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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필 Feb 09. 2024

김치와 곱창

'잘'과 '못'의 합은 '잘못'이 되지만

사람은 각각의 개성만큼이나 못 먹는 음식도 다양하다. '혐오 음식'이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하는 그것들은 사실 누군가에겐 굉장히 애착을 갖는 음식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표현에 있어 조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안' 먹는 것이 아닌 '못' 먹는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그만큼이나 어렵고 불쾌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못 먹는 음식으로 꼽는 대표적은 것들은 닭발, 곱창, 족발, 동물의 머리, 귀와 같은 특수한 부위들이 주를 이룬다. 때로는 채소에도 그런 것들이 있는데 오이, 당근, 가지, 버섯 등이 그렇다. 냄새부터 식감까지 싫어하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나는 김치를 싫어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내가 김치를 싫어하기로 선택해서가 아니라 참 곤란하게도 대한민국에서 하필 또 남자로 태어난 데다 성까지 김 씨인데도 불구하고(종종 초등학생 저학년 같은 경우에는 김 씨라는 이유만으로 '김치'라는 별명을 짓기도 하기에) 좋아할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김치 때문에 많이도 타박을 당했다. 혓바늘이 나도 김치를 안 먹어서였고 피곤해도, 키가 안 자라도 모두 다 김치를 먹지 않아서였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오기가 들어 더욱 김치를 먹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하도 그런 말을 듣다 보면 그것이 정말 사실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래서 나는 김치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는 나 자신이 싫기도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조금씩 김치를 먹을 수는 있게 됐다. 몇 가지의 조건이 붙긴 한다. 하지만 여전히 쉰 김치를 먹는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참으로 애석하게도 아내는 김치를 참 좋아했다.


  우리가 연애를 할 때부터 결혼을 한 초기까지 아내는 적어도 나의 자취방 냉장고에 김치를 넣지 않으려 했다. 내가 김치의 쉰 냄새를 못 견뎌하는 것을 잘 알아주었던 것이다. 가끔씩 편의점에서 김치를 사서 반찬으로 곁들여 먹는 정도여서 냄새도 많이 나지 않았다. 나는 어리석게도 여자친구(였던 아내)가 그다지 김치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 부부가 아끼고 예뻐라 하는 학교 후배이자 동생인 친구는 손재주가 무지하게 많다. 특히나 요리에 있어서 그런데 그 아이의 집에 가보면 요리 박물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한 식기구와 요리 도구를 볼 수 있다. 어쨌든 그렇게 요리에 진심인 아이이기 때문에 김장도 직접 담근다고 했다. 그 말에 아내는 눈이 매우 번뜩였다. '자신과 함께 김장을 하자'는 의지로 매우 가득 찬 발언을 했다.


  여자 둘이서 얼마나 많은 김치를 먹겠는가. 아니,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나는 김치를 싫어하는 만큼 별로 김장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었다. 김장철에 코로나에 걸려 병상에 누워 있던 나 없이도 두 여자는 수십 포기의 김치를 만들어냈다. 김장에 관심은 없어도 매우 힘든 노동이라는 것 정도는 대충 들어 알고 있는데 이걸 정말 여자 둘이서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었다.


  아내가 정성껏 담근 김치는 아직까지도 잘 익어가고 있다. 매 끼니때마다 자신이 담근 김치를 먹으며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아내를 보면서 또 미안했다. 나를 위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까지 참아왔다는 사실이 괜히 마음을 더 먹먹하게 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냉장고에 김치 냄새가 나더라도 괜찮으니 항상 아내가 먹을 김치를 상비해 두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얼마 전 우리 부부가 동네를 지나다 작은 트럭에서 판매하는 '순대곱창'을 보고 깨달았다. 아, 그동안 아내만 참았던 건 아니었구나. 나도 몇 년 만에 야 곱창을 먹을 수 있었고 먹는 내내 감탄을 내뱉었다.


  아마 몇 년 만에 곱창을 먹는 내 모습도 아내와 같았을 거고, 그것을 보는 아내의 마음도 내 마음 같았을 것이다. 우리는 또 서로를 안쓰러워하고 또 미안해하며 또 고마워했다. 각자가 '잘 먹는 것'과 '못 먹는 것‘을 억지로 섞을 수는 없다. 그건 결국 '잘못'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각자의 그릇을 존중해 줄 수 있는 것이 가장 쉽고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우리 부부는 앞으로도 김치를 먹고 곱창을 먹을 것이다. 


  각자 다르지만, 꼭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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