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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필 Jan 30. 2024

이것을 겨우 사랑이라고

저녁의 사랑

어머니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몰랐다. 어머니는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는 듯 떵떵거리며 말하곤 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어찌나 당당하게 말씀하시던지 나는 차마 소시지볶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부끄러워할 어머니가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항상 바빴다.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고주망태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한낮 동안 암막 커튼 안에 숨어 혼자만의 밤을 지냈다. 나는 어머니와 정반대의 시차 속에 살아서 어머니를 잘 만날 수 없었다. 겨우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저녁 시간. 어머니는 출근 준비를 하고 나는 저녁을 기다리는 시간. 어머니는 바쁜 와중에 나에게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물었고 항상 나의 대답은 ‘고추장비빔밥’이었다. 별 다른 반찬 없이도 고추장과 참기름을 쉬쉬 섞어 반숙의 달걀 프라이를 올려 깨를 뿌려주면 나는 그것을 그렇게 잘 먹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별 다른 기대를 갖지 않았고, 어머니는 그런 음식이라도 잘 먹는다며 나에게 고마워했다.


  어떤 날은 고추장비빔밥 말고 먹고 싶은 것이 없냐고 물었다. 나는 딱히 별다른 메뉴가 떠오르지 않아 다시 고추장비빔밥을 먹었다. 가끔씩 어머니가 평소보다 출근 준비가 늦어지거나 일이 있어 바쁜 날이면 ‘혼자 알아서 좀 챙겨 먹지’라는 핀잔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당신께서는 내 저녁 걱정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잔다고 했다. 그 당시에 나는 어머니가 자는 것에 급급해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말뿐인 걱정, 이것을 겨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나서 아내는 걱정이 하나 늘었다. 연인일 때부터 내가 제 때, 끼니를 챙기지 않는 것 때문에 걱정이 많았는데 이제는 본인이 식사를 챙겨줘야 한다는 부담을 갖는 것 같았다. 나는 딱히 가리는 음식도 없지만, 사실 굶는 게 익숙해서 굳이 무언가를 때마다 챙겨 먹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외식을 줄이기로 다짐한 달부터 아내는 집밥을 더 자주 해주었다. 그러면서 항상 미안하다고 했다. 별 다른 반찬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나는 아내가 준비해 주는 음식들이 항상 맛있다. 간이 세지 않고 싱겁게 먹는 입맛도 나와 잘 맞는 데다 가진 재료 만으로 이렇게 저렇게 잘 응용해서 무언가 훌륭한 음식들을 해준다. 나는 다양하게 골라가며 먹는다는 것이 어색하다고 느낄 정도로 반찬이 많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져 그게 그렇게 재밌고 또 맛있다.


  아내는 내가 항상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그저 맛있어서 맛있게 먹은 것뿐인데, 이것을 겨우 사랑이라고 느껴주는 아내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근사한 선물을 사주지도, 특별한 곳에 데려가지도 못하는데 겨우 이런 것을 고마워하다니. 나는 부끄러웠다.


  나는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고추장비빔밥을 먹는 것처럼 크게 한 술을 떠 입에 욱여넣는다. 어머니는 내가 아무런 반찬도 없이, 별 다른 투정도 없이 묵묵히 고추장비빔밥을 먹어줄 때 고맙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서야 어머니가 정성을 다해 밥을 짓고, 고추장을 비비고, 달걀을 구워 예쁘게 얹는 모습을 그려본다. 이제야 미안하고 고마운 이 뒤늦은 마음을, 겨우 이것을 어머니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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