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에 한 노보살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자식들 키워봐야 아무 소용 없다고 하시며 한풀이를 늘어 놓으셨다. 들어보니, 자식들이 매달 꼬박꼬박 찾아오지도 않고, 자주 전화연락도 하지 않고, 용돈도 남들에 비해 조금 밖에 안 주고, 이래저래 화만 난다는 것이었다.
어제는 또 다른 한 중년의 부부를 만났는데, 그분들은 자식이 중학교 때까지는 성적이 곧잘 나왔는데, 막상 고등학생이 되고부터 공부를 안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괴로움들이 나오게 된 근원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보통 우리는 이런 괴로운 일이 벌어졌을 때 대부분 바깥을 탓하기 쉽다. 자식들 탓을 하거나, 며느리 탓을 하거나, 자식이 공부 안 한 탓을 하거나, 성적 탓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세상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공부가 좀 되었는가를 판단해 보는 좋은 질문 중 하나가 ‘모든 것이 내 탓이다’라는데 동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건 공부인의 아주 기초적인 지혜다.
지혜로운 이는 세상 모든 일을 ‘내 탓’이라고 여기지 외부나 타인 문제로 돌리지 않는다. 교리적으로 본다면 세상 모든 일은 삼계유심이고, 만법유식이라는 말처럼, 모든 것이 내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위의 두 경우에 보통 우리는 자식 탓을 하겠지만, 그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다. 내가 마음 속에서 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분별심을 일으킨 것이다. 즉, 내 스스로 생각의 틀, 고정관념을 세워놓고 그 상에 자식을, 세상을 끼워맞추려고 한 것이다.
내 스스로 자식은 부모에게 자주 찾아와야 하고, 연락도 자주 해야 하고, 용돈도 얼마 이상은 주어야 하고, 성적은 어느 정도 이상은 나와야 한다고 고정관념 즉 상을 세워 놓고 자식을 거기에 끼워맞추려고 한 것이다. 내가 만든 고정된 상에 갇혀서 그 상대로 되지 않을 때 괴로워지는 것이다. 나만 괴로운 것이 아니라, 그 내 상으로 인해 나도 괴롭고 자식들까지 괴롭히는 것이다. 어떤가? 이게 정말 자식 잘못인가? 아니면 내 잘못인가?
그 상, 고정관념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내 마음에서 나와 상대,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을 둘로 나누어 놓고, 비교하면서부터 생겨났다. 즉, 분별심에서 시작된 것이다.
옆 집 자녀들은 결혼해서도 잘 찾아오고, 용돈도 많이 주고, 화목해 보이는데, 또 옆 집 엄친아, 엄친딸들은 공부도 잘 하고, 모든 것을 다 잘하는데 내 자식들은 그것에 비해 떨어진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처럼 누군가와의 비교, 분별, 차별심이 있기 때문에 내 안에 분별심이 생기고, 고정관념과 하나의 허망한 상이 생겨난 것이다. 남들과 비교하지만 않는다면, 그 어떤 상도 생겨나지 않는다.
신심명에서는 지도무난 유혐간택 단막증애 통연명백이라고 하여 지극한 도는 다만 간택하지 않으면 되며, 미워하거나 사랑한다는 분별심만 가지지 않으면 통연명백해 진다고 했다.
분별심이란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내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상이라는 틀을 세우고는 그것과 맞으면 좋아하고 맞지 않으면 싫어하는 간택심, 분별심에서 생겨난다. 좋은 것이 지나쳐 집착이 생기거나, 싫은 것이 지나쳐 거부감과 미운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이 바로 도와 어긋난 마음이다.
도는 어렵지 않다. 좋고 싫다는 분별심, 좋아서 집착하고, 싫어서 미워하는 두 가지 마음만 따라가지 않는다면, 있는 그대로의 현존이 그대로 통연명백한 진실의 삶인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https://youtu.be/D7axRlB9oyY?si=5wkQupq_zJ69cGs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