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체리 Mar 18. 2023

원판 위의 수치

불곰의 기분

창피한 일이지만 9년 전 대학원 OT에 갔던 나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신 나머지 수면 중에 생긴 일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착하디 착한 내 친구가 수면 중 생긴 불미스러운 일로 더러워진 내 머리까지 감겨줬는데 말이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평생 잘하도록 하겠다. 이 이야기를 왜 꺼내느냐면 이날의 멍청함은 오늘 이 날까지도 내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날의 민폐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기상 후 첫 1보를 내딛은 나는 뭔가가 단단히 잘못됐음을 깨닫는다. 바닥을 딛었을 때 발목에 느껴지는 통증이 생전 느껴보지 못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써 현실을 부정하며 안 아픈 발에 체중을 싣고 간신히 얼굴을 씻어냈다. 이날 집에 온 내 몰골은 정말 볼만했다. 부모님이 부재중이어서 어머니는 집에 와서 한차례 씻고 난 후의 내 모습만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꼴이 참 볼만하다 하셨으니 씻기 전은 어땠겠는가. 머리는 친구가 겨우겨우 행궈줬지만 다들 취한 마당에 말리고 어쩌고 할 정신도 없었기 때문에 잔뜩 떡져있었고, 전날 내가 망친 옷은 어디 넣어갈 곳이 없어서-그거라도 있어서 다행인- MT때 사가는 캔맥주 상자 고정용 비닐에 겨우 끼워넣고 그걸 어찌어찌 든 채로 집에 왔다. 물론 그 비닐은 사면 중 어느 한 곳도 막혀있지 않으므로 더러워진 옷이 계속 흘러내렸다. 한쪽 다리를 엄청나게 저는 상태였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또 이 이야기는 코로나 한참 이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방법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한국에서 살 때의 나는 나고 자란 도시에서 평생 살았는데, 나는 늘 지하철에서 반가운 동창 만난 적이 한번도 없다고 불만을 했지만 이날 집에 가는 길에 첫사랑이라도 만났으면 정말 최악 중 최악의 추억이 될 뻔했다. 내게는 천운이었던 것이 당시 부모님은 부재중이었기 때문에 술병이 단단히 난 몸으로 옷에 남은 전날의 민폐를 지워내는 공작이 가능했다. 아무튼 월요일 아침이 밝자마자 병원에 가보니 다리는 깁스 한달감이었고, 나머지 한쪽은 프랑스에 온 후에 너무 많은 짐을 한번에 나르다가 오페라역 지하철 계단에서 떨어져 해먹었는데 그건 또 한참 후의 이야기다.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아마도 OT날 새벽에 해먹은 다리가 아프면 아무 생각 없이 물리치료를 받으러 갔었는데 프랑스에서는 물리치료 한번 받기까지 지나야 하는 과정이 너무 길어 보통은 '냅두면 낫는다'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물리치료사 한번 보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말이다. 하지만 작년 여름에는 더 이상 방치하면 삶에 더 큰 지장이 생길 것 같아 손을 좀 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다니엘이 만성적인 허리 통증으로 자주 찾던 물리치료사가 괜찮다고 했고, 치료사 양반은 단골의 부인이니 예약도 쉽게 잡아주겠다 해서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내가 또다시 한국식으로 생각했다는 점만 빼고 말이다. 정확히 뭘 고쳐준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발목이 아프니까 뭔가를 고쳐주겠지, 생각하고 찾은 사무실에서 치료사 양반은 내게 속옷만 빼고 모두 탈의하라 말했다. 나는 아, 또 뭔가가 단단히 잘못 돌아가는구나 생각했지만 이미 모든 것은 너무 늦어있었다. 다시 예약을 잡기에도, 또 이 시점에 새 치료사를 알아보기에도...모든 게 다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엉덩이에 난 두드러기때문에 다니엘 속옷을 입고있었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저딴걸 왜 아직도 품나 싶은 다니엘의 애착속옷을-부적도 없는 나라에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를 꼬맨 커다란 바늘땀이 선명한 정말 상태 나쁜 속옷이었음-. 속옷의 수는 한정되어있는데 자꾸 내가 야금야금 A급 속옷을 같이 입으면 세탁방에 가기 전에 멀쩡한 속옷이 바닥날까봐 나는 눈치껏 다니엘이 잘 안 입는 이상한 것들을 입고 있었던 탓이다. 평소에 입는 여성 삼각팬티보다는 면적이 넓어서 그건 다행이었지만.


