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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Oct 06. 2019

상큼하고 아삭(ASAC)한 포르테 디 콰트로 콘서트

포르테 디 콰트로 콘서트, 안산 문화예술의전당, 2019. 10. 4.

그곳은 처음이었다. 처음인데도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지난 7월 『언플러그드Ⅱ』 이후 처음으로 포르테 디 콰트로 완전체 무대를 보기 위해 안산 문화예술의 전당에 갔다. 개관 15주년 기념 ASAC 슈퍼 콘서트다. 해돋이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내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2년 전 포디콰 클래시카 투어의 마지막 여정, 성남 아트센터에서 했던 콘서트가 떠올랐다. 딱히 왜 그 공연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는데, 2017년 12월 31일의 흥분과 설렘이 한순간에 되살아났다. 해돋이 극장이 성남 오페라하우스와 왠지 모르게 비슷하다는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이 들었다.


클라시카 성남 콘서트 2017.12.31.


2017년 마지막 날, 내 기억에 그들은 금박 장식이 장착된 노타이 블랙 슈트를 입고 무대에 섰다. 2부에서는 보랏빛 재킷을 입었었다. ♥좋은날로 시작된 공연은 두 시간 반이 살짝 못 미쳐 끝났다. 어찌나 아쉽던지. 그동안 포디콰 공연을 꽤 다녔는데, 여전히 마지막 곡을 들으면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쉽다.


디토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서곡을 들으며 기다리는데, ♥Odissea 전주가 흐르며 네 남자가 등장했다. 노타이 블랙 슈트를 깔끔하게 장착한 그들은 늘 그렇듯 빈틈없이 열창했다. 언플러그드에서 말을 아꼈던 현수 군이 예전의 발랄한 현수 군으로 돌아온 듯 아무 말을 투척했다. 자리 위치 때문인지, MC처럼 진행 멘트를 하는 훈정이 형과 주로 대화한다. 객석에서 보니 좀 웃겼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둘이 마주 보고 서서 얘기하는 모습이 버퍼링 자주 걸리는 만담 형제 같았다.  (ㅋㅋ)


현수 군의 의지대로 그들의 음성과 자태와 분위기는 아주 '아삭(ASAC)'할 정도로 상큼했다. 포디콰에게는 대체로 '웅장하고 감동적이다, 비현실적으로 황홀하다, 저 세상 화음이다' 정도의 수사가 어울린다. 물론 날로 돋보이는 네 남자의 미모 덕분에 상큼한 과즙미도 풍긴다.


형들이 토크를 안 받아줘서 힘들어하는 태진 군, 과묵한 와중에도 말하는 족족 빵빵 터뜨리는 벼리 군, 변함없이 믿음직하고 단아한 훈정이 형, 그리고 아무 말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하는 해맑은 현수 군까지. 이들을 보러 낯선 공연장에 가는 게 이젠 익숙하다. 나 같은 (지독한) 길치와 방향치를 스스럼없이 움직이게 하는 '네 사람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사실 얼마 전에 다른 크로스오버 팀 공연을 보러 갔었다. 처음 가보는 공연장이 생각보다 너무 멀어 가는 내내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며 후회했었다. 어렵게 도착해서 본 그들의 공연은 꽤 괜찮았다. 무대에서 퍼포먼스도 하고, 객석으로 이동해 노래하며 사진 촬영하는 시간도 주는 등 다채로웠다. 그런데 보는 내내 자꾸 포디콰 생각이 났다. 그들이 잘못한 건 없다. 오히려 매우 훌륭했다. 그래도 들어봤던 노래가 나오면 저걸 포디콰가 부르면 얼마나 황홀할까, 역시 볼라레는 태진 군이 불러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자꾸 이어졌다.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데, 누군가에게 길들여진 마음이라는 게 참 요상하다.


이번 공연엔 지금껏 포디콰 음성으로 들어보지 못한 노래는 딱 두 곡뿐이다. 벼리 군이 솔로로 부른 독일 아리아와 훈정이 형이 부른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넘버 'The Impossible Dream'이다. 벼리 군의 독학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가사를 못 알아들어도 어려운 외국어 아리아를 소화해내는 벼리 군이 너무 훈훈해 마음이 뿌듯하다. 고훈정 배우가 내년엔 맨 오브 라만차 공연을 하는 건 아닐까, 그럼 세르반테스를 보러 회전문 돌아야 하나,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처음 오신 관객들을 위해서인지 네 남자는 오래간만에 팬텀 싱어 나왔을 당시 얘기를 했다. 개인적으론 내가 처음 갔던 포디콰 콘서트(클래시카 성남 콘서트)와 왠지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익숙한 곡들을 들으니 예전에 봤던 포디콰 무대가 끊임없이 떠올랐다.


