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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헹리 Sep 19. 2019

입사도 하기 전에 알게 된 두 가지의 깨달음

새내기 바이어의 나날들

#1


자동차 회사, 게다가 본사가 아닌 연구센터에 배속됐을 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진짜 여자가 얼마 없다. 기숙사에 신입사원이 약 200명 정도 사는데, 그중 여성 사원이 20명 내외로 무려 성비가 9:1이다. 내 인생 26년 동안 이런 미친 성비 속에 있어 본 적이 없는데 대박이다. 이건 내가 꿈에 그리던 공대 아름이 아닌가. 그런데 세 시간도 채 안돼 나의 설렜던 마음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지금은 다 말라서 그런 마음이 존재했었는지 조차 가늠이 안 될 정도) 오늘 홀로 남성사원 일곱 명에 둘러싸여 밥을 먹다 전공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문과인 나는 무슨 말인지 1도 이해하지 못했다. 아날로그 어쩌고, 리버스 엔지니어링 뭐.. 그래도 최대한 이야기에 참여해보겠다며 꺼낸 얘기가 "'리버스 엔지니어링'의 리버스는 영어로 거꾸로라는 의미인 그 Reverse 인가요?"였다. 누가 들어도 주제와 하등 상관없는 문과적인 발언이었다. 마치 영문학과 학도생들이 셰익스피어에 대해 논하고 있는데 '셰익스피어의 S는 알파벳송 19번째에 나오는 그 알파벳인가요?'라고 물어본 격. 가볍게 쓰루 당하고 깨달았다. 공대 아름이가 되려면 '공대생'이었야만 했다는 것을



#2
회사께서 참신하게 기숙사 룸메를 같은 부문끼리 묶어주셔서 해외구매팀 동기랑 한 집을 쓰게 되었다. 이것저것 같이 살게 많아 마트를 여러 군데 같이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구매팀 특징

'둘이 마트에서 물건 바라보면서 계산기 두드림 = 구매팀'

티슈박스를 사야 했고 두 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한 세트는 288엔이었고, 다른 세트는 315엔이었다. 두 세트가 외형도 비슷하고 앞으로 장을 봐야 할 리스트가 20개가 넘는다면, 대충 두 개 중에서 싼 288엔짜리를 고르지 않겠는가? 구매는 결코 그러지 않는다. 바코드 위에 조그맣게 쓰여있는 티슈 매수를 확인한 후 티슈 한 장당 가격이 얼만지 계산기를 두드려 확인한다.

288엔짜리 상품은 180매 5개짜리 세트였고 315엔짜리 상품은 200매 5개짜리 세트였다. 고로, 전자는 티슈 한 장당 0.32엔 후자는 티슈 한 장당 0.315엔이므로 한 세트에 315엔인 후자를 택했다.

입사도 하지 않은 구매팀 둘은 흡족해하며 우린 다른 팀들과는 달리 현명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쇼핑한다는 자신감에 차 장장 세 시간 동안 남은 쇼핑도 그런 식으로 했다.

하지만 정말 현명했던 걸까? 집에 와서 깨달았다. 우리가 티슈의 재질 즉, 퀄리티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하... 내일 티슈 또 사러 가야 돼....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이과랑 계속 소통하라며 문과인 우리를 연구센터에 넣어놓으신 회사의 선견지명새삼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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