 프랑스에서 물리치료사 개념의 치료사들은 Ostéopathe(환급안됨)와 Kinésithérapeute(환급됨)가 있다. 대강 Ostéopathe가 도수치료와 더 비슷하다고들 하는데 같은 Ostéopathe이나 Kiné라도 스타일이 천차만별이라서, 누구는 마사지에 집중하고 누구는 뼈를 맞춰주고 누구는 물리치료 운동을 시키는 등 전문분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곳에서는 어디 Kiné가 괜찮다더라 류의 정보를 진지하게 수집할 필요가 있다. 차이는 치료 분야 뿐 아니라 보험 환급률 등 실질적인 부분에서도 갈리지만 나도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고 내가 가본 Kiné라고는 한군데뿐이라 자세히 설명할 만큼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 치료사 양반의 장점 중 하나는 저 두 분야의 자격을 모두 갖고 있어서 두 치료를 결합한 서비스를 제공함에도 Kiné로 등록되어 있어 환급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어디가 아픈지 설명하면서 스뼈 소리가 나는 마사지를 받을 때까지는 '옷을 더 입고싶지만 아직까진 견딜 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스프링이 여러개 달린 불곰서커스단 점프 판처럼 생긴 작은 장치를 들고올 때까지는 말이다. 아주 간단히 말해 나는 그 스프링이 여러 개 달린 원판에 남편의 누더기같은 팬티와 스포츠 브라-하늘이 도왔다. 나는 평소에 브라를 하지 않는데 이날 탈의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음에도 오랜만에 브라를 하고 나갔다-만 입고 서서 투명의자 자세로 균형을 잡아야 했다. 양발로, 왼발만으로, 오른발만으로,, 재작년 프랑스 산부인과 검진 때 향후 3년간 받을 수치를 몰아받고 있다 생각했던 나는 단단히 틀렸었다. 그래도 프랑스 정착 초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치료사 양반이 정말 미친 인간이라 생각해서 노발대발 화를 내고 자리를 떴겠지만 그나마 내가 이 미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후 이런 일을 겪어서 다행이었다.

 마사지로 시작된 치료는 불곰 착취 서커스단 흉내를 넘어 운동 몇가지를 배우는 것으로 끝났고, 그는 내 다리가 나아질 때까지 와야 한다고 했다. 날씨가 좋았다. 부자 동네에 있는 병원이라서 그런지 병원 옆 꽃집에서 파는 작약의 때깔이 남다르길래 한다발을 사서 집에 왔던 기억이 남아있다. 집에 와서 내가 베냇머리를 자른 후로 탈의를 하고 물리치료를 받을 거라곤 상상도 한 적이 없다 말하니 다니엘이 그제야 '아 맞다, 그걸 먼저 말해야 했는데..'라고 했다. 하지만 누굴 탓하랴, 예약할 때 '우리 스타일은 탈의한 상태로 치료를 받는 것입니다' 라는 안내 메세지를 잘 읽지도 않고 예약 확인 버튼을 클릭한 내 탓이지.

 나는 그 후로도 세차례인가 네차례인가, 불곰 서커스를 하러 리오넬-치료사 양반-의 사무실을 찾았다. 내가 몸이 안좋아 마스크를 끼고 갔더니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며 '나는 병 안 걸렸는데, 너 어디 아프니?-마스크 벗으라는 뜻-'라고 말하는 그를 보며 이 양반도 정상은 아니라 생각했지만 이 도시에서 의욕과 실력과 실리 삼박자를 갖춘 의료인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참기로 했다. 설령 내가 마스크를 한 이유가 우리 아버지 또래로 보이는 그의 생존권을 위해서라고 해도 말이다. 발목은 어쩌다 보니 나았고 그것이 리오넬의 덕인지는 모르겠으나 올해까지는 통증 없이 잘 지내고 있으므로 다시 아픈 날이 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놈이 될 수는 없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