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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가 Jan 11. 2024

결말이 기억나질 않는다(1)

[당신은 나의 심장이 된다]

제목만 봐서는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이 글은 "일인칭소방관시점"이라는 브런치 작가가 썼다. 내가 브런치 어플을 처음 다운로드 받았을 때부터 구독하던 작가다. 당시 30명쯤 되던 구독자가 어느새 1400명을 넘어가고 있다. 역시...

나는 이 작가가 글을 전개하는 방식이 참 좋다.

이 작가는 자신의 일상과 소방서에서 출동을 나갔을 때 겪은 사건을 교묘히 배치한다.

그 미장센이 지독히도 아름답다.

그의 글은 때로는 슬프고, 다행스럽기도 하며, 안타깝다. 솔직히 때로는 타인의 불행이 나에겐 다행히 아직 일어나지 않았음에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작가가 낡은 동네로 출동을 나간다. 몸을 비틀며 올라간 곳에서 20 중반의 지적 장애가 있는 여인을 실어 나른다. 구급차 안에서 심한 복통을 호소하던 여자 아래로 둔탁한 무언가와 물이 쏟아진다. 사람의 형상을 갖추다  그것을 병원에 넘긴다.


 

작가와 아내가 걷는다. 첫째 아이때와 달리 둘째를 가진 지금은 입덧이 없다. 아내는 햄버거를 와구 먹고 작가는 웃으며 지켜본다. 햄버거를 먹던 아내가 말한다. "나올 것 같아". 작가가 답한다. "이 주나 빠른데?" "나올 거야" 대화를 주고받던 부부가 매장을 나간다. 첫째 때와 달리 여유가 생긴 부부는 병원으로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작가는 생각한다. 깍지 낀 손가락 사이를 타고 무언가 느껴진다. 내 몸에서 가장 가는 혈관이 지나는 곳까지 당신의 심장을 느낀다.  당신은 나의 심장이 된다.


내용을 많이 요약해서 원글의 표현을 제대로 못 살렸지만, 제목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작가가 대게 활용하는 전개 방식 또한 알 수 있다.

 말미에 비로소 제목의 의미를 알게 됐다.소름 돋았다.

어떻게 저런 표현을...


불연듯 뭔가 떠올랐는데 입에서 맴돈다. 


' 기분을 언제 느꼈더라?'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가 생각났다.

작년에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좋았던 한 권을 뽑으라면 단연코 이 책을 고를 거다.

이 책은 완벽하다. 시작부터... 좀 쩐다.

예컨대, 보통 소설책이라 하면 독자가 상상하기 쉽게 일종의 세계관 같은 걸 먼저 보여준다.

'황량한 사막, 메마른 오아시스, 더 이상 인류의 자취를 찾기 어렵고, 모레톱 위로 살짝 보이는 수 백 년은 지난듯한 콘크리트 빌딩의 머리' 이 정도 정보를 주면 대충 디스토피아적인 세상이구나 싶은 그런 거 말이다.

근데 이 책은 50페이지쯤 지나서야 이 책 안의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만들었다. 근데 그 과정이 너무 재밌어서 답답하지가 않다. 바늘 구멍 속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데 답답함이 없다.


글의 소재는 평범하지만 도대체 이런 소재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작별인사]는 고도화된 문명에서 안드로이드 로봇과 인간 사이의 이야기다.

너무 흔한 주제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음흉한 작가는 좀 다르다.


인간이 나이 들고 병들면서 신체 기관 하나하나를 안드로이드로 바꾸다 보면 과연 그건 더 이상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늙은 인간의 뇌를 스캔해 안드로이드 로봇에 이식한다면 그건 사람인가? 로봇인가?

고도화된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너무 흡사해서 피부, 신체 기관까지 따라 할 수 있다. 굳이 필요 없을 피와 음식을 먹는 소화 시스템, 배설기관, 연산능력을 다운그레이드한 두뇌를 통해 인간과 다를 바 없다.

그건 인간인가? 안드로이드인가?

이러한 질문을 책의 말미까지 끊임없이 던지는 책이다.


안드로이드 중에서도 '달마'라는 캐릭터는 선지자 같은 로봇이다. 자신의 신체를 버리고 두뇌를 클라우드에 업로드해서 전 세계를 유랑한다. 마치 승천한 것 처럼 말이다. (안드로이드의 현자 느낌을 이렇게 디자인한 작가가 정말 대단하다...)

주인공인 어린 소년은 집을 나갔다가 미등록 로봇으로 체포됐다. 이 어린 소년은 고물 처리장 같은 수형소에 잡혀가기 전까지는 자기가 로봇임을 몰랐다. 그의 부모인 박사가 일부러 숨긴 것이다.

자신이 인간임을 끊임없이 증명하려는 이 로봇과 달마의 문답이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든다. 읽으면서도 나도 내 나름의 답을 생각하고 찾아가기 바쁘다.


근데 이 책의 제목이 왜 [작별인사]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분명히 책 말미에 나왔다. 그리고 전율했다. 소름 돋았던 기억이 난다.

근데 당최 기억이 안 난다.

항상 이런 식이다. 위 내용도 책을 다시 꺼내 보면서 '아 맞다 맞아. 와 이런 내용이었지' 하며 떠올린 거다. 슥 훑어보다가 재밌어서 누워서 한참을 읽어버렸다.



- 2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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