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정복 Conquest of Happiness> B. Russell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 철학자이자 문필가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의 주장이다. 꽤 시니컬한 회의주의자가 그렇게까지 말했다면, '행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요원한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에 도달하는 확실한 방법은, 행복을 열렬히 구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의 사전적 정의는 '더없이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감정이나 상태'다. 단순한 것 같지만 매우 형이상학적이다. 딱히 큰 사고를 당하거나 병을 앓지 않아도, 인간의 삶은 대부분 '더없이 편안하고 만족스럽지' 않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바람 자체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행복에 대한 열망은 '더없이 편안하고 만족스러운'게 아닌 모든 것을 불행으로 치부하게 한다. 아예 행복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게 인간을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할지도 모른다.
러셀은 이 책에서 불행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노력하기만 하면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그 믿음을 근거로 '행복이 당신 곁을 떠난 이유(Cause of Unhappiness)'와 '행복으로 가는 길(Causes of Happiness)'을 나누어 설파한다.
러셀은 (이 책을 쓴 것이 약 80년 전이지만,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현대인이 불행한 이유는 경쟁, 권태, 피로, 질투, 죄의식, 피해망상, 여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면 자기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몰입이다. 자아도취나 과대망상, 남들이 자기만 미워한다는 합리적이지 못한 자기 비하는 개인을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결국 제 안에 가둬 불행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얼핏 나에게 해당사항이 없어 보이지만, 책을 읽으면 나를 포함한 우리 주위의 평범하고 불행한 사람들의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
당신의 장점을 과대평가하지 말라.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당신과 마찬가지로 관심을 갖고 있다고 상상하지 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을 해코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만큼 당신에 대해 골몰하고 있다고 상상하지 말라.
러셀은 말한다.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은 과로가 아니라 걱정이나 불안이라고. 왜 나만 미워하지? 내가 일찍 빠지면 민폐가 아닐까? 내가 이렇게 힘든데 왜 날 신경 써주지 않지? 등. '자기 집착'이라는 불행의 요인을 자각했다면, 합리적으로 그것을 처리해야 한다.
세상에서 상처 받은 영혼들에게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조언은 매우 달콤하게 들릴 수 있다. 무서운 세상을 외면하면 나 자신이 오롯이 도드라져 보이며 조금 더 가치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조언은 수도승으로 사는 게 아닌 이상, 실질적으로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살고 싶어도 혼자 살 수 인간은 없다. 이불 밖이 무섭다고 안 나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버리는 짓이다. 이 책은 세상이야말로 나의 생존을 지탱해주는 토대이며, 나에게 행복한 삶을 영위할 기회라고 말한다. 외부세계에 대해 열정과 관심을 가지고 세상과 교류하면서 행복을 찾아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사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게 읽은 부분은 체념에 대한 러셀의 통찰이다.
체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절망에 근원을 둔 체념이고, 다른 하나는 정복할 수 없는 희망에 근원을 둔 체념이다. 전자는 나쁜 것이고, 후자는 좋은 것이다. 중요한 일에 실패해 원대한 성공에 대한 희망을 포기해버린 사람은 절망적 체념을 몸에 익히기 쉽다. 절망적 체념을 몸에 익힌 사람은 진지한 활동이라면 뭐든지 단념할 것이다. 그는 종교적인 관용구나 명상이야말로 인간의 참된 목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절망감을 감추기도 한다. 하지만 내면의 좌절을 숨기기 위해서 어떤 위장을 한다고 해도 이런 사람은 본질적으로 쓸모없는 인간, 철저히 불행한 인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정복할 수 없는 희망 때문에 체념하는 사람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행동한다. 정복할 수 없는 희망은 개인적 관심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개인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든지 간에 죽음이나 질병 앞에 무릎을 꿇거나, 적에게 정복당하거나, 성공에 도달할 수 없는 어리석은 길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희망이 꺾이는 일이 수천 번 되풀이된다고 할지라도, 만일 그 개인적인 목적이 인류를 위한 보다 원대한 희망의 일부인 경우에는 아무리 실패를 거듭한다 해도 완전한 절망감에 빠지지는 않는다.
위대한 발견을 원하는 과학자도 실패할 수 있고, 머리에 치명상을 입어 일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의 진보와 그 이상에 대한 개인적인 공헌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순전히 이기적인 동기에서 연구에 임했던 사람이 느끼는 것과 똑같은 절망감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체념을 바람직하지 않게 내 멋대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간사하고 편리하게 아무 때나 무엇이든 체념하고 포기한다. 러셀의 명쾌한 통찰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행복을 정복하는 안내서라기보다, 불행한 삶의 원인에 대한 팩트 폭행처럼 여겨진다. 역시 버트런드 러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