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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가 Feb 11. 2024

숯불처럼

화르륵 타버리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피로감에 재만 남는다.

뭐라도 남겨먹으려면 천천히 태워야 한다.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소설책이나 드라마에 빠져 몇 날 며칠을 새벽 늦게까지 불태우다가 완독을 하면 짧은 여운 끝에는 공허함만이 남았다.

십수 년 전,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적엔 하루하루 몸이 바뀌어가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미친 듯이 운동하고 잘 먹고 잘 자고 일어나면

내일은 얼마나 더 성장해 있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그렇게 며칠, 몇 주를 열심히 하다가 작은 정체기를 만났을 때 주저앉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체기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아무것도 아닌 작은 난관이지만

당시엔 운동에 대한 지식도 경험도 전무한 초짜라 깨우칠 힘도 고통에 대한 내성도 없었다.


어렸을 때는 비단 운동뿐만 아니라 삶 대부분의 일에 금방 주저앉았다. 아주 작은 벽을 만나면 그리 뜨거웠던 감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리고 그만둬 버리곤 했다. 

책을 읽을 때도, 입시를 할 때도, 취업을 할 때도, 연애를 할 때도 그랬다.

관심을 갖고 빠져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화르륵 타다가 재만 남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러고 나면 그냥 잠깐 경험했던 것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밍숭맹숭한 사람이 되고 있었다.

인생 자체가 회수할 것도 없는 매몰비용 덩어리로 변해가는 것 같았다.


사람이라면 무엇을 하든 간에 필연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그게 크던 작던 벽을 맞닥뜨릴 거다.

확률과 미적분을 만나 좌절할 수도, 벤치프레스 60kg을 하다가 포기할 수도, 고등 필수 영단어집을 호기롭게 사서 ‘이 한 권을 떼고 나면 수능은 1 등급이 될 것이여’ 하며 몇 장 외우다가 포기할 수도 있다.


초반의 호기로움은 몸이 좀 피로하거나 또 다른 어떤 흥미로운 것에 시선이 팔려 금세 식어버릴지도 모른다.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빠져드는 건 좋다.

근데 그 열정이, 그 감정이

빠르면 몇 주, 좀 길면 몇 달이 가지 않아 식어버리는 게 문제였다.

나는 이걸 고치고 싶었다.

왠지 이걸 고치면 나는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될 것 같았다.


- 주변에 종종 알린다.

나는 내가 뱉은 말을 주워 담는 게 너무 싫다.

내가 분명히 해낼 수 있다고 했는데 해내지 못한 게 싫다.

거짓말쟁이가 되는 게 너무 싫다.

사실 상대방은 내가 했던 말에 대해 별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괜히 내 스스로가 내뱉은 말을 지키지 못한 것에 위축되는 게 싫다.

변명도 싫다.

그렇기에 뱉는다.

나 복싱 대회 또 나갈 거야, 프로 테스트도 받을 거야. 나 운동 용품 만들 거야, 나 일본어 공부하구 JLPT 시험도 볼 거야. 나 책도 쓰고 싶어~


- 내가 하고자 하는 그 일을 진정 원하는지, 또 내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지 검증한다.


그래서 요즘 내가 푹 빠진 그 무언가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게 뭘까. 이로 인해 얻는 결과가 과연 내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것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될 것인가. 그 보상이 단순히 내 유희, 순간의 쾌락뿐이라면 주, 색, 잡기에 빠저 허우적거리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거라면? 끊임없는 선문답에 마땅한 결론을 내놓아야만 열정이 잠시 식었을 때 내 등을 받쳐줄 수 있다.


- 숯불처럼

나는 숯이 좋다. 어렸을 때 뒷마당에서 숯불에 고기를 구워주시던 어머니가 간이 잘 맞는지 먹어보라며 한 점씩 잘라 주시던 게 생각난다. 그렇게 옆에서 쪼그려 앉아 몇 점 주워 먹다가 가끔씩 쩍쩍 갈라지며 속에는 뻘건 불을 머금고 있는 이미 다 탄듯한 검은색 물체가 신기했다.

저건 나무 장작이랑 뭐가 다른지 왜 저 나무는 시꺼멓고 다 탄 것 같은데 왜 계속 불이 붙어 있는지 궁금했다.


숯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어렵지만 원리는 간단하다. 1300도 이상의 뜨거운 열기로 며칠간 목재를 태우면 된다. 단, 인위적으로 산소 공급을 줄여 나무의 섬유질 성분인 셀룰로오스를 불완전 연소시키면 탄소 덩어리로 변하는데 이게 숯이다. 완전히 재만 남도록 태우는 게 아니라 '장시간 고온'에서 산소를 줄여 '불완전 연소'를 시키면 숯이 된다. 이 응축된 탄소 덩어리는 일반 장작에 비해 부피도 작지만 더 뜨겁고 더 오래 탈 수 있다.


최근, 복싱이 너무 뜨겁다.

자나 깨나 복싱 생각이다. 사무실 탕비실에서 커피를 내리다가도 틈만 나면 쉐도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도 쉐도우를 하기도 한다. 어떻게 경기를 운영할지 고민한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콧노래를 부른다. 유튜브 쇼츠엔 알고리즘 탓에 계속 복싱 영상만 올라온다. 카넬로, 저본타, 로마첸코, 나오야, 엔카마르... 유수의 선수 영상을 보며 머릿속에서 상상해 보고 샌드백에 연습하고 링 위 올라가 테스트해 본다. 그러다 몇 대 맞고 다시 내려와서 연습하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요즘 좀 겁이 나려던 차였다.

홀랑 다 타버리고 재만 남아 버릴까 봐,

이런 식이면 또 아무것도 안 남겠다.


