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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 Jan 20. 2024

잘 사는 건 뭘까

너무 힘 안 내도 살아지는 삶이 좋아

 별일 없다. 드물게 발밑에서 쑥 끌어당기는 일이 생기면 고대로 끌려가서 며칠 침울해 하지만 수영을 못하는 나도 숨참고 기다리면 언젠간 떠오를 걸 안다. 생각보다 물속이 깊었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며칠 파도에 떠밀려 다니면 다시 평소처럼 돌아온다. 내가 기복이 없는 삶을 너무 환상시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원한다. 기복 없는 나. 파도 없는 세상.


 2023년에는 미뤄오던 한국에서의 결혼식도 해치우고 이직도 몇 번이나 했다. 이번은 정말 마지막이어야만 한다는 마음으로 옮긴 마지막 이직처가 다행히 내가 원했던 회사에 가장 가까워서 지금까지 무사히 다니고 있다. 이제 몇 번이나 번복되었던 이사만 어떻게 해치우면 된다. 결혼을 하고 사는 나라도 자리를 잡았고 취직도 하고 나니 이제 고민의 종류가 많이 단일화되었다. 전보다는 덜 불안하다. 이제야 겨우 남들 고민하는 정도만 고민하면 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렇게 되고 나니 더 잘 살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데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머리가 굵어지고 돈을 벌고 스스로의 취향을 개발하니 원하는 삶의 기준은 확실해졌는데 그게 정말 잘 사는 건가? 그다음은? 그다음에 난 뭘 하고 싶을까? 이런 생각의 연쇄를 거쳐서 다들 지친 나머지 50세 즈음에는 뭘 해도 재미없다 느끼게 되는 것인가. 궁금해하게 된다.


작년 내내 내가 삶에서 원했던 것들은 이랬다.

- 너무 업무 강도가 높지도, 그렇다고 지루할 만큼 쉽지도 않은 일

- 그럭저럭 견딜만한 통근시간과 거리 (30분-50분 사이)

- 집안살림에 도움이 될 정도로는 받는 월급 (더 정확히는 원천징수 이후 1600유로는 넘기고자 했다)

- 실적대비 보너스를 연봉에 끼워 넣거나 보너스의 존재로 위협을 일삼지 않는 직장

- 매일 정답게 인사하고 사회생활할 정도로는 신경 쓰지만 사실 서로 삶에 별 신경 안 쓰는 중인 회사사람들

- 내가 외국인인 게 전혀 눈에 띄거나 별나보이지 않는 환경, 회사 조직 안이든 지리적인 환경이든. 

- 이미 만들어져 있고 자리 잡혀있는 회사 운영 시스템 (내가 그냥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 집 대출에 문제가 없을 만한 계약 조건 (정규직)

- 주중에 병원 가는 게 너무 어렵지 않은 접근성

- 대중교통이 너무 자주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지역일 것 (다양한 상황을 겪어 보니 원하게 되었다)

- 일주일에 두 번 운동을 한다거나 업무 전후로 주기적인 일정을 잡는 데에 부담이 안 되는 업무량, 환경일 것

- 이 정도면 완벽하지는 않아도 업무하고 살아가는 데 지장은 없을 프랑스어 실력

- 점심 먹는 걸로 너무 골머리 썩히지 않아도 되는 직장(이것도 겪어보니 중요한 부분이었다. 주변에 드라이브스루 맥도널드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회사를 다녀봤는데 워낙 멀어서 주중에 따로 점심으로 가져갈 음식을 만들 시간을 내는 것도 일이었고 특히 여름에는 편도 1시간 반 걸리는 통