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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Oct 14. 2019

뒤집어져서 더 '좋은 날'

포르테디콰트로 콘서트 '좋은날' 아트센터 인천, 2019. 10. 12.

            

살다 보니 예상대로 되는 게 거의 없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난 사소한 일에도 최악까진 아니지만 안 좋은 결과를 염두에 둔다. 지나친 낙관보다 적당한 비관이 사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막상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으면, 내 예상을 뒤집은 현실이 더 고맙고 다행이라 느껴지기 때문이다.


10월 12일 토요일, 아트센터 인천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포디콰를 보러 가는 마음은 늘 설레지만 처음 가는 곳은 좀 긴장하게 된다. 이번엔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아마 감기 기운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물리적 거리도 멀었지만, 혼자 가는 길이라 더 쓸쓸했다.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 홀


인천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허전했다. 신도시답게 송도의 빌딩 숲은 화려했지만, 지하철 역에서 아트센터까지 가는 길은 꽤 썰렁했다.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데 이렇게 휑하다니. 원데이 페스티벌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트센터는 콘서트홀 로비만 빼고 어둠과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화려한 외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썰렁함이다. 아프리카 돼지 열병 때문에 야외 행사가 모두 취소됐다고 해도, 개관 1주년 기념 페스티벌 기분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낮엔 어땠을지 모르겠다) 아마 내 몸 상태와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 그곳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나와 정반대로 느꼈을 수도 있다.


콘서트홀 로비엔 포르테 디 콰트로 공연을 하는 게 맞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포토존도 없고 입간판이나 아티스트 사진 한 장 없었다. 그래서 기분이 더 가라앉았다. 로비에 포디콰 음악을 틀어주는 센스까진 바라지 않지만, 썰렁함에 울적해졌다. 이 공연을 기획한 사람들은 다른 공연을 보지도 않았나. 아니면 티켓값을 저렴하게 책정하면서 비용 절감을 극대화한 것인가. 대형 공연장에 포토존 없는 공연은 또 처음이다. 로비의 통유리로 검은 바다를 하염없이 보다 콘서트홀로 들어갔는데, 자리에 앉는 순간 저절로 광대가 승천했다.


반전의 묘미란 이런 것인가. 자리는 그리 앞쪽은 아니지만 무대가 한눈에 보이는 정 가운데다. 예매할 때 확인하고 잊고 있었는데, 막상 앉으니 확 트인 시야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이후의 시간은 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훈정이 형이 '포디콰의 음악적 아버지'라 한 김덕기 선생님의 지휘로 디토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됐다.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의 서곡 'La Forza Del Destino'다. 전에 들을 때도 귀에 익는다 했더니 영화 『마농의 샘』에 나왔던 곡이다. (형이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를 소개하며 '포디콰의 음악적 아버지'라 얘기할 때 현수 군은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 바흐와 헨델이 생각난다며 킥킥댔다. 정말 현수 군답다!)


천 번을 들어도 늘 설레는 노래 ‘ODISSEA' 전주가 흐르며 포디콰 네 남자가 나왔다. 지난주 안산에서 한 'ASAC 콘서트'와 셋릿은 비슷했지만, '단 한 사람'과 'LA PREGHIERA'가 빠지고 'LUNA'가 앞으로 당겨 나왔다. 롯데콘서트홀과 흡사한 아트센터 인천은 잔향이 뛰어난 공연장이다. 관객은 말할 것도 없고 공연자가 무척 만족스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훈정이 형은 공연장의 잔향이 아름답다며 루나 마지막 부분 울림을 흡족해했다. 리허설 룸에선 이런 잔향이 없어서 각자 입으로 에코 효과를 넣었다며. (ㅎㅎ)


순식간에 1부가 끝나고 2부가 시작됐다. 가만 보니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포디콰 멤버들이 나오는 문이 달랐다. 가는 줄무늬가 있는 블랙 슈트를 입고 목에 깜찍한 브로치를 장착한 네 남자는 '좋은날'로 2부를 열었다. 예전에 콘서트에서 브로치를 하면 목이 졸리는 느낌이 든다고 했는데, 그 이후로 콘서트에서는 브로치 한 걸 처음 보는 듯하다. 목이 졸리는 것 같다면서 노타이로 나오지 뭘 또 브로치를 하고 나오는지. 그런 거 안 해도 충분히 멋있고 아름다운데. 하긴 네 남자는 셔츠만 입고 서있어도 입만 벌리면 화들짝 놀랄 정도로 압도적이다. 노래는 노래대로 황홀하고, 아무 말은 아무 말대로 인상적이다. (ㅋㅋ)


이번 콘서트의 콘셉트는 "좋은 날"이다. 포디콰가 콘서트 하는 날은 다 좋은 날이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더 좋았다. 나의 울적함이 단숨에 반전되어 그런가, 아니면 내가 약간 열이 나서 몽롱해져서 그런 건가. 오케스트라도 듣기 좋았다. 지난주 콘서트에서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약간 어수선한 느낌이 있었는데 오늘은 더할 수 없이 편안하면서도 웅장했다.


