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reviewerX 루시
2000년에 미국에서 처음 선을 보인 뮤지컬 <베어 더 뮤지컬>은 가톨릭 계열의 고등학교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남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국에서는 2015년에 초연 공연이 이루어졌고, 2017년에 3번째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베어 더 뮤지컬>의 첫 공연과 현재 사이에는 17년이라는 시차가 존재한다. 17년의 세월은 막 태어난 갓난아기가 고등학생에 입학하고 올림픽이 4번이 열리며 대통령이 3번 바뀔 수 있는 긴 시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동성애는 각종 매체에서 낯설지 않게 다루어지고 미국의 모든 주에서는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다. 그리고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동성애를 받아드리는 인식은 사회의 변화가 비견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2007년에 초연된 <쓰릴 미>를 필두로 하여 대학로에는 성 소수자를 다루는 작품, 그중에서도 두 남자의 사랑을 다루는 작품들은 미처 다 셀 수 없을 만큼 넘쳐나고 있다. 남자와 남자가 서로 사랑하고 키스하는 것은 파격적이지 않은 정도를 넘어 뻔하고 진부한 소재가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이러한 현실 아래에서 뮤지컬 <베어 더 뮤지컬>이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진부한 사랑 이야기
<베어 더 뮤지컬>은 두 남학생 피터와 제이슨이 주인공이다. 그러나 이 피터와 제이슨에 대한 설정부터 진부하기 짝이 없다. 한 남자는 학교 전체를 들썩이게 하는 인기인이고 다른 남자는 있는 듯 없는 듯 평범한 남자이다. 한 사람은 그들의 관계를 모두에게 알리고 싶어 하고 다른 남자는 관계를 숨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떠한 사건에 의해 비밀스러운 관계가 발각되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이미 대학로의 여러 연극, 여러 뮤지컬에서 다루어진 내용이다.
흔한 소재에 전형적인 인물 설정, 어디서 본 듯한 스토리를 극복하려면 이전의 동성애를 다룬 극에서 전달하지 못했던 새로운 메시지나 참신한 해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베어 더 뮤지컬>은 우리는 그들의 사랑을 차별이나 편견 없이 받아드려야 한다는 식상한 메시지를 비극적으로 끝난 동성 연인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전달한다. 그 어떤 새로움이나 참신함을 찾을 수 없다. 이러한 진부함은 피터를 위로하는 산텔수녀님의 ‘너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란다.’라는 대사에서는 절정에 다다른다.
성 소수자들이 성 정체성과 차가운 현실 속에서 겪는 고뇌, 커밍아웃에 대한 두려움, 주변에 얽힌 사람들과의 갈등, 동성애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관점 등의 주제는 이미 다른 극에서 다 한두 번씩 다루었던 이야기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 <베어 더 뮤지컬>이 우리가 알고 있지 않은, 혹은 우리가 떠올릴 수 없는 어떤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사랑 아래 사라진 아이들
정작 뮤지컬 <베어 더 뮤지컬>에서 매력적으로 보이는 부분은 제이슨과 피터가 나누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 주변에 있는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가톨릭 학교라는 신성한 공간배경 속 전혀 신성하지 않은 삶을 사는 학생들의 모습은 신선한 대비를 이루며 흥미를 끈다. 직전 장면에서는 얌전히 기도하던 아이들이 마약을 찾으며 문란한 대사를 남발하고, 언뜻 보기에는 신실하게 고해성사를 하는 것 같지만 고해성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사들은 내뱉는 모습들은 신성함과 방탕함이 극명히 대비를 이루는 지점들이다. 그러나 한없이 가벼워만 보이던 아이들이 ‘내가 보이기는 하나요, 내 기도 듣고 계신가요.’라며 노래하는 모습은 그들이 나름대로 겪고 있는 삶의 무게를 대변한다. 생각 없이 놀며 지내는 것 같은 아이들은 내면에 각자의 고민과 생각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은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렇기 때문에 등장인물 하나하나는 각자의 이야깃거리를 가진다. 매력적인 얼굴과 몸매로만 평가받는 아이비, 제이슨을 결코 이길 수 없는 맷, 모든 것이 뛰어난 오빠 제이슨과 예쁜 아이비 사이에서 열등감에 시달리는 나디아, 이민자 출신으로 언어조차 서툰 다이앤 등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1막에는 나름대로의 모습으로 등장하던 아이들은 2막에 피터와 제이슨의 사랑이 주가 되면서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다. <베어 더 뮤지컬>에는 피터와 제이슨의 사랑 말고도 친구에서 원수가 되어버린 나디아와 아이비의 관계나 우정과 질투의 경계를 넘나드는 맷과 제이슨의 관계처럼 매력 넘치는 관계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피터와 제이슨의 사랑 아래 나디아와 아이비는 순식간에 서로에 대한 믿음과 우정을 회복해 버리고 맷이 제이슨에 대해 느끼는 열등감과 죄책감은 희미하게 흔적만 남기고 말았다.
좋을 뻔 했는데...
그러나 <베어 더 뮤지컬>에서도 눈에 띄는 부분들은 있다. 그중 하나는 극 중 극 형태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삶이 곧 연기여야만 했던 제이슨이 연극 속에서 진심을 드러내고 죽음을 맞이한다는 설정은 눈에 띈다. 피터와 제이슨이 사람들 앞에서 처음 진심을 드러내는 것 또한 줄리엣의 역할을 대신했던 연극 연습 중이었다는 것도 극 중 극 형태를 잘 살린 장면이었다. 그리고 락스타일의 신나는 음악과 그에 어울리는 안무도 인상적이다. 그중에서도 극 중간중간 등장하는 학생들의 심리 상태를 그대로 표현하는 안무는 꽤 볼만하다. 학생들이 느끼는 압박과 불안을 의자를 합을 맞추어 내리치는 동작을 비롯한 다양한 군무로 표현하고, 피터와 제이슨의 특별함을 다들 오른손을 들 때 두 사람만 왼손을 든다거나 앙상블들과 다르게 반대쪽 다리를 꼬거나 하는 방법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 바뀐 무대는 군무가 가지는 매력을 반감시킨다. 3연에서는 그 이전 공연과 다르게 무대 정중앙에 계단이 있고 2층 무대로 연결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좁은 무대 위 정중앙에 계단이 위치하다 보니 시각적으로 답답한 느낌을 줄 뿐 아니라 1층 공간이 좁아져서 군무를 표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2층의 무대를 오르락내리락하거나 의자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기본적인 동선 이동조차 벅차 보인다. 또한 무대의 세로 폭이 좁아져서 무대에서 군무의 움직임들이 주는 시원한 매력이 반감되기도 한다.
어느새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남자 둘의 사랑은 더는 파격적이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 소재가 되어버렸다. 그런 현실 아래 또다시 동성애를 소재로 한 작품을 올릴 때에는 어느 부분에서든 다른 작품과 차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을 주는 작품이 되지 않으려면, <베어 더 뮤지컬>이 17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 대한민국에서 올라와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관객에게 던지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