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지만 다르게, 다르지만 또 같게
얼마 전, 우리 부부는 어느 노부부를 만나고 왔다. 머리가 하얗게 센 부부는 웃는 모습이 참 아름다운 한쌍이었다. 하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조금씩 마음이 어려워졌다.
선생님과 사모님은 벌써 결혼하신 지 40년이 되었다고 했다. 자식들도 다 커서 이제는 손주들도 건강히 크고 있다고 했다. 집안 곳곳에 걸린 가족사진은 화목해 보이고 행복해 보였다. 사모님은 이제 왕래가 적어진 집에 사람들이 오자 신이 나신 듯 이야기를 한참 하셨다. 이야기 레퍼토리는 참 다양했는데 자식들 이야기, 여행 이야기, 지난 시절 이야기 등 끊길 줄을 몰랐다. 그중에서도 모든 이야기에 등장하며 절대로 끝나지 않았던 것은 남편 흉이었다.
처음엔 장난처럼 들리던 남편 흉이 모든 이야기에 편재되어 있고, 끊이지 않는 데다 들을수록 원망과 힐난이 섞여 있는 것이 느껴졌다. 젊은 시절부터 만나셨던 두 분은 서로의 가치관이 맞아 결혼하셨다고 했지만 그 외에 모든 것이 다르다고 할 만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들으면서도 결혼 생활이 쉽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면 과연 40년 동안이나 지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려웠다.
생활 패턴도 다르고 자녀의 교육관도 달랐다. 훈육에 대한 부분도, 대부분의 크고 작은 결정을 할 때의 의견까지도 달랐던 부부는 아주 오랜 시간 켜켜이 축적되어 온 것 같았다. 그 모든 다름이 사모님에게는 '이해불가'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행동이 내 기준에서는 아주 상식선을 벗어난 수준은 아니었다. 물론 골치 아플 만한 일들도 하셨던 것 같긴 하다. 때론 너무했다 싶을 만큼의 실수도 있었지만 또 죄인처럼 대할 일들은 아닌, 어르신들의 크고 작은 일들이었다.
40년을 함께 지지고 볶다 보면 서로의 모난 부분들이 많이들 깎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헤어질 결심을 하실 생각은 없어 보이지만 두 분은 서로 포용할 생각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우리 부부가 낯선 타지에서 결혼할 때, 교회 목사님께서 주례를 해주시면서 많은 좋은 말들과 위로를 해주셨지만 이 말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서로 다르지만,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것들을 볼 수 있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나는 아내와 은근히 공통점이 많으면서도 다른 점이 많다. 내가 잘하는 것과 아내가 잘하는 것, 내가 서툰 것과 아내가 서툰 것, 내가 좋아하는 것과 아내가 좋아하는 것 등이 은근히 다르다. 쉴 때의 양태도 다르고 각자가 힘들어하고 두려워하는 부분도 다르다. 이렇게 달라서야 어떻게 부부가 되었나 싶지만 사실 다르기 때문에 감사한 일들이 많다. 누군가가 한쪽으로 기울게 될 때, 다른 한쪽에서는 다행히 함께 쓰러지지 않을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존재로 있어준다. 서로가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해보려고 하는 것도 얼마나 고맙고 즐거운지, 서로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채워줄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우리 부부는 노부부를 만나고 오는 길에 "우리도 혹시 저렇게 될까?"하고 서로에게 물었다. 우리도 어쩌면 그분들처럼 다른 것들이 많다. 하지만 서로가 사랑한다는 커다란 공통점 아래 모든 것들이 포섭될 수 있다. 다르지만 같게, 또 같지만 다르게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며 오래오래 서로를 존중하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