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홍수
화수목금토일, 월요일 건너뛰고, 다시 화요일. 몇 달만에 보는 전 회사 동료들부터 간만에 서울 방문한 타지 친구, 정기적으로 만나는 친구와 친구네 어머니까지. 하루 쉬고 연달아 6일간 신발을 신으며 머릿속으로 지난 대화거리를 곱씹었다. 보통 사람들에게서 에너지를 얻는 편인데, 최근 몇 달 동안은 사람에서 얻는 에너지보다 혼자 충전하는 에너지의 소중함을 알게 되어 ‘주 4회 미만’으로 나름의 기준을 세워 약속을 잡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깨져버린 기준과 지쳐버린 나 자신. 이번 주말엔 양말도 신지 말자, 다짐.
-소재 고갈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내게 가장 괴로운 것은 재미없는 글을 쓰는 것이다. 이것은 소재 고갈에서 기인한다. 쓰고 싶은 글만 쓸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대개 아이디어가 넘치면 머릿속에서 팝콘이 터지듯 흥미로운 소재가 팡팡 떠오른다. 이는 자연스레 쓰면서도 재미있는 기사의 기반이 된다. 하지만 지난달과 이번 달 과도한 청탁에 탈수가 다 된 빨래에서 물기를 짜내듯 아이템을 억지로 쥐어짜는 나 자신을 발견. 재미없다. 안 궁금하다. 그래도 써내야지 어쩌겠어. 일이 뭐 재밌어서 일이냐고, 돈 버는 수단이니 일인 거지.
-행복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와 ‘Happier’. “Are you happy?” “그래 행복이란 건 아마 뜬구름 같은 것” 오늘 본 영화부터 노래까지 죄다 행복을 논하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함께 영화를 본 친구에게 물었다. “행복해?” “행복.. 행복…? 흠 넌 행복해?” 부메랑 마냥 되돌아온 물음에 “글쎄, 뭐” 하다가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거 아니겠냐. 그래, 행복해” 하고 대화를 마무리하곤 혼자 속으로 되새김질.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건가? 그런 건가.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은 행복하신지 어떠신지.
-고백
OTT의 장점은 좋아하는 장면을 몇 번이고 돌려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나 진짜 무서운 놈이거든? 옆구리에 칼이 들어와도 꿈쩍 안 해. 근데 넌 날 쫄게 해. 네가 눈앞에 보이면 긴장해. 그래서 병신 같아서 짜증나. 짜증나는데 자꾸 기다려.” 30초 남짓한 그 장면을 못해도 여덟 아홉 번은 돌려봤다. 좋아한다는 말 한토막 없이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 ‘좋아해’ 혹은 ‘사랑해’ 라거나 ‘보고싶다’ 따위의 말보다 훨씬 심장 가까이 와닿았다. 말에도 손이 있다면 갈비뼈 사이로 그 손을 쑥 넣어서 심장을 꽉 쥐었다 놓았다 툭툭 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