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시가의 부가적 활용과 이와 관련된 기대 효과와 한국적 적용 사례
한국의 고전시가와 관련된 콘텐츠 생산은 서사문학과 상호보완적 관점으로 활용되는 방향성과 관련해서 더욱 많은 고려를 해야 한다. 대중문화로 고전이 재해석되기 어려운 것은 앞서 제시했던 높은 진입장벽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사문학을 재해석하거나, 혹은 독자적인 현대 작품을 창작할 때 있어서 고전시가와 같은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다면 이를 접하는 대중들의 고전시가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좁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활용이 아무런 조건 없이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콘텐츠화 하고자 하는 고전에 대해 수많은 고민을 해야한다는 점이다. 접근성이 좋지 않은 고전문학을 대중적인 언어로 순화시켜 전달하는 것은 오로지 콘텐츠 생산자의 역량이다. 앞서 대중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전개했지만, 고전시가의 적극적인, 한국의 멋을 살릴 수 있는 콘텐츠화를 위해서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지속되어 고전시가에 대해 익숙해지는 시기가 온다면, 추후 한국이 가지고 있는 고전 서정시들이 콘텐츠화 될 수 있는 또다른 방향들이 자연스레 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전시가를 서사적 콘텐츠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짧은 이야기를 통한 사례를 만들어보고자 하였다. 아래 문단은 필자가 과거 처음으로 써 보았었던 『애기능』이라는 글에 허난설헌의 『곡자』를 대입하여 생각해보았다.
『애기능』이라는 글의 주제로 잡았던 부분은 ‘임신중절수술과 관련된 쟁점’이었다. 애기능 동산에서 조그마한 종이에 적힌 시를 읽던 여성은 해당 수술을 받은 후 자식을 잃은 슬픔에 빠진 상태였다. 물론 여성의 상황이 『곡자』의 화자와 완벽히 대응되지는 않고, 자식을 잃었다는 점과 이에 대해 슬퍼한다는 점에 대해서만 공통점을 가진다. 하지만 해당 글에서 『곡자』라는 고전시가는 화자와 국문학과 여성이 조우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또한 고전시가를 알고 있다면 첫 문단의 둔덕 두 개가 마주보인다는 대목에서 ‘두 무덤이 나란히 마주보고 서 있구나’라는 구절을 연상하거나, 세 번째 문단의 사시나무 떨듯 떤다는 표현을 보고서는 ‘사시나무 가지에는 쓸쓸히 바람 불고’라는 문장을 연상할 수도 있다. 이처럼 고전시가의 구절들은 글이나 서사에서 한 장면을 구성하는 요소들로 치환되어 사용할 수 있다.
이후 국문학과 여성과 화자가 한강 위의 다리로 올라가 석양을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의 일부분이다. 해당 장면은 『곡자』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식을 잃은 슬픔이라는 테마가 확대되는 부분이다. 하나의 작품을 해석하는 방향성에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해도 될 정도로 생각의 갈래가 나뉠 수 있다. 등장인물이 『곡자』라는 작품과 관련하여 해석을 내놓게 된다면 『곡자』가 현대 사회에서 가질 수 있는 시사점을 짚을 수도 있다. 살아있는 자식을 잃은 슬픔과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자식을 자신의 손으로 인해 잃게 된 여성의 슬픔에 연관성을 제시할 수 있게 되며, 그 순간 『곡자』라는 고전시가는 단순한 역사적 자료가 아닌 현대에 대두되는 사회적 쟁점들과 연관된 담론을 형성하는 매개로 작용하게 될 수도 있다. 만약 물론 고전시가라는 영역이 어떤 한 사회적 문제점을 고발하는 도구가 된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지만, 오히려 이런 방식으로 담론을 통해 사람들에 의해 재해석되는 길목을 많이 만들어 놓는 것이 고전시가의 콘텐츠화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방안이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