강제로 복싱에 할당하는 시간을 줄여볼 생각이다. 마음은 뜨겁게, 하고 싶은 열망이 식지 않을 정도로 다만 불완전 연소될 정도로만.

비단 운동말고도 삶 대부분에서 겪은 게 다 그런 것 같다. 

기어도 낮은데 RPM만 마구 올린다고 앞으로 튀어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더라, 소리만 요란하지.

천천히 엑셀을 밟아 RPM을 올리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기어를 바꿔주어야 한다.

그래야 응축된 힘이 손실 없이 더 큰 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어를 올리면서 RPM은 떨어지지만 더 힘차고 빠르게 달릴 수 있다.

실력이라는 게, 내가 악 쓰고 한다고 금세 늘고, 또 단기간에 시험 벼락치기 한다고 해서 이해 안 되던 문제가 마구 풀리는 게 아닌 것 같다.

계단식처럼, 정말 아무리 해도 안되던 게 갑자기 봇물이 터져 마른 논에 물이 들어가듯 술술 풀리는 때가 있다.

헌데 그때가 오기까지 버티지 못하고 다 타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버텨야 한다. 그때가 올 때까지.


3일짜리 노력은 3일만큼, 3개월짜리는 3개월 대우를 받는다. 그래도 대게 해를 넘기기 시작하면 조금 사정이 달라지는 것 같다. 복싱을 시작한 지 이제 1년 반정도 넘었다. 초보티를 간신히 벗고 중급자로 가고 있는 과정이다.

지극히 내 사견이지만 대게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 간에 3년쯤 하면 얼추 번데기 앞에서 주름 하나쯤 접을 수 있다.

아마 사람들이 어떤 일을 시작하면 1년을 채 넘기기 어려워서 그런지,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1년쯤 했다 하면 ‘오~’ 소리가 나오고 3년쯤 지나면 으레 ‘오 그럼 엄청 잘하겠네?’라는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닐까.


물론 투자한 기간만큼이나 얼마나 깊이 했는지도 중요하지만, 단기간에 미친 듯이 하다가 금세 싫증나 그만둘 때보다는 훨씬 사정이 낫다고 본다.


오래 하면서, 깊이 있게 한다는 건 그때부터는 사회인이라면 그 일이 직업이어야 감당할 수 있을 거다.

만약 내가 정한 목표에 기한이 있거나, 상대적 순위가 중요한 곳에서는 숯불처럼 하다가는 도태될지도 모르겠다.


복싱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하던 곳에 붙어 있던 사자성어가 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닿을 수 없다.

너무 멋진 말이다.


몇 주전에 엘리트 선출과 스파링을 했다가 기가 막히게 두들겨 맞았다. 헤드기어도 쓰고 글러브 온스도 큰 걸 써서 다행이었다.

보호장구 덕에 맞아도 다운당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으니, 상대의 주먹이 날라오는 경로나, 스텝을 자세히 보고, 몸소 맞아보며 어떤 느낌인지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선출의 주먹은 진짜 좀 다르다. 주먹이 날라오는 경로에 군더더기가 없다. 예컨대, 똑같이 잽 두 번에 뒷손 스트레이트를 날리는 잽-잽-투를 여러 번 보여주면 움직임이 익숙해져 대게 다음 주먹에서는 예측하고 피하거나 가드를 한 뒤에 반격을 할 수 있는데,

이 양반 주먹은 날아오는 경로가 어찌나 깔끔하고 깨끗한지, 눈 깜박할 순간에 이미 내 얼굴에 박혀있고, 알아도 가드 하기가 쉽지 않았다.

단순히 빨라서 그런 게 아니라, 내 눈 시선에 딱 맞춰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 내지르는 주먹이라 예비동작도 파악하기 어렵고, 내 시선에서 캐치할 수 있는 상대 움직임이 극히 적어 대응하기가 어려웠다.

일반 체육관 관원들은 주먹을 휘두르면 온몸으로 ‘나 주먹 날려요~!’하는 게 보인다. 어깨, 팔꿈치, 몸통, 발 위치 등 다양한 움직임을 통해 어떤 펀치인지 예측할 수 있다. 근데 고수들은 이를 아주 교묘히 이용한다. 일부러 움찔거리며 얼굴로 잽을 줄 것 처럼하다가 배를 때리기도 하고(수 자체는 뻔하지만 일부러 먼저 배를 세게 한 방 때려주고, 속이면 누구라도 속는다.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속이는 움직임이 정말 진짜 같다.), 상체는 그대로 두고 앞발만 야금야금 내 쪽으로 내밀면서 위쪽에만 신경 쓰도록 얼굴로 잽을 몇 번 주다가, 내가 뒤로 확 빠져나가는 타이밍에 미리 깊게 넣어 놨던 발을 축으로, 앞으로 쏟아지듯 깊게 펀치를 날려 백스텝으로 빠져나가려는 나를 잡아 때리기도 한다. 심지어  알아도 막기 어렵다.

그 깔끔한 경로를 갖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미쳐야 닿을 수 있을 거리일 거다.




미쳐야 할까 숯불처럼 타야 할까.

그냥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하면 되지 뭐.

깊게 생각 안 하련다.

내 삶, 타인의 속도에 맞춰 살기 싫다. 급하면 먼저 가시오.

이제 살면서 누군가와 치열하게 경쟁하거나, 시험을 봐야만 하는 그런 시기는 조금 벗어난 것 같아서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나는 은은하게 타는 숯불 같이,

오래오래 천천히 타고 싶다.

좋아하니까.

숯불에 구운 양념 갈비는 오래 씹고 싶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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