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DESTROYER> 2018년
지혜로운 사람은 돈으로 시간을 사고, 어리석은 사람은 시간을 팔아 돈을 번다고 한다. 부자든 빈자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유한한 건 '시간'뿐이다. 물론 어린아이와 노인이 체감하는 시간이 같을 순 없다. 대체로 시간은 나이 들수록 가속도가 붙어 흘러간다고 느낀다. 이것은 인간의 주관적인 경험과 감정에 의한 것이지 과학적으로 보면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진보하는 과학은 시간도 돈으로 사고팔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 조만간 그런 일이 실현될 것 같진 않지만, 물리의 법칙을 깨고 그것마저 인간의 탐욕과 이기에 좌우된다면, 가장 절박하게 시간을 매입할 사람들은 누구일까.
늙고 초췌한 경찰 에린(니콜 키드맨 Nicole Kidman) 앞에 범죄조직 우두머리 사이러스(토비 캡벨 Toby Kebbel)가 모습을 드러낸다. 17년 만이다. 폐인에 가깝게 사는 에린은 그의 존재에 몸서리치며 복수를 결심한다.
17년 전, 에린은 동료 경찰 크리스(세바스찬 스탠 Sebastian Stan)와 함께 범죄조직에 잠입한다. 은행 강도 조직의 일망타진을 위해 아슬아슬하게 침투한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범죄 행위에 가담한다. 그 와중에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된다. 에린은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이라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조직이 강탈한 돈을 빼돌리자고 크리스를 설득한다. 조직원들이 은행을 털던 중, 크리스는 사이러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하고 에린은 신분을 노출시켜가며 크리스를 구하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17년의 시간은 젊고 아름다운 30대 여자를 괴팍하고 초췌한 50대로 만들었다. 단지 시간의 작용만은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의 처참한 죽음과 복수심, 범죄 조직에 잠입한 경찰이라는 신분 노출과 그에 따른 위협은 한 여자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버린다.
니콜 키드맨의 변신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놀랍다. 한 영화에 담긴 17년이란 격차는 단지 분장에 따른 물리적 변화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주근깨가 도드라져 보이는 발그레한 피부가 휘어진 코와 다크서클이 난무한 거친 피부로 바뀐 건 그렇다 쳐도, 한쪽 다리를 절듯이 구부정하게 걷는 모습은 70대 노파를 보는 듯하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험악한 말투와 시종일관 증오와 분노에 찬 표정, 세상에 살아있을 이유가 없다는 듯한 절망의 몸짓은 대체 저 여자의 17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감히 상상할 수 없게 한다.
분노와 절망은 복수를 잉태한다. 에린은 자꾸 엇나가는 딸 셀비를 지키려는 모성조차 거칠게 표출한다. 다시 나타난 사이러스에게 닿기까지 에린이 거치는 여정은 과거와 교차되어 보인다. 그녀는 17년 전의 조직원들을 찾아가 하나씩 응징하고 파괴한다. 그들에 의해 파괴된 자신의 시간을 그런 식으로 복수하는 듯싶다. 마지막으로 사이러스를 찾아낸 에린은 허탈할 정도로 간단하게 복수를 마무리한다. 17년을 관통하는 지독한 증오가 이렇게 끝나는 건가 싶었는데, 그녀를 덮친 진짜 복수는 이제 시작이다.
에린은 죽은 크리스의 아이를 낳았다. 딸 셀비는 엄마 말은 지독하게 안 듣는 문제아다. 17년 전 크리스가 죽던 날 은행에서 빼돌린 돈가방을 다시 찾은 에린은 그 돈마저 보라색 염료에 뒤덮여 쓸 수 없는 돈이라는 것을 알고 절망한다. (※ 미국에선 은행 금고에 돈을 보관할 때 랜덤으로 보라색 염료를 함께 넣어 도둑맞았을 때 염료가 터지게 한다.) 에린은 끝내 딸과 소통하지 못하고 떠나보낸다. 사랑하는 남자에 대한 복수를 끝내고, 그 남자의 목숨과 맞바꾼 돈마저 무용지물이라는 걸 확인하는 것으로 자신에게 마저 깔끔하게 복수한다.
고통 속에 흘려버린 시간은 복수를 한다고 되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은 매정해서 아무리 현재를 파괴하고 응징해도 복구되지 않는다. 복수를 해치우면 감정적으로 후련할 순 있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죽은 사람이 사람이 살아오는 것도 아니고, 늙은 육체가 젊어지지도 않는다. 심지어 17년 간 감춰둔 돈마저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다. 후련함과 맞바꾼 허탈함은 어떤가. 부모의 원수를 위해 긴 세월 칼을 갈았던 협객이 원수를 찌르자마자 지독한 회의에 빠지는 건 다반사다. 원한이 깊고 무거울수록 복수라는 생의 목표가 달성되고 사라지면, 살아갈 이유마저 없어진다. 복수를 생의 목표로 삼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그 끝의 허탈함을 견디기엔 복수가 너무 잔인하기 때문이다.
17년 동안 자신과 딸을 파괴한 에린은 진정한 파괴자다. 그녀가 자신의 젊음과 사랑을 파괴한 것에 비해, 조직원들에게 행한 복수는 보잘것없어 보인다. 물론 그녀도 자신의 삶을, 아름답고 생기 넘치던 얼굴을 이런 식으로 망가뜨리며 살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는 죽었지만, 그의 아이를 낳았으면 사랑으로 키웠을 수도 있다. 안타깝게 에린은 그녀의 망가진 육체만큼이나 생의 젊은 시간을 파괴하며 살았다. 결국 복수는 성공했지만, 자기 자신과 과거의 시간에게 앙갚음을 되돌려 받는다. 알코올 중독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과 회복하기 요원한 딸과의 관계는 그녀가 치른 복수의 대가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누가 그녀를 말릴 수 있었을까. 복수심이라도 없었다면 어쩌면 그녀는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에린은 경찰과 범죄 조직 양쪽 모두 배신했고 배신당했다. 사랑도 잃고 젊음도 잃고 딸 마저 잃었다. 세상을 파괴하려는 사람은 자신마저 파괴할 수밖에 없다. 자기 몸은 온전히 지키면서 남을 파괴할 수는 없다. 결국 남에게 겨눈 칼로 자신을 찌를 수밖에 없는 게 이 세상에 통용되는 복수의 룰이 아닌가 싶다.
물리학의 궤변이 일어나 시간이 지금의 공평성과 가치를 잃지 않는 한, 시간을 동반한 복수라는 에너지는 세상과 나를 동시에 파괴한다. 먼 미래에 시간을 거래하는 사람들은 복수를 위해 그 거래에 빠져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되돌리면 꽤 많은 복수심이 사라질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