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들 Dec 13. 2023

소:담백#봄 01 쑥버무리

소소하고 담백한 나의 첫 번째 독백

Chapter 1. 쑥버무리

사실 지금까지 쑥버무리를 먹어본 횟수를 세자면, 다섯 손가락이 필요 없을 만큼 몇 번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쑥’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쑥버무리, 쑥국, 쑥떡이 떠오르는 걸 보니 나한테 굉장한 임팩트 있는 음식인 건 분명하다. 그래서 소:담백의 첫 번째 주제로 쑥버무리와의 첫 만남을 풀어볼까 한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나는 인생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내가 일했던 곳은 초밥과 롤, 돈가스 등을 파는 2층짜리 일식집이었다. 지역 중심가에 위치한 가게였기 때문에 주말 점심이면 손님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주문벨이 끊임없이 울렸고 나는 발에 불이 나게 뛰어다녀야 했다. 초밥이 놓인 접시를 행여 놓칠까 조심스레 들되, 걸음은 지체 없이 1층과 2층을 오르내리길 여러 번. 점심 피크시간이 끝나고 녹초가 되어 넋이 나가 있던 중, 나를 찾는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리 와서 이것 좀 먹어. 바쁜 시간 지났으니 우리도 숨 좀 돌리자.



그게 바로 나의 인생 처음으로 만난 쑥버무리였다. 쑥과 찹쌀가루를 고루 버무려 섞은 후 쪄내었다 하여 쑥버무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쑥버무리는 마치 한바탕 내린 함박눈 속에서 고고히 머리를 내밀고 있는 쑥처럼 보이기도 했다. 생김새 때문인지 왠지 봄보다는 겨울이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쑥버무리와의 어색한 첫 대면에 포크를 쥔 오른손이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저녁 식사시간이 시작됨과 동시에 손님들이 몰려올 것이고, 바닥을 친 나의 체력을 올리기 위해선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쑥버무리 한 귀퉁이를 조심스레 잘라내어 한입 베어 물었다. 퍼석한 듯하면서도 촉촉하고 짭짤하면서도 달콤함이 느껴졌다. 입 안에서 겨울과 봄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듯했다. 그만 먹을까 돌아서면 다시 생각나는 묘한 맛이었다. 그렇게 쑥버무리 한 접시는 잠시동안의 망설임이 무색할 만큼 깨끗이 비워졌다.


시간이 흘러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일상으로 돌아온 어느 날, 갑작스럽게 쑥버무리가 생각나는 것이다. 할머니는 철없는 손녀의 칭얼거림에 곧장 따끈한 쑥버무리를 만들어 주셨다. 할머니 방식대로 만들어진 쑥버무리는 너무나 맛있었고 어느새 한 접시를 뚝딱 해치웠다. 하지만 어쩐지 스무 살 봄날의 어드메, 그때와 같은 맛이 나진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의 쑥버무리는, 힘든 노동 사이 주어진 보상이었기에 더 맛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소:담백 #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