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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넬의 서재 May 23. 2021

여자친구의 복제로봇과
사랑하는 건 바람일까?

웹툰 <이토록 보통의> 웹소설화 3편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 에피소드 중 (다음 웹툰, 캐롯 작가)



이 시리즈는 다음 연재 웹툰 <이토록 보통의>의 두번째 에피소드인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편의 웹소설화입니다. 이 웹소설은 캐롯 작가님의 원작에 기반한 팬창작 웹소설로, 상업적으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 웹툰 <이토록 보통의>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는 다음 웹툰에서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2021.05 기준)


웹소설화 1편 보기: https://brunch.co.kr/@neilsbook/96

웹소설화 2편 보기: https://brunch.co.kr/@neilsbook/97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 7화 중 (다음 웹툰, 캐롯 작가) 


제 7화 



평화로운 나날이다. 


P는 내게 미안한지 더욱 잘해준다. 나는 좀 혼란스럽지만, 그럭저럭 괜찮아 지고 있다. 


핸드폰이 쉴 날 없었던 예전 P의 모습으로 돌아가 P는 다시 집에서도 분주하게 일한다. 나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로봇을 수리하고, 바쁘게 통화하는 그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싱긋- 웃어보인다. 내가 기억하는 사고나기 전의 일상적인 P와의 모습과 동일하다. 어쩐지 로봇 P와 살 때는 그녀가 지나치게 한가로웠다. 나는 내가 사고가 나서 회사 측에서 배려를 해준 것이니 했었는데. 그때 한 번이라도 어찌된 일인지 물어볼 걸 그랬나. 


그래. 어차피 똑같은 P였는 걸. 뭐... 내가 항상 원하던 일상으로 돌아왔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은기야." 


정신없는 통화를 끊으며 P가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부른다. 


"나 우주 다녀오면, 자기랑 니스 다녀오기로 했잖아. 그거, 티켓 끊어놨다?" 


맞다. 그랬었지. P는 약속을 허투루하는 적이 없었다. 나는 애써 기쁜 모습을 하며 '정말?'하고 반응한다. 


니스... 그러고보니... 로봇 P와도 니스에 가기로 했었는데. 잘 지내고 있을까?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로봇 P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 * * 


한참을 고민하다 로봇 P가 거주 중이라는 항공국 근로자 아파트로 홀린듯 찾아갔다. 그곳에 도착한 뒤, 나도 모르게 근처를 한 시간 가까이 서성거렸다. 복제 인간이 거주하는 정확한 주소도 모른채. 딱히 뭘 하려고 온지도 모른채. 그저 해서는 안되는 짓을 하는 것 같은 죄책감에 한참을 망설였다. 


만나서 뭘 어쩌려고. 돌아가자. 괜히 로봇 P를 만나면 일만 복잡해질 것 같기도 했다. 이곳에 나와 지난 일 년을 함께 한 존재가 산다고 생각하니 뭐라고 딱히 정의할 수 없는 상실감만 커졌다. 나는 무슨 생각으로 이곳까지 온 걸까.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순간, 이 동네 편의점에 전시된 신제품 필터봇이 보였다. 확실히 좋은 동네라 그런지 이런 신제품이 벌써 유리창에 전시되어 있었다. 외곽진 우리 동네에서는 찾기 힘든 제품이었다. 혹시 지난 번에 수리하던 로봇의 레드 버전이 있을까. 여기까지 왔는데 구경이나 할 겸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편의점에 들어가 두리번 거리려던 찰나, 진열대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고르고 있는 로봇 P가 보였다.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나도 모르게 몸을 숨겼고, 물건을 계산하고 나가는 로봇 P의 뒤를 따라갔다. 


할 말도, 원하는 것도 없이 1시간째 그저 그녀의 뒤만 쫓았다.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 8화 중 (다음 웹툰, 캐롯 작가) 



제 8화 



로봇 P를 쫓아 한참을 걸었을 때는, 이미 석양이 지고 있었다. 나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그녀의 그림자조차 밟지 못하고 묵묵히 그녀를 따라 걸었다. 석양을 향해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그림자가 길게 뉘어 금방이라도 밟힐 듯 하였다. 석양에 너울거리는 그녀의 그림자가 자신을 따라오라고 유혹하는 것처럼 보였다. 뒤에서 바라본 그녀는 한 쪽 어깨에 구매한 물건이 들어있는 천으로 된 에코백을 메고, 나풀거리는 플레어 스커트에, 하얀 발등이 드러나는 샌달을 신고 있었다.


"에고!" 