벼리 군이 차이코프스키 담당이라면, 태진 군은 라흐마니노프 담당인 것 같다. '좋은날'은 항상 태진 군이 곡 설명을 하고, '외길'은 늘 벼리 군이 소개한다.


공연장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네 남자는 마이크를 내리고 'PANIS ANGELICUS'를 불렀다. 그냥 넷이 가만히 서있어도 흐뭇한데, 자꾸 이런 것까지 하니 광대가 승천하다 못해 내가 조커가 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활짝 웃었다. 그런데 이 노래 마지막에 훈정이 형이 마이크를 슬쩍 들고 불렀는데 왜 그런 건지 모르겠다. 일부러 든 건지 습관적으로 든 건지. 세 남자는 마이크를 끝까지 내려놓고 있었다. 갑자기 목에 무리가 느껴져 그런 건가 싶어서 유심히 봤다. 훈정이 형 음성으로 봐선 그런 거 같진 않은데 이 사소한 몸짓에 무슨 의미가 있었던 것인지 지금도 궁금하다.


깜짝 언플러그드가 끝나고, 현수 군은 뒤에 '아아아~~~' 부분 음정이 뒤집어졌다고 고백했다. 말 안 했으면 (멤버들도 관객들도) 몰랐을 텐데 굳이 말해서, 결국 그 부분만 아카펠라로 다시 했다. 네 남자의 화음을 다시 들으니 포디콰가 언플러그드만 하지 말고 아카펠라도 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부터 한 생각이지만, 내가 공연 기획자라면 포르테 디 콰트로 아카펠라 콘서트를 기획할 것이다. 물론 그들이 (우린 뭐 하라는 건 다 해야 하냐고) 싫다고 거부할 수도 있지만, 관객 입장에서 보면 언플러그드 못지않게 매우 기대되는 포디콰의 색다른 모습이라 생각한다. 너무 이것저것 해달라고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거절해도 그러려니 하겠지만, 콘서트에서 단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은 포디콰에게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걸 바라게 된다.   


'PANIS ANGELICUS와 'LOVE OF MY LIFE' 부르기 전에 현수 군이 약간 쑥스러워하며 예쁘게 들어달라고 했는데, 그런 말을 하는 현수 군이 더 예쁘다. (ㅎㅎ) 'FANTASMA D'AMORE'를 귀신의 사랑이라며 꼬마 유령 캐스퍼와 연결시키는 현수 군의 발랄함에 또 웃었다. 현수 군이 내 막냇동생이라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넌 영원히 철들지 말고 이대로 나이 먹어. (ㅋㅋㅋㅋㅋㅋ)" 저렇게 해맑게 말해도 현수 군은 꽤 진중하고 학구적이며 열정이 넘치는 아티스트다. (최근에 석사가 되심) 그래서 언뜻 보이는 저런 모습은 공연장을 찾은 관객에게 테너 김현수만이 줄 수 있는 보너스라 생각하고 즐기고 있다.


'ADAGIO'가 너무 빨리 나와 식겁했다. 포디콰를 무대 뒤로 사라지게 하는 노래라 가장 멋있지만 가장 슬픈 곡인데, 다행히 이번엔 네 남자를 '보내버리는' 노래가 아니었다. 'ADAGIO'가 끝난 후 포디콰가 무대 뒤로 들어가도 계속 앉아있는 오케스트라가 어찌나 고맙던지. 간만에 들은 앙코르곡 'HEAL THE WORLD'까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좋은 날'이었다.


포르테 디 콰트로


지휘자 선생님의 등이 정면으로 보이는 시야 덕분에 네 남자를 시원하고 편안하게 봤다. 내 눈이 카메라라면 이번 공연은 원씬 원커트로 저장했을 것이다. 단 한순간도 커트하기 아까울 만큼 아름다운 무대였다. 현수 군이 노래 끝에 뒤집어졌다고 고백해서 더 짜릿하고 좋았다. 이런 '뒤집어짐'이라면 얼마든지 해도 좋을 것 같은데, 그는 질색하겠지.


너무 멀어서 집에 오는 길이 쉽지 않았지만, 울적했던 기분을 단번에 반전시킨 좋은 시간이었다. 포디콰는 대체 어디까지 할 생각인 걸까. 조만간 나올 3집 커버를 보니 또 심쿵한다. 피켓팅의 괴로움은 공연장에 잊을 테니, 앞으로 더 자주 볼 수 있기를...   



1부> 댄디함

♬La Forza Del Destino-Overture

♬Odissea ♬Notte Stellata ♬베틀 노래  ♬Luna ♬Il Libro Dell'Amore


2부> 젠틀함

♬좋은날 ♬외길 ♬Senza Parole ♬Fantasma D'Amore ♬Panis Angelicus ♬Love of My Life ♬Adagio


앙코르>  

♬Ave Maria ♬Heal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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