클라시카 콘서트


수많은 콘서트의 오프닝을 장식한 ♥Odissea는 말할 것도 없고, ♥Notte Stellata를 부를 땐 아카펠라를 포함해 그동안 무대에서 봤던 수많은 '별이 빛나는 밤'이 떠올랐다. ♥베틀 노래에선 언플러그드 공연 때 송영주 쌤이 다가오지 말라는데도 피아노 주위로 꾸역꾸역 모여서 부르던 네 남자의 모습이 겹쳐졌다.


♥La Preghiera가 연주될 땐 작년 연말 콘서트에서 봤던 그래픽까지 떠올랐다. 소년과 소녀가 나왔는데.. (맞나?) 이 곡은 후반부에 베이스 태진 군의 고음 열창이 늘 경이롭게 들린다. ♥좋은날은 2017년 마지막 날 성남 콘서트의 포문을 연 곡이다. 언플러그드 때 2부 시작하면서 네 남자가 깜찍하게 객석에서 노래했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오늘은 오케스트라 연주가 너무 크게 들려 좀 어수선했다. 내가 그리 귀가 밝은 편이 아닌데, 현악기 중 하나가 유난히 도드라지게 튀어 거슬렸다. 음향의 문제인지 오케스트라의 문제인지 모르겠으나 조금 당황스러웠다.


♥외길은 나에게 외길 전문 이벼리 선생의 담백한 해설과 함께 간직되어 있다. ♥어릿광대를 보내주오(Send in the Clowns)는 2018년 1월 고양에서 한 클라시카 앙코르 콘서트에서 태진 군 솔로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 기억엔 그런데 맞는지 모르겠다) 태진 군이 그동안 다른 공연에서 불렀는지 모르겠는데, 이번에 두 번째 들어서 너무 반가웠다. ♥엄마의 프로필은 왜 꽃밭일까는 얼마 전 현수 군 가곡 콘서트에서 들었다. 현수 군 가곡 음반이 나오길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다시 들으니 또 울컥했다.


♥Panis Angelicus는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2018년 4월 현수 군 단독 콘서트에 게스트로 나왔던 세 남자가 마이크를 내리고 불렀던 모습이 각인되어 있다. 이 장면은 절대 잊히지 않을 듯싶다. ♥Il Libro Dell'Amore는 포디콰 콘서트에 거의 빠지지 않는 셋 리스트인데, 수많은 '사랑의 책'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롯데콘서트홀에서 무대 사이드 쪽 객석을 향해 네 남자가 빙그르르 돌면서 부르던 모습이다. ♥아베마리아를 부를 때 가끔 현수 군이 몸을 흔들며 열창하는 모습도 떠오른다. 개인적으로 가장 멋있으면서 가장 섭섭한 곡, 포디콰를 무대 뒤로 사라지게 하는 ♥아다지오는 언제 들어도 장중하고 슬프다.


공연 내내 그동안 다녔던 포르테 디 콰트로 콘서트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젠 나에게도 회상할 장면들이 제법 많이 쌓였다. 앞으로 계속 쌓이겠지. 그들은 변함없이 노래 한 곡 끝날 때마다 90도로 인사하고, 각 맞춰 등을 세운다. (다른 그룹은 제각각 인사하던데. ㅋㅋ) 역시 포디콰! 버퍼링이 자주 걸리는 아무 말도 여전하고, 네 남자의 미모는 날로 일취월장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얘기라며, 곧 나올 3집과 연말 콘서트 얘기를 투척하는 훈정이 형 또한 변함없다. 그들이 변하지 않는 한 나도 변하지 않을 테니 앞으로 더 많은 추억이 쌓이겠지. 2019년 10월은 '10월의 어느 멋진 날'이 이어질 것 같다. 포디콰를 볼 무대가 또 있으니. 셋릿은 좀 바꿨으면 싶지만, 오늘 공연 그대로 '복사/이어 붙이기' 해도 큰 불만은 없다. 포디콰 is 뭔들!




1부> 노타이 블랙 슈트

♬ 디토 오케스트라 서곡

♪Odissea ♪Notte Stellata ♪베틀 노래 ♪단 한 사람 ♪La Preghiera ♪Wish ♪Senza Parole ♪Fantasma D'Amore



2부> 그레이(?) 계열 세미 정장

♪좋은날 ♪외길 ♪Dein lst Mein Ganzes Herz (이벼리 솔로) ♪Send in the Clowns (손태진 솔로) ♪엄마의 프로필은 왜 꽃밭일까 (김현수 솔로) ♪The impossible Dream (고훈정 솔로) ♪Panis Angelicus ♪Love of My Life ♪Il Libro Dell'Amore ♪Ave Maria



앙코르>

♪Luna ♪Adag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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