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개와 고양이의 시간>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020.7.31.
한 달도 더 됐다. 뮤지컬 『개와 고양이의 시간』을 본 것은. 7월의 마지막 날은 충분히 더웠지만 그래도 견딜만했다. (이미 지나간, 혹은 지나가고 있는 중인) 장마와 태풍이 오기 전의 무더운 날씨였지만 숨이 막힐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기가 막히긴 했다. 이미 몇 달 전부터 마스크 없인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예매한 다른 공연을 몇 차례 강제 취소당했던 터라, 마스크를 쓰고 볼망정 뮤지컬을 이렇게 무사히 볼 수 있는 것만도 감지덕지했다. 예매한 후로 공연을 보기까지 혹시 또 취소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날짜를 기다렸다. 다행히 이 뮤지컬은 코로나 시국에도 굳건히 막을 올렸다. (그 후 9월에 다시 보려고 예매한 공연은 불가피하게 취소했다. ㅠㅠ) 이제 마스크를 쓰고 보는 불편함은 더 이상 문제 되지 않는다. 좋아하는 배우의 무대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소중하고 감사하다.
『개와 고양이의 시간』은 창작 뮤지컬로 이번이 초연이다. 프리뷰를 보진 못했지만, 꽤 충격적인 결말의 표현 수위 때문에 본 공연에서 내용이 수정된 듯하다.
떠돌이 개 랩터는 인간의 집에 간신히 안착한 고양이 플루토를 우연히 만난다. 랩터는 플루토를 보며 얼마 전 죽은 고양이 루이를 떠올린다. 검은 고양이와 검은 개는 이렇게 마주치고 반목하다 친해진다. 인간에게 버림받은 랩터는 자신이 버림받은 줄도 모르는(혹은 인정하지 못하는), 인간과 함께 살아온 반려견이었다. 아직도 주인이 자신을 기다릴 거라 믿으며, 오히려 인간 걱정만 한다. 잃어버린 프리스비를 갖고 주인을 찾아가면 예전처럼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새침한 고양이 플루토는 인간에게 곁을 주지 않고 랩터에게도 시니컬하게 군다. 그는 인간 바라기 랩터를 비웃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집사 ‘참치’(자신에게 자꾸 참치를 주는 주인에게 플루토가 지어준 이름)에게 마음을 연다. 옛 주인을 찾아 헤매는 랩터가 진실을 부정하는 동안, 약삭빠르고 냉소적인 플루토는 인간과 개와 고양이 사이에 일어난 참담한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다.
이 극은 개와 고양이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동물의 몸짓과 심리를 표현하는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는 과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지나치게 동물과 흡사해 보이려 해도 거부감이 들거나 부담스러웠을 텐데, 인간이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만큼의 개를 연기한 ‘개’와 고양이로 변신한 ‘고양이’가 무대 위에서 뛰어다녔다. 다만 동물들의 시선을 표현하느라 라이브 캠으로 보여준 여러 개의 미니어처 세트를 배우들이 손수 이동하고 작동시키는 게 번잡하고 힘들어 보였다. 개인적으로 그런 장치보다는 배우들이 중노동 한다는 느낌 없이 연기와 노래하는 걸 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본 배우들은 많이 힘겨워 보이진 않았지만, 그들이 무대 위에서 에너지를 아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말 그대로 이 극은 배우들이 멱살 잡고 끌고 가는 느낌이다. 역할이 동물이고 비극이라 연기하면서 신경 쓸 게 많고 심신이 지칠 것 같은데, 저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두 배우는 무대 위에서 많은 일을 한다.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정도로.
비극은 비극 나름의 미덕이 있다. 슬픔의 미학까진 아니더라도, 불행과 고통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내가 그날 무대에서 본 개와 고양이는 좀 힘들고 지쳐 보였다. 랩터와 플루토가 아니라 고훈정 배우와 배나라 배우가 그렇게 보였다. 물론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이다. 그들은 (내 생각과 달리) 그날 공연도 잘 끝냈다며 신나서 기분 좋게 분장을 지웠을지도 모른다. 비극을 연기한다고 배우가 매 순간 슬픔에 잠식되지는 않을 것이다. 연기에 몰입했을 땐 감정이 고조되어 불행하고 슬플 수 있지만, 그들에겐 반복되는 일상이자 직업이니 연기하는 배역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도 분명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 같은 평범한 관객은 무대에서 죽는 인물을 봐도, 극이 끝난 후 (다시 살아나) 앙코르 무대에서 인사하는 배우를 보면 대체로 평정심을 되찾는다. 근데 이번에 본 랩터와 플루토는 불이 꺼져도 여전히 슬프고 힘들어할 것 같다. 물론 배우들이 그러지 않길 진심으로 바라지만.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공연을 끝내고 집에 갈 땐 홀가분하게 가벼운 마음이었으면 한다.
이 시국이, 이런 상황이, 눈에 보이지 않은 적에게 무차별적으로 공격당하는 인간이 처한 현실이 개와 고양이의 비극 못지않게 안타깝고 참담하다. 무대 위의 가공된 불행보다 매일매일 업데이트되는 불행이 더 생생하고 적나라해서 그런 것 같다. 이 또한 인간이 자초한 비극이긴 하지만. 다른 때 이 극을 봤으면 다른 느낌으로 다른 생각을 했을 텐데. 또 언제 고훈정 배우를 볼 수 있을까. 마스크는 언제까지 써야 하나. 그의 다른 작품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랩터와 플루토의 가엾은 운명보다 더 치열하게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렇다고 랩터와 플루토를 보며 마음이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인간인 게 부끄럽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만, 다음에 이 애처로운 고양이와 개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땐 마스크 없이 랩터를 애도하고 깔때기를 한 플루토를 보고 웃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