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반사가 된다
나는 나를 미워하는 것에 선수급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나를 미워하고 무시하고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만으로는 '선수급 재능'이라고 불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소설의 스쿠르지처럼 항상 매사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나쁜 사람은 개성으로 취급한다. 그건 적어도 특정 누군가만을 괴롭히는 것은 아니니까. 앞서 말한 것처럼 특출 난 자기 비하의 수준이 되려면 나를 학대하면서 동시에 남을 찬양하는 수준은 되어야 한다.
나를 미워한다는 것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스스로를 꼴도 보기 싫어하는 것이 시작이고 스스로에게 지나칠 정도로 엄하게 대하는 것도 포함된다. 자기 관리를 매우 잘하는 사람들이 '지나칠 정도로 스스로를 엄하게 대하는' 부류로 오해할 수 있는데 위에서 말하는 것은 그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자기 관리'가 아닌 '자기 폄하' 또는 '자기 학대'라고 부르는 것이 조금 더 맞는 표현에 가깝다.
나는 타인의 좋은 부분을 잘 찾아내어 진심으로 칭찬하는 것을 잘한다. 설사 매우 작은 것일지라도 '큰 장점'처럼 칭찬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그러기 위한 방법은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면 된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나의 장점을 볼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나의 작은 점들을 얕잡아 보고 도드라는 점들도 뭉개버렸다. 세상에는, 아니 멀리 가지 않아도 그냥 내 주변에는 항상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줄 세우기를 했었다. 그리고 나는 얼마나 뒤에 있는지를 거꾸로 세곤 했다.
아내는 이런 나의 모습들을 알아 가면서 '스스로를 사랑해 주라'라고 했다. 난 진심으로 그것의 의미를 몰랐다.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몰랐다. 그러자 아내는 아주 쉽게 설명을 해줬다.
“당신이 나를 사랑해서 해주는 것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조금 느려도 기다려주는 것, 이해하기 위해 당신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는 것, 달라도 인정해 주는 것, 잘하는 것들을 칭찬하고 못 하는 것들이 있어도 나무라지 않는 것, 고맙다고 말하는 것,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것, 믿어주는 것, 그러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해주는 것, 불안해하면 다독여주고 안아주는 것,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 것,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아프지 않게 챙겨주는 것, 힘들면 기댈 수 있게 곁에 있는 것, 때로는 내가 힘든 것을 털어놓는 것 등.
나는 신나게 늘어놓은 대답들에 만족하며 내심 으쓱거리며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주 훌륭한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내가 해준 대답에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응. 그렇지? 그렇게 본인에게 해주면 돼.”
앞서 말한 것들을 '나'에게 해준다는 건 정말 상상도 못 해본 일이었다. 그 대상에 내가 들어갈 것이라고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생각보다 쉬운 방법에 어리둥절했었다. 하지만 아내는 쉽지 않은 과제를 내주었다. 거울을 보고 사랑한다고 얘기해 주라는 거였다. 거울 앞에 선 나는 그 너머에 보이는 녀석에게 이상하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게 뭐라고 입이 녹아내린 것처럼 도무지 떼어지지가 않았다. 겨우 꺼낸 말은 '수고 많았다'였다.
왜 나는 그 한 마디에 울컥 눈물을 쏟아냈을까. 그 누구의 위로보다도 마음을 크게 울리는 말이었다. 얘는 정말 나의 그 지난한 수고들을 알고 있을 거였고 또 내가 이 녀석의 긴 외로움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나는 꽤 많이 건강해졌다. 나 자신에게 괜찮다고, 수고했다고도 제법 자주 얘기해 준다. 아직 사랑한다는 말이 자주 나올 정도는 아니지만.
나는 인생에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그래서 많이 두렵다. 아내와도 긴 시간 대화를 나누고 몇 번이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전혀 할 수 없었을 선택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아내만이 나를 지탱해 주는 것은 아니다. 어느덧 제법 성장한 내 안의 '나'가 할 수 있다고, 해보자고 말한다. 나와 아내의 응원이라니. 진심으로 용기가 난다.
앞으로도 나는 아내에게 하는 것처럼 나에게도 내 편이 되어 주고 사랑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