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테스트도 그랬다. 남들은 매직 아이니 뭐니 하며 희미한 한 줄을 찾아 헤맬 때 내 임신테스트기는 1초도 안되어 두 줄 이 선명했다. 이번도 그랬다. 설마 아니겠지...? 하는 바람은 1초 만에 깨어졌다. 시약이 닿자마자 나타나는 선명한 두 줄. 그렇게 나는 뒤늦은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
'어디서 옮았을까?'
코로나 2차 유행을 맞이하고, 주변에 걸린 사람보다 안 걸린 사람이 점점 희귀해지는 상황에 의미 없는 의문인 걸 알지만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입방정 떨면 안 된다고 우연히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혹시 내가 슈퍼 면역자인가? 하는 우쭐함이 숨어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도 그럴 것이 7명 대가족 중 3명이 순차적으로 걸려 무려 11일간 함께 격리되었을 때도 무사했고, 회사에서 하루 종일 옆에 붙어 있으며 같이 밥도 먹은 동료가 확진되었을 때도 무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트의 선명한 두 줄은 그런 나의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정말이지 선명했다.
온몸에 오한과 두통, 몸살이 덮쳐왔다. 올 것이 왔구나! 나는 짐을 싸들고 우리 집 격리실로 들어갔다. 벌써 몇 번이나 확진자와 밀접접촉자가 거쳐간 우리 집 격리실. 그곳은 화장실과 베란다가 딸려 있고 티브이가 설치되어 있어 7일간의 격리기간을 버티기에 그나마 가장 양호한 방이다.
이틀간 고열과 몸살이 훑고 간 후, 조금 나아지려는 찰나였다. 우려했던 소식이 전해졌다. 딸아이의 확진.
걱정 90%+ 격리 말미에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사라지는 실망감 10% 의 마음으로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이틀 만에 보는 엄마가 그저 반갑다.
마음껏 티브이를 보고 과자를 먹고 뒹굴대도 타박하는 이 하나 없으니 아이는 여기가 천국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날 밤은 진정한 코로나의 절정이었으니......
아이는 밤새 체온이 40도에서 아무리 해열제를 먹어도 0.2도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코로나가 고열이 심하다더라. 해열제가 잘 안 듣는다더라. 익히 들어왔지만 눈앞에서 축축 처지는 아이의 모습은 무서웠다. 밤새 아이를 간호하고 새벽 두세 시쯤 되었을까? 문득 춥다는 느낌이 든다. 열을 재보니 39도. 나도 다시 열이 오른다.
그렇게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아침이 밝았지만 여전히 우린 둘 다 40도ㅜㅜ.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움직일 수도 더 이상 아이를 간호할 수도 없었다.
남편과 엄마의 추천으로 수액을 맞으러 갔다.
기특하고 신기한 물병이 세병씩 우리 몸에 들어가자 우린... 살아났다. 살아났다는 말만큼 적절한 표현이 없었다.
집에 돌아와 4시간을 잤다. 그리고 한번 더 약을 먹었다.
아직 격리 중이지만 이렇게 삼 년여간 우릴 괴롭히고 움츠러들게 했던 코로나가 지나가나보다.
부디 귀하게 얻는 면역력이 오래오래 유지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