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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뷰어X Mar 15. 2018

좋은 이야기와 음악을 놓친 연출, 뮤지컬 <시스터액트>

by reviewerX 롤라

1993년에 개봉한 영화 <시스터 액트>는 우연히 살인 현장을 목격한 삼류 가수 들로리스가 경찰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 때문에 강제로 성당의 수녀로 머물며 겪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좀 특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할 건 없는 영화는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렸는데 그 인기의 중심에는 노래가 있었다. 우아하게 성가만 부를 것 같은 수녀들이 다소 경망스럽게 춤추며 노래하는 모습은 영화의 인기 요소 중 하나였다. 영화 속 수녀들의 신나는 노래는 단순히 재미뿐만 아니라 영화의 주제 등과 밀착되어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마치 뮤지컬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영화가 뮤지컬이 된다고 했을 때 물음표보다는 느낌표를 붙이기 더 쉬웠다.  



이야기는 그대로, 음악은 새롭게 

뮤지컬은 한 마디로 영화에서 이미 검증받은 장점을 계승하는 한편, 뮤지컬로서 매력 포인트를 찾으려고 노력을 펼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뮤지컬은 영화의 이야기를 그대로 수용했다. 무대화를 하면서 이야기가 조금 압축되었지만 원작과 거의 다르지 않다. 작품 속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상반된 가치의 충돌하는 가운데 인물의 변화와 성장, 관계의 발전 등이 어우러지며 진행된다. <시스터 액트>는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 진보적인 것과 보수적인 것 등 공존하기 힘든 가치들이 인물 사이에 혹은 인물 내부에서 끊임없이 충돌한다. 


이렇게 상반된 가치들의 충돌은 갈등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작품 속에서는 오히려 웃음 포인트로써 빛난다. <시스터 액트>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심각하게 고민하기보다는 웃음으로 승화하는 편을 택했고 일반적으로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보다 두 가치가 서로 화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바로 음악이다. <시스터 액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수녀복을 입고 신나게 춤추는 수녀들이다. 큰기침 한번 하지 않을 것 같은 수녀들이 리듬을 타고 스텝을 밟으며 노래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지만, 앞서 말한 상반된 가치의 충돌과 화합을 상직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화에서 음악은 성가에서 유행가로 스타일이 변하는 노래 한 곡으로 장면을 만들어냈지만, 음악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뮤지컬에서는 ‘리프라이즈’라는 장치를 적절히 활용해 작품의 메시지를 보다 선명하게 전달한다. 그 예로 들로리스가 성가대에서 처음 부르는 넘버 들 수 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성가에서 유행가 스타일로 변하는 부분을 뮤지컬에서는 들로리스 자신이 쇼 무대에서 부르려고 야심 차게 준비했던 곡 ‘천국으로 데려다줘(Take Me To Heaven)’의 리프라이즈를 사용한다. 가장 세속적인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열정적인 사랑의 세레나데는 성스러운 일요일 미사에 신을 향한 순수한 사랑 고백으로 재치 있게 바꾼 것이다. 이처럼 뮤지컬 <시스터 액트>에서는 적절한 곳에 리프라이즈를 활용하여 음악과 작품의 메시지를 강화한다. 영화 속 장면을 그대로 옮겨오면서도 뮤지컬의 장점이 십분 살아난 장면이다.  


많은 영화 팬들이 작품이 뮤지컬이 된다고 했을 때 기대했던 것은 영화 음악의 사용 여부였을 것이다. 그만큼 영화가 음악으로 기억될 만큼 명곡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뮤지컬은 영화 음악에 기대기보다 뮤지컬을 위해 새롭게 곡을 쓰는 편을 선택했다. 이미 많은 영화와 뮤지컬에서 실력을 한껏 뽐낸 알란 멘켄은 <시스터 액트>에서도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기본적으로 경쾌하고 신나는 곡으로 작품이 가진 유쾌한 분위기를 살려주는 한편, 적재적소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배치해 듣는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덕분에 음악에서는 원작의 그림자를 벗어나 뮤지컬만의 매력을 한껏 보여줬다.  



뮤지컬의 매력,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뮤지컬은 이미 원작에서 검증된 이야기와 세련된 넘버를 갖췄지만 왠지 모를 지루함이 느껴진다. 원인이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마치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한 듯 비슷한 장면 구성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시스터 액트>의 연출은 매우 단순하고 단조롭다. 조금 비약을 하자면 대부분의 장면의 연출이 비슷하게 보였다. 배우들은 최소한의 동선으로 움직이거나 처음 정해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노래할 때는 한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열창한다. 장소가 바뀌고 장면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도 바뀌지만 반복되는 연출 때문에 작품은 점점 지루해진다.  


보통 대극장 뮤지컬이 화려한 무대와 등장 배우 수로 시청각적 즐거움을 극대화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시스터 액트>는 그런 기준이나 기대에서 빗겨있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성가대 장면만은 여느 쇼 뮤지컬 못지 않게 연출했다. 그래서 어쩌면 앞선 장면의 연출이 성가대 장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함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물론 모든 대극장 뮤지컬이 엄청난 물량공세를 쏟아 부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강화하거나 작품의 주제를 더욱 부각시킨다면 단순하고 단조로운 연출도 필요하다. 하지만 <시스터 액트>의 연출은 작품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이야기와 음악이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루함은 조금씩 조금씩 쌓여간다.  


이 와중에 뮤지컬은 원작을 무대에 그대로 재현하는데 강박감을 느끼는지 영화 속 장면을 충실하게 무대에 구현해냈다. 그러나 이 역시 대부분은 영화의 장면을 구현하는데 의의를 둔 듯 장면이 가진 역할-예를 들어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거나 이후 사건의 원인이 되는 등-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최대한 원작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겠다는 창작진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으나 영화는 영화고 뮤지컬은 뮤지컬이다. 원작의 주제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과감한 각색을 통해 뮤지컬만의 매력을 드러내는데 집중해야 하지 않았을까. 결국 단조로운 연출과 안이한 원작 구현하기 속에서 기억에 남는 건 노래와 성가대 장면의 흥겨움 밖에 없다. 애초에 이 작품의 강점이었던 상반된 가치의 충돌과 인물의 변화와 성장은 그 흥겨움 속에 희미하게 남아버렸다.   


뮤지컬 <시스터 액트>는 원작의 장점 덕분에 절반 이상은 시쳇말로 먹고 들어가는 뮤지컬이었다. 뮤지컬과 꽤 닮은 음악영화가 원작인데다가 신선한 소재, 가벼워 보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이야기가 이미 있었으니까. 넘버만 들었을 땐 무대에 대한 기대감도 꽤 높았다. 결과적으로 <시스터 액트>는 나름의 목표는 달성했다.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원작의 이야기를 손실 없이 무대로 옮겼고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살려 음악의 역할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뮤지컬로 만들어진 <시스터 액트>에서는 원작을 무대화했다는데 의의를 찾을 수 있을진 몰라도, 뮤지컬로서의 매력은 글쎄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를 한다고 모두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시스터 액트>를 보며 뮤지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됐다. 원작의 장점을 바탕으로 뮤지컬만의 매력 포인트를 찾으려던 <시스터 액트>의 노력은 말 그대로 노력으로 끝나고 말았다. 영화가 뮤지컬이 된다고 했을 때 가졌던 느낌표는 어느새 물음표가 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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