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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ve in Sep 04. 2022

시시한 부탁은 오래도록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장면.

주인공 정원(배우 한석규)이 나이 든 아버지(배우 신구)께 리모컨 사용법을 알려드린다.

아무리 설명을 반복해도 아버지가 따라 하지 못하자 짜증을 내며 방을 나가버린다.

그날 밤, 그는 종이에 리모컨 사용법을 적는다.


이 장면을 보면서 안도했다.

그래,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내가 못된 딸이라서, 인성이 못돼먹어서 짜증이 난 게 아니야. 하고.



열무김치 3kg, 신문 광고에서 본 에센스, 읽고 싶은 책…

온라인 결제가 서툰 엄마의 부탁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진다. “이거 주문해 줘.”와 “전에 그거 언제 도착한대?”의 반복. 며칠 전에는 외국에 거주하는 외삼촌과 작은 고모할머니가 오셔서 급히 호텔을 예약했고, 오늘은 온라인 드로잉 클래스를 등록해 드렸다.


이런 주문은 어렵지 않다. 클릭 몇 번, 몇 분이면 되는걸. 해드릴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도 들고, ‘나 아니면 이런 거 누가 해주나?’하면서 생색도 낼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생각만 해도 아득해지는 순간이 있다. 가장 기피하고 싶은 요청, ‘비밀번호 찾기'.

새로운 기기를 구입할 때마다 온갖 웹페이지와 어플의 비밀번호를 찾느라 애쓴다. 제발 이런 개인 정보는 기억에 의존하지 말고 적어 놓으시라고 수년간 외쳐봤지만, 적어놓은 메모마저 잃어버리시곤 했다. “어떻게 해? 비밀번호 입력하래.”라는 말은 스트레스로 직결되는 버튼 같은 말. 절차 몇 개만 거치면 되는데, 뭐가 어렵냐고? 그런데 똑같은 상황을 수십 번 되풀이하면… 속에서 불이 나는 거다. 때로는 다른 아주머니들이 만들어 줬다며, 정체를 알 수 없는 메일 주소로 가입한 계정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면 답답함은 배가 된다. 심호흡하자 심호흡… 하며 큰 한숨을 내뱉는다.


“너한테 해달라고 하기 눈치 보이니까 그렇지.”

마음이 쿵. 답답한 상황을 반복하는 것도 지치는 일이지만, 의기소침한 엄마 모습은 참을 수 없이 싫다. 디지털 환경에 서툰 부모에게 짜증 내는 딸, 참 좋은 그림이다. 아주 자알 하는 짓이다. 하면서 스스로를 타박해 보지만, 욱하는 감정은 어쩔 수 없다. 치고 올라오는 감정 밑에 깔린 생각은 이렇다.

“엄마, 나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딸만 셋인 집에 늦둥이 막내딸이다.

언니들은 유학 및 결혼으로 나가 산지 꽤 됐고, 스물여덟인 나는 부모님 집에서 함께 산다. 2년 뒤, 서른엔 독립해야지 다짐했는데 엄마는 내년에 나가라 하시고 아빠는 최대한 같이 살자 하신다. 자식 뒷바라지는 그만하고 싶다는 엄마, 딸이 있어야 집에 생기가 있다는 아빠. 그런데 말로는 나가라고 하시면서 누구보다 내게 의지하시는 엄마를 볼 때면 우쭐거림 반, 걱정 반. 숙달될 때까지 붙잡고 알려드려야 하나, 정식 교육을 등록해 드려야 하나 고민인데 엄마는 씨익 웃으며 말씀하신다. “너 불러야지.”


나와 엄마는 유달리 닮았다. 외적으로는 물론 내적으로도 큰 영향을 받았다. '소울메이트'라고 저장해둘 정도로. 감정에 예민한 성격도, 아름다움을 좇고 세상을 알아가려는 탐미/탐구적 성향도, 체형마저도 비슷하다.

서로 매번 부인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둘이 똑같다"며 놀라는 반응이다. 심지어 엊그저께는 내가 처음 갔던 미용실에 엄마도 예약해 드렸는데, 미용사분이 단번에 모녀라는 걸 알아보셨다고. 우리는 닮은 만큼 가장 잘 맞는 친구이기도 하고, 거울삼아 비추어 보며 단점을 고쳐가기도 한다. 상대의 단점이라 생각하는 부분이 본인에게서도 고스란히 느껴지니까. 특히 감정이 격해질 때면 닮았음을 체감한다. 예컨대 대화 맥락보다도 일부 표현에 집착한다거나. 다행히 이런 점은 반대 성격을 지닌 아빠와의 갈등을 중간자적 역할로서 조율하면서 많이 개선됐다.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나가는 과정에서, 엄마뿐만 아니라 나 또한 간접적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이제는 우리 둘 다 전보다 훨씬 이성과 감성 사이 균형점을 맞추며 살아간다.


“너는 시대를 잘 타고났어. 좋겠다.” 지금 내가 하는 일, 주어진 상황이 전부 부럽다고 자주 말씀하신다. 마음 욱신거리게 만드는, 미련 담긴 목소리. 전에는 엄마가 못 이룬 것들을 대신 이뤄내야지  했는데, 이제는 당차게 맞받아친다. “엄마, 지금을 즐겨! 엄마만이 할 수 있는 걸 찾아요.”하고. 엄마나 아내 말고 인간 임경애로 사시라고. 개인의 경험과 연륜을 담아낸 글, 감각을 녹여낸 그림, 내게 영향을 준 그 모든 것들을 응축해 세상에 보여달라고. 엄마이기 이전, 인간 임경애의 스무 살은 그러지 못했으니까.


대학 입학하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대학에 다닐 형편이 안 됐다. 서른에는 일찍 결혼해 아이를 줄줄이 낳아 키우며 현실을 살아냈고, 마흔에는 아이들 키우는 재미에 자신보다 가족이 우선이었다. 육십 중반에 이른 지금에서야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게 됐다. 아이들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나이로 자식들을 다 키워내고 나서야.



엄마가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

나의 엄마라서 이기도 하지만, 엄마의 지금은 나의 미래이기도 하니까. 내가 일곱 살 즈음, 엄마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안목이 좋고 손재주가 뛰어나 인테리어 코디네이터로 일했다. 그 덕에 지금 우리 집은 무려 20년 전에 이사 온 집인데도 구조와 마감이 깔끔하고 현대적이다. 잠깐 가구 공방을 차려 운영하기도 했다. 사업 수완이 좋은 편은 아니라 오래가진 않았지만. 만약 내가 성인이 된 지금 공방을 차리셨다면 적극적으로 도왔겠지.


“엄마는 꿈이 뭐야?” “앞으로 어떤 걸 하고 싶어요?” 요새 이런 질문을 자주 건넨다. 즉흥적이고 활동적인 나와는 달리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엄마는 언젠가 다시 공간을 꾸미고 돌보는 일을 하고 싶다 하신다. “나중에 가게 하나 차려. 내가 보살필게.” 어떤 가게가 될지는 모르지만, 어떤 분위기일지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소박한데 감각이 묻어나고, 잔잔한 듯 리듬감 있겠지. 꼭 인간 임경애처럼.



이로써 그의 꿈은 우리의 꿈이 됐다.

이 부탁을 생각하면 온라인 주문이나 비밀번호 찾기 같은 건 시시한 부탁이지. 심호흡 몇 번 하고 마음 가다듬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시시한 부탁, 부디 오래도록 들려오길 바란다.



/ 2022. 0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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