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이나 드라마, 영화 그냥 뭐든 금방 보지만 금세 까먹는다.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서 늘 적는다. 아이폰 메모장에 수 천 개의 메모가 늘 있다. 심지어 내가 뭘 메모했는지도 까먹는다.
근데 상관없는 거 아닌가?
더 잘 메모하면 되고, 무엇보다 읽었던 책 다시 보면 처음 보는 것처럼 재밌다.
'아 이런 내용이었지' 하고 생각나서 재밌고 또 읽을 때마다 새로운 책 같아서 재밌다.
두 번 보면 두 번 재밌고, 세 번 보면 세 번 재밌다.
이렇게 나를 좀 내려놓고 편히 관망하듯 보게 된 계기가 있다.
작년에 장기하의 수필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읽었다.
읽다가 정말 빵 터져서 자리에서 뒹굴면서 한 참을 웃은 대목이 있는데 이거야말로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이라 생각했다. 장기하라는 사람이 어떤 말투로 이런 말을 했을지 상상된다.
장기하는 유튜브나 영화를 볼 때 일부러 자막을 넣지 않고 본다고 한다. 영어를 엄청 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넣지 않고 본다고 한다.
대게 사람들은 자막 없이 보다가 혹시 내가 놓치는 부분이 있지는 않을까,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면 어떡하지 싶은 마음에 쉽사리 없애질 못한다.
장기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를 보며 자막을 끌까 말까 고민하던 중에 불현듯 이런 생각이 났다고 한다.
근데 자막을 켜고 본다고 전부 다 기억하나? 며칠 지나면 까먹을 텐데.
그렇다면,
...
...
'상관없는 거 아닌가?'
어차피 기억 못 할 텐데.
이렇게 생각한 뒤로는 마음을 편히 내려놓고 자막을 빼고 본다고 한다.
이해했든 못했든 어때, 다는 기억 못 할 텐데.
단 한 단어도 놓쳐서는 안 되던 시험때와는 다르다.
못 알아들어도 상관없다.
바라보는 태도를 조금만 바꿨을 뿐인데 삶이 바뀐 기분이다.
유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