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나를 좋아한 사람
짝사랑 전문이었던 나도 누군가가 좋아해 준 적이 있었다. 주말마다 '사랑의 스튜디오'에서 항상 어긋나 버리고 말았던 인연들처럼 아쉽게도 나는 그 여자애를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감정이라는 것은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평함이나 공정함 따위는 없다. 내가 열렬히 좋아했던 여자애가 나의 구애를 곤란해했던 것처럼 말이다. 매번 내가 좋아하기만 했었지 누군가가 나를 좋아했던 것은 처음이었던 그때는 너무 어렸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익숙해서 좋아함의 대상이 되었을 때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몰라 도망치 듯 행동했던 기억이 있다. 더 친절하게 해야 하는지, 무뚝뚝하게 해야 하는지, 원래처럼 지내야 하는지. 나중에는 원래 어떻게 대했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 여자애는 다른 친구들과 시선도 다르고 행동도 다르고 분위기도 달랐다. 나는 초연하지 못했고 왠지 모르게 불편한 그 상황을 피하기만 했었다.
그렇게 모르는 척하면 또 안 그렇다는 것처럼 잔잔해지던 묘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점점 무뎌졌던 것 같다. 그 아이의 감정이야 어떻든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여자애의 마음을 분명히 목격하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우리는 같은 조에서 함께 그림을 그렸었다. 다들 색연필을 가져와 가운데에 펼쳐 놓고 서로가 가지지 못한 색과 괜스레 써보고 싶은 색연필도 은근슬쩍 써볼 수 있는 공평함을 가장한 시샘의 시간. 그때 그리고 있었던 그림은 무엇이었는지 기억 나지 않는다. 다만 평소보다도 알록달록 그리고 있었던 것 같고 나는 색연필을 안 가져갔었던 것 같다. 그때 나를 좋아했던 여자애는 근사한 스테인리스 통의 색연필을 가져왔었다. 팽글팽글 돌리면 길어지는 지구 색연필과는 차원이 달랐다. 정말 연필처럼 깎아 쓰는 '색 연필'이었다. 앞서 '시샘의 시간'이라 적었지만 단순히 18색 지구 색연필인지 24색(금, 은도 색으로 있었던 초호화) 지구 색연필인지 하는 차이만 알았지 그런 '색 연필'은 알지도 못했고 또 처음 봤기 때문에 비싸다거나 대단하다고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정말 그냥 가느다란 색연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인식했을 뿐이었다.
그 가느다란 색연필은 어찌나 비효율적이던지 나는 좀 더 짙고 시원시원하게 칠하고 싶은데 영 시원찮았었다. 그래서 한참을 칠하다가 금세 다 닳아 색연필심이 납작해지면 연필깎이에 넣고 무자비하게 돌려 깎았다. '지구 색연필보다 불편하군'. 그렇게 두어 번 연필을 깎고 있었을 때 갑자기 그 여자애가 '와앙'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나는 갑작스러운 그 여자애의 울음에 내가 못 본 사이에 누가 또 장난을 쳤나 했다. 하지만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 여자애는 무엇 때문에 우는지 말을 하지 못했다. 선생님이 달려와 천천히 그 여자애를 달래면서 그 색연필이 그 여자애가 아끼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앞이 하얗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누군가의 소중한 물건을 그렇게나 마구잡이로 써대고 있었다니. 너무나 미안했다.
하지만 그때 더 충격을 받았던 것은 본인이 그토록 아끼던 물건을 막무가내로 사용하는 나를 막지 못하고 참다 참다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던 그 아이의 감정에 대해서였다. 그때, 누군가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조심스러운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뒤로 그 여자애와 사귀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정말 정중하게 사과하고 그 뒤로는 최대한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 뒤로도 나는 여전히 초등학생 꼬맹이에 장난꾸러기였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여자애가 울음을 터뜨렸던 그날이 생생하게 생각난다. 나도 누군가를 그렇게 울음이 터지도록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지만, 그리고 그 마음에 더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했지만 그런 마음을 알게 해 줘서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여자애가 생각나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