꼼꼼한 듯 한 번씩 덤벙거리는 진짜 P처럼 로봇 P도 길을 가다 삐끗하고 발목을 삐었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몸이 달려가 그녀를 부축할 뻔했다. 순간적으로 휘청거리다 결국 바닥에 철푸덕- 넘어져버린 그녀는 '아야야...' 신음소리를 내었다. 이상하게 그녀의 신음소리에 마음이 아려왔다. 그러더니 그녀는 삐끗한 발목을 한 손으로 만지작 거렸다. 내가 평소 해주던 것처럼. 그녀는 주저앉은 채로 바닥에 흩어진 물건을 집어 가방 안으로 넣었다. 곧이어 그녀는 혼자 '영차-' 소리를 내며 일어나 다시 지는 석양을 향해 걸었다. 


...P


함부로 달려다 도와줄 수도 없었던 나는 그녀가 절뚝거리며 사라져가는 뒷모습만을 바라봤다. 내가 없어도 뭐든지 씩씩하게 해내던 너. 그리고 이 순간에도 너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나. 


나의 아름다운 P... 


그을린 듯 약간 붉은 머리카락. 뭉툭한 코, 앙증맞은 입술. 두 눈을 감아도 생생하게 그려지는 너의 사랑스런 얼굴. 너는 항상 공기를 느끼듯 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너의 숨소리와 호흡을 사랑했다. 


로봇 P. 너는 누구지? 


지난 1년 간 매일 아침 네 눈동자를 보며 느끼던 영혼은 도대체가 무엇이지. 침대에 누워 두 팔을 벌리며 나에게 사랑을 속삭이던 너는 누구지. 네가 로봇이라면서 그때 너의 눈 속에서 느꼈던 따스함은 뭐지. 


사랑이 뭐지? 영혼이 뭐지, P? 


너에게 입을 맞출 때마다 영혼이 하나가 됨을 느꼈던 기분은 뭐지. 나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며 항상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던 너는 누구지. 우리가 나눴던게 사랑이 아니라면 뭐라고 불러야 하지. 네가 사실 복제인간 로봇이기에 한순간에 폐기 되어버린 우리의 시간은 누가 보상해주지. 네가 누구든 너를 사랑하겠다는 다짐은 대체 어떤 의미가 있었던 거지. 


나는... 어렵고 혼란스러워. 


그리고 멀리 외로워 보이는 너를 보며 느끼는 이 울렁이는 감정은...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 8화 중 (다음 웹툰, 캐롯 작가) 



다시 우리 동네로 돌아와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땐, 창 밖을 내다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 P가 있었다. 늘 그러듯 하늘을 올려다 보는 상태로. 그 높은 곳에서도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반갑게 나를 보며 손을 휘젓는 P였다. 


"어디 다녀왔어?" 현관문까지 마중나온 P가 다정하게 물었다. 


"응... 그냥 산책." 


"같이 가자고 하지. 옷 샀는데 봐줄래?" 


나는 조금 전까지 로봇 P에게서 느꼈던 묘한 감정이 남아 눈 앞에 있는 진짜 P를 보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속옷이지만..." 


그런 내 기분을 알 리가 없는 P는 얼굴을 붉히며 자기 윗옷을 내 앞에서 천천히 벗어제꼈다. 


* * * 


새로 산 속옷을 풀어헤치며 나를 유혹하는 P와 사랑을 나눴다. 일주일에도 몇 번이고 몸을 섞는 사이인데도 심장이 쿵쿵 뛰었다. P의 땀에 젖어 목덜미에 달라붙는 단발머리와, 등줄기를 타고 보이는 튀어나온 척추 마디마디와, 후배위 자세를 한 채로 앙앙 거리는 P의 목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새로 산 속옷 자랑은 입자마자 벗어제껴져 침대 아래 바닥에서 뒹굴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도 모르게 평소보다 행동이 더 격앙되었다. 


우습게도 눈 앞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는 P를 놔두고 나는 석양을 향해 걷던 로봇 P를 생각했다. 앙앙 거리며 신음 소리를 내는 P와 아까 넘어져 절뚝 거리던 로봇 P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둘 다 평소답지 않게 연약하게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드리우는 석양 빛에 물들어 어딘가 모르게 외로워 보이던 너의 모습. 집에 돌아오기 전, 이름 한 번 불러보지 못한 게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절정에 다다랐을 때, 아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던 로봇 P가 뒤를 돌아봐 눈이 마주치는 상상을 했다. 나도 모르게 P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클라이맥스를 했다.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 8화 중 (다음 웹툰, 캐롯 작가)


"P... 궁금한 것이 있어." 


섹스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내 옆에 있는 P에게 나즈막히 물었다. 


"어떤 거?" 

 

P는 나를 옆에서 꼭 껴안고 눈을 감은채 대답을 했다. 방금 전 섹스에 만족했던 P는 한없이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나를 껴안았다. 


"로봇... 내가 모르게 할 수도 있었잖아... 왜 그런거야? 내가 보는 앞에서 굳이..." 


잠든 줄 알았던 P는 누운 상태로 내 왼팔을 꽉 쥐며 잠시 뜸을 드리더니 말했다. 


"...음.... 그냥..." 





원작 웹툰 <이토록 보통의> 중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 보러가기: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er/4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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