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체리 Apr 01. 2023

외국인 일꾼의 마음 돌보기

정신승리도 승리다

 지금껏 한 곳에서 1년 이상 근무해 본 적이 드문 만큼 여러 직장에서 다양한 보직으로 근무했다. 하지만 이번 직장처럼 한국과 일말의 관련도 없는 곳에서 일해본 것도, 동료들과 프랑스어로만 소통하는 직장에서 일해본 것도 처음이기 때문에 방금 내가 맞게 들었는지, 어제는 내가 맞게 들었는지, 지금 나와 동료 사이의 의견 차이가 나의 몰이해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지 매일매일 기억을 더듬는 과정이 내 딴에는 고되다. 그래도 수습 기간이 다 지나도록 대형사고를 치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뭐든지 빨라야 하고 목소리도 커야 하는 직장이라서 말 자체를 많이 하지 않는 나는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사람을 대하는 직종이라 그런가, 태어난 후로 하루에 사람을 많이 보기로는 요즘만 한 시기가 없다. 실업급여도 끊기고 시험 준비에 생활비에 야금야금 지출을 해온 터라 잔고는 바닥났고, 프랑스 사회에서 적응하고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었으니 이젠 별 수가 없다. 다니엘 말마따나 이직은 있어도 퇴사는 없다. 아마도..

 프랑스 사회는 어제는 알았어도 오늘은 모르겠는 것투성이라 언제쯤 되어야 이 나라를 좀 안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저 영어 장막 밖에서 생활하고 싶다 다짐했던 처음의 마음을 지켜나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일을 시작해서 좋은 점은 역시 생활 패턴이 확실히 잡히고 체력이 늘었다는 점이고, 돈 문제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외벌이 전사 다니엘의 부담이 살짝 덜어졌다는 점도 기쁘다. 일은 회사가 직원들을 보호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편이라 그런 점에서 느끼는 부담은 있다. 그래도 나처럼 애매하게 직장 생활을 한 성인이 서른이 넘어서 직장을 다닐 때 ① 내가 이 사회에 적응하고 있어! 라거나 ② 오늘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③ 여기에서 얼마 정도만 구르면 이후 갈 수 있는 회사의 폭이 크게 늘어난다 셋 중 하나라도 강하게 실감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므로 셋 모두를 느낄 수 있는 지금의 생활은 그럭저럭 감사할 만한 것이라 본다. 특히 이민자에겐.

 그러나 서른이 넘은 속세의 직장인은 한순간의 감사함에 눈이 멀기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직장에서 내가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가장 싱싱한 외국인이라는 점은 나를 위축되게도 하고, 예민해지게도 한다. 처음에는 다들 나 같은(이민 온 지 5년 이내의) 처지일 거라 믿었는데 알고 보니 누구는 프랑스령 섬에서 왔고 누구는 여기서 태어난 프랑스인이고 누구는 이민 20년 차일 때의 충격이란. 생각만 너무 많이 하는 게 나의 단점이지만 생각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나의 미래에 대해.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느긋해 보이는 동료가 해준 말이 의외였다. '고객들 중에는 네가 도와줘도 네 등에 칼을 꽂는 사람들-클레임-이 있을 거야, 그래서 너는 스트레스를 잘 관리할 필요가 있어. 나는 그럴 때면 우리가 만화 속의 캐릭터들이라고 생각해.' 가장 의외의 타이밍에 의외인 사람에게 들은 조언이 어찌나 절묘하던지. 때마침 며칠 전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준 고객이 거짓 클레임을 보내온 참이라 무척 공감이 갔다.

 일터는 상당히 빠른 템포로 치열하게, 또 법정 휴식 시간을 준수하지 않고 돌아가는 탓에 하루 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쌓아놓을 기력조차 없어진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또 누가 프랑스어로 내 얘기를 한다 해도 그걸 100퍼센트 다 알아듣지는 않기 때문에 한국어로 일할 때보다 내 평판이나 뒷이야기에 둔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굳이 따져보자면 장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하지만 동료 말이 맞다. 예민하기로는 설탕 유리의 섬세함에 뒤지지 않는 나다. 스트레스 관리는 중요하다. 기적적으로 아직까지 크게 아픈 일 없이 근무하고 있지만 언제든 크게 아픈 날이 올 거라는 사실은 자명하기 때문에 하루라도 덜 아프려면 먼저 행복한 게 급선무다. 그래서 나도 두 가지 정도는 마음을 돌보는 기술을 연마하는 중이다.

 하나는 지금 내가 스타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스타쥬(Stage)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이수해야 하는 인턴십 과정이다. 최저 임금과는 또 다른 Stage 용의 임금 테이블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스타쥬를 하는 동안은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으면서 졸업 학점을 쌓아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이번에 취업을 못했다면 나는 다니엘 손에 질질 끌려 학업의 장에 던져졌을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있을 수 없는 미래는 아니었다. 나는 학업은 죽어도 하기 싫다고 계속 버텨왔는데 이유는 아래와 같다.

