 부딪치고 좌절과 절망 속에 있다. 입사시험에 계속 떨어지는 취준생,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하지만 게임에 몰두하는 휴학생, 이벤트회사 직원, 가사를 책임지는 고3 수험생, 중2병 걸린 방황하는 청소년. 이들의 현실은 고단하고 미래는 불안하다. 이들은 현실적인 목표에 매달린다. 대기업, 미드, 이벤트 아이디어, 절약하는 생활, 랩 등등. 이들에게 꿈은 갖고 있기에도 버거워서 이미 잊어버린 존재이다. 반면, ‘무한동력’이라는 현실가능할 거 같지 않은 꿈에 매달리고 일생을 바친 사람은 장년층인 아버지 한원식이다. 그가 무한동력 장치에 매달리는 이유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넘버가 패러디로 사용되는지 모르겠다. <라만차>도 현실 부조리에 맞서기 위해 실패하더라도 꿈을 가지라고 하니까 말이다. 이 작품은 큰 틀에서 꿈은 없고 현실적인 것에 매달리는 청춘과, 무한동력 장치를 꿈으로 쫓고 있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대립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현실의 아이러니이고 지독한 풍자이다. 하지만 우울하지 않고 ‘아프니까 청춘이다’식의 위무도 없을 뿐 아니라 위대한 꿈에 대한 예찬도 아니다. 우울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즐겁게 풀고 아버지의 꿈도 청춘들이 해석해 내는 이 작품의 톤은 음악이 담당한다. 오랜만에 음악이 돋보이는 창작 작품이었다.
먼저 현실적인 청춘이야기, 작품 초반에는 각각 청년들과 하숙집을 소개한다. 넘버 <내 청춘>은 각 인물들이 어릴 땐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 이러고 있을 줄 몰랐다는 노래다. 등장인물들이 가진 20대의 좌절감과 불안함을 공통분모로 엮어서 코믹하게 잘 보여준다. 진기한의 <가늘고 길게>와 한수동의 <절규>는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넘버이다. 캐릭터에 잘 맞는 음악장르를 선택했고 배우들이 이를 잘 소화해서 보는 맛이 있었다. 청춘들의 이야기는 하나하나 소개되기다가 면접장면 재연이나 저녁에 모여 치맥과 함께 회포를 풀면서 다시 엮이기도 한다. 즉 나열과 종합을 적절한 수준에서 유기적으로 잘 짜 넣었다. 중심 줄기는 주인공 장선재의 취업분투기를 두고, 곁에 한 둘씩 다른 인물의 이야기를 배치하였다. 함께 얘기할 때는 장선재의 취업실패가 중심이지만 거기에 적절히 각자의 절망을 섞어 넣는다. 초연 때 받았던 선택과 집중이 안돼서 산만했다는 지적을 극복했다. 장면을 엮는 힘은 <팅탱송>이나 <내청춘> 같은 음악이 단단히 버티고 있다.
작품이 중반에 닿으면 한원식의 꿈 무한동력 기계 장치에 이야기가 모아진다. 각자 인물들은 무한동력을 자기 나름대로 이해하고 자기 삶과 연관해서 해석한다. 솔은 멋진 꿈으로, 아들인 한수동은 집안의 재앙으로. 중심 이야기는 장선재가 이를 자기 삶에서 어떻게 풀어내느냐이다. 그는 처음에는 무모하다고 생각한 무한동력의 가치를 새겨보고 자신의 꿈을 떠올린다. 고3 수자와 장선재가 면접 안내 메시지를 받고 준비하는 장면이 있다. “꿈이 아니야~ 에너지~”라고 노래하면서 음악은 수없는 변주와 장르 전환이 있고 개인의 이야기와 함께 나누는 이야기가 경쾌하게 펼쳐진다. 무한동력을 각자가 어떻게 해석했고, 자기 삶에서 어떻게 적용해가고 있는지 따로 또 같이 보여주는데 음악이 그것을 잘 설명한다. 그리고 면접에서 수자와 선재는 서로 다른 경험을 한다. 각자가 꿈을 자기 삶에서 해석하고 경험하는 것은 다르지만 결국 최정점에서 기계에 모든 청년들이 한명씩 올라가 기계를 돌리며 <기계에게>를 부르는 장면으로 모아진다. 즉, 무한동력이란 각자가 자기 꿈을 꾸고 자기 자리에서 자기 몫을 돌리는 과정 그 전체인 셈이다.
뮤지컬 <무한동력>은 캐릭터를 보여줄 때, 이야기를 전개시킬 때, 갈등과 해소를 표현할 때 음악을 다양하게 잘 활용했다. 아마도 처음부터 웹툰을 보고 팬이 되어 뮤지컬화를 구상했던 이지혜 작곡가의 영향이 다분히 미친 듯하다. 웹툰이기에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는 이 작품을 무대화했을 때 가장 그 분위기를 잘 표현해주는 것도 음악이었을 것이다. 청춘만이 아니라 현실이 고달픈 모든 이들에게 판타지를 주고, 꿈을 잃지 않게 해주는 것도 음악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이 작품에서 끊임없이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엔진은 바로 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