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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Jul 31. 2020

위드 바이러스 시대의 슬픈 영화

영화 <#살아있다> 2020년

 보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 그냥 계획 없이 영화관에 들어갔다. 예상은 했지만, 평일 낮의 커다란 영화관엔 달랑 우리 둘 뿐이었다. 애초에 볼 마음으로 간 게 아니어서 안경도 없이 봤다.


 내용은 매우 단순하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에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다. 이유도 없고 원인도 모른다. 어디서 시작됐는지도 모른 채, 사람들은 무작위로 치료법도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좀비가 된다. 좀비들은 걸신들린 듯 배고파하며 멀쩡한 사람을 물어 감염시킨다. 눈이 안 보이는 대신 사람의 숨소리와 기척만 듣고 맹렬하게 공격한다.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라는 설정은 지금 세상에 창궐하는 바이러스를 연상시킨다. 증상은 다르지만, 무차별적으로 무분별하게 사람들을 공격하고 전염시킨다는 사실이 흡사하다. 이런 설정이 은유가 아니라 직유라서 끔찍하다.


자고 일어났더니 좀비가 창궐하는 세상을 보게 된 준우(유아인)


 이 영화를 촬영할 당시엔, 세상이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를 거라고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치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대단히 시의적절한 공포스러운 우화가 되어 툭 튀어나온 이 영화는 매우 단순하고 끔찍하다. 약간의 휴머니티가 양념처럼 버무려져 있어도 화면은 대체로 지저분하다. 좀비와 사투를 벌이는 남녀 주인공은 직업도 나이도 드러나지 않는다. 대체로 평범하면서도 약간 비범한 젊은이들로 보인다. 그들은 생존 본능과 용기를 장착하고 절망과 공포에 맞서 싸운다. 주인공답게 굶주려도 멋있고 안 씻어도 예쁘다. 종종 머리 회전이 빠르고 몸놀림은 더 빠르지만, 특별한 건 없다. 그런 사람들이 마지막에 살아남으면서 영화는 끝난다.


  

위드 좀비 시대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생존자 집안 내부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슬펐다. 내용이 끔찍하고 경악스러워 그런 건 아니다. 계획 없이 볼 수밖에 없는 정황이, 아무리 코로나 때문이라지만 그 큰 영화관에 달랑 둘이 봐야 했던 그 시공간이, 화면의 좀비 떼와 더불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영화를 보게 되다니. 나중에 이 영화를 본 시간을 떠올리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좀비는 무척 끔찍하고 더럽다. 무섭고 혐오스럽다. 그런 좀비들이 뛰어다니는, 개연성이라고는 1도 없는 이 영화를 보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 슬펐다. 밖으로 나가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한다. 이건 결코 허구가 아니다. 현실의 공포와 슬픔이 그래도 좀비보다 나을 거라는 관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살다 보면 좀비보다 더 끔찍한 현실도 맞닥뜨리게 된다. 이 영화를 본 날이 그런 날이었다.


생존자 유빈(박신혜)과 준우(유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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