- 이미 한국 사립대 석사에 차 한대 값을 쏟아부었음
- 내 나이는 서른셋임 (지금 학업을 하면 앞으로 돈 벌 날이 유의미하게 줄어든다는 생각을 했다)
- 나는 사회과학 전공이다 (프랑스에서 직전 전공이랑 상관없는 전공으로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 본인이 학업에 더 이상 열정이 없으므로 조그마한 난관에도 픽픽 꺾일 것임, 석사는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으로 버텼는데 할 마음도 없이 석사나 박사를 한다? 망할 것이 분명하다.
- 서른셋에 지금 열 살 정도 차이 나는 친구들이랑 석사를 같이 하라고? 열정의 가호 없이?
- 다니엘은 국립대 석사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케팅/사회과학 전공 시 프랑스 취업시장에서 기대할 수 있는 학연 지연 등의 메리트는 그랑제콜이 더 크다는 나의 개인적인 생각, 하지만 그랑제콜에 가면 다니엘 소득을 기준으로 학비를 매기므로 나는 소득이 상태에  학비 부담이 훨씬 커진다.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 공부를 외벌이 전사 다니엘한테 에세이 첨삭 받아 가면서 한다? 누구를 위한 뻘짓인가?
 
 스타쥬의 유감스러운 부분은 이 또한 학점의 한 부분이므로 좋든 싫든 상사와의 관계가 평가에 반영된다는 사실이다. 또 스타쥬를 못 구하면 졸업에도 영향이 갈 수 있다는 점 또한 현 프랑스 사회는 학생 착취로 돌아가고 있다는 나의 음모론을 부채질한다. 아무튼, 내가 지금 스타쥬를 해서 상사한테 어떻게든 잘 보여야 하는 상황이라 생각하면 뻣뻣하던 목과 허리에 기름칠이 되어 잘만 고부라지고 눈매가 좀 더 공손해지는 효과가 있다. 또한 쥐꼬리 같은 나의 월급도 스타쥬 중이라 생각하면 사회과학의 현실은 이런 것이다, 하고 갑자기 납득이 되는 효과가 있다. 어차피 이곳에 취업을 못했다면 국립대행이었을 테니 -> 학업을 1년 정도 하고 스타쥬를 하는 미래보다는 지금 이곳에서 일을 하며 나는 스타쥬중이라고 자기 세뇌를 하는 편이 1년의 학업을 생략시켜주므로(??) 이득이라는 달달한 착각을 선사한다. 아무튼, 나는 효과를 보고 있다. 거의 망상에 가깝지만 말이다.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들도, 나도 있는 그대로만 보려 노력하는 것이다. 동료가 샐쭉하게 굴면 그냥 그만큼만 마음 상해 하고 금방 잊어버리기, 너희들이 프랑스에서 학교를 나왔더라도, 프랑스 사람이더라도 어수룩한 외국인인 이 체리를 얕볼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기, 내가 지금 무척 피곤하더라도 그건 동료들과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지 않기 등등,, 서로 아무 상관없는 일들 사이에 연결선을 그어 이번 장의 얼룩을 다음 장으로 가져가기 않기. 쓰다 보니 두 가지를 훌쩍 뛰어넘었지만 하루하루 정신없이 지나가는 직장에서 단순하게 생각하는 법을 연습하게 되었다는 것은 예상치 못한 수확이다.

 주변에 대단한 사람들이 많아서인가, 특별히 내가 잘났다는 생각을 하면서 산 적이 없다. 지금도 그때도, 그건 내가 스스로를 낮춰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내 주변 사람들이 대단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걸 웃기다고 해야 하는지 슬프다고 해야 하는지, 체력적으로 상당히 도전적인 이번 직장에서 CCTV로 감시당하며 실시간으로 실수를 지적당하는 상황에 놓이니 나는 아마도 처음으로 '러브 마이셀프' 하게 되었다. 보직이 바뀐지 이틀째인 오후 업무가 끝나고 오늘 한 실수를 동료에게 지적당하면서 '교육도 똑바로 못 받고 이틀 동안 작은 실수 하나 했으면 꽤나 장하다'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거나 집에 와서 샤워를 하다가 '자기 나라에서 평생 살고 자기 나라말로 일하는 동료들은 모르는 세상을 나는 안다, 그건 자랑스러운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등... 이것 또한 재미있는 발견이다.

 나는 지금 어느 인생의 어느 구간을 지나고 있을까. 앞으로 이직을 한다면 프랑스에서의 다음 커리어는 어떻게 흘러갈까. 앞의 두 질문에 어떤 답이 나오든 지금 내가 변곡점에 서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전보다 많이 뻔뻔해진 나지만 이 길에서 넘어지더라도 너무 추하게 넘어지지만 말았으면, 매일 바란다.


 저는 늘 과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지만 혹시라도 제가 열심히 공부하고 계시는 분들께 가시처럼 걸리는 말을 했을까 마음이 가서 글을 남깁니다. 저는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너무 늦은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나이를 먹고 공부하시는 분들의 결심이 얼마나 용기있는 결정인지 잘 압니다. 그저 제가 한국에서 석사를 하면서-당시에는 그게 좋다고 느꼈기에 힘들어도 버텼지만- 스스로 뜻없이 공부하는 것만큼 의미없는 일은 없다고 느꼈고 지금은 제가 학업을 할 의지가 전혀 없어서 취업만을 위해 학업을 한다면 제게는 큰 의미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써본 글입니다. 딴에는 그런 생각으로 썼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원판 위의 수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