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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넬의 서재 Aug 07. 2021

세상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조금 더 의식적인 삶을 위한 고찰



나의 생각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건 엄청난 리스크다. 내 안의 가장 깊은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는 일은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사고의 흐름을 파악하는 건, 그 사람의 과거-현재-미래를 꿰뚫어보는 일이다. 이 사람이 평소 어떤 관심사에 대한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고, 그것들을 기반으로 현재까지 어떤 삶을 살아 왔으며, 이로 인해 미래에 어떤 삶의 결정을 내릴지까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접근하고 싶은가? 관음증 환자마냥 그 사람의 SNS을 알아내어 한 달만 꾸준히 감시해라. 금새 그 사람과 말꼬리를 트는데 유용한 그의 관심사, 성격, 말투, 행동범위, 생활패턴 등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요즘 읽는 책이나 유튜브 히스토리를 보는 것은 거의 그 사람의 일기장을 읽는 것과 다름없다. 그 사람의 사고 패턴을 파악하면, 그 사람의 미래 행동을 예측할 뿐만 아니라 특정 방향으로 유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빅테크 회사들이 개인정보를 데이터화하여 악착같이 수집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감시자본주의사회를 살면서 기업들은 소비자들을 레몬에이드를 만들기 위한 레몬쯤으로 알고, 겉으로는 무료로 많은 혜택을 퍼주면서 속으론 가장 엑기스인 소비자 데이터, 즉 레몬즙을 쥐어짜낸다. 엑기스를 빨릴대로 빨린 소비자들은 기업들이 수집한 수 천억, 심지어 수 조원에 달하는 데이터를 '무료 혜택' 얼마에 쉽게 팔아넘기고 버려진다. 애초에 기업들이 노린건 레몬이 아닌 레몬 에이드를 만들 원료인 레몬즙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홍수의 시장에 사는 생산자들은 어떻게든 눈에 띄기 위해 자진해서 쥐어짜인다. '크리에이터'들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플랫폼의 정책에 발맞춰 자신들의 '콘텐츠'를 매일 같이 업로드한다. 자신의 존재가치는 '수치화'되어야만 인정을 받고, 자신만의 철학이나 가치관보다는 '트랜드'에 자신을 끼워맞춰야 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당연히 타인의 '공감'에 민감해지고, 그에 맞춰 자신의 생각을 각색하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아무에게나 함부로 보여주지 않았던 '나'의 모습은 어느새 만 천하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모습으로 각색되어 신비함이나 특별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모습이 되었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줌으로 인해, 너무 많은 것이 의미를 잃는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어째서인지, 자기 심장의 조각조각을 떼어 팔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연상되어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물론, 이런 콘텐츠 시장의 확장은 유례없는 기회들을 창조해냈다. 콧대 높고, 진입 장벽 높았던 출판이나 영화 같은 산업은 누구나 노트북 하나, 핸드폰 하나로 뛰어들 수 있는 시장이 되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잘 쓴 글보다 간결하고 꾸밈없는 글이 인기를 끌었고, 화려하던 영화 촬영 기법과 치밀한 서사보다는 핸드폰에서 즉석으로 찍은 30초짜리 콘텐츠가 더 쉽게 떡상을 하였다. 전통적인 등용문을 통하지 않고, 누구나 시장의 수요에만 부합하면 하루 아침에도 스타로 등극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는 항상 묘한 뉘앙스와 편협된 관점만을 제공했던 언론사와 영화제작사에 대한 반란이 분명했다. 그러나 언뜻 보며 표현의 자유가 확장되고, 사고의 다양성이 인정된 것처럼 보였으나, 동시에 '아무나 아무 말이나 해댈 수 있는 세상'은 상업성과 유흥만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깊은 사유와 의미의 탐색이란 다소 우습고 비실용적인 일로 치부되었다. 당연히 이는 생각의 자유를 허용해주는 것처럼 보이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알고리즘 추천과 콘텐츠 공유 방식을 통해 특정 콘텐츠와 관점만을 밀어주는 기업 플랫폼들의 새로운 억압 방식이었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의 영역을 미리 제한해 제공하는 셈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전인류가 온라인으로 강제이주 당한 세상에서, 앞으로도 콘텐츠 시장은 무궁무진 커져만 갈 것이다. 지금까지의 추세로 보자면, 이런 변곡점을 놓칠 일 없는 기업들의 주도로 앞으로도 휘발성, 오락성, 상업성이 짙은 콘텐츠들이 범람하지 않을까 싶다. 그나마 어느 정도 사유의 방법을 배운 MZ세대까지는 깊이 있는 콘텐츠가 먹힐지도 모르나, 상업성과 오락성 깔린 콘텐츠를 주로 소비해갈 알파 세대들에게는 '고리타분하고 다 읽기에 너무 긴' 콘텐츠가 씨알이나 먹힐지 잘 모르겠다. 알파 세대 아이들이 주요 생산층이 되는 시대에는 아마도 빵빵 터지는 30초짜리 개그 콘텐츠를 만드는 개그맨이 최고 인기 직업이 되어 있지 않을까. 아니면, 너무나도 얄팍한 세상에 질려 누군가는 다시 깊이 있는 대화와 심오한 사유를 그리워하는 날이 올까. 그때쯤이면, 오프라인에서 아무리 잘나봤자, 온라인에 디지털 흔적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의 더 많은 것을 계속해서 보여줘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세상 말이다. 물론, 나의 조각조각들을 뜯어 보여준다고 늘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인기라는 것은 너무나도 덧없어, 일정 기간 환영 받다가도, 이내 너무나도 쉽게 사람들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게 세상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매번 새로운 것들 추구하지, 잊혀진 사람은 잊혀진 줄도 모르는 법이다. 그때쯤이면, 마음을 다해줬던 사람이 떠나가는 것처럼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걷잡을 수 없는 상실감에 사로잡히지는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혼자 한다.


세상의 흐름을 잘 타는 것은 성공의 기본이다. 내가 아무리 잘나봐야 세상의 운대라는 것과 맞지 않으면 결코 크게 될 수 없다. 그러나, 이따금 한 번씩이라도, 누가 세상을 어떤 방향으로 유도해가고 있는지 의식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의미있고 깊이 있는 방향으로 진보시킬 수 있지 않을까 제안할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크리에이터'란 취미가 아닌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밥벌이로 하는 사람들을 칭함

*IT기업 및 '감시자본주의사회'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쇼샤나 주보프의 동일한 제목의 책 강력 추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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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업로드도 일전에 읽어주신 분들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태어나버린 이들을 위한 삶의 방법론 <말장난> 

어둠 속을 걷고 있는 자들을 위한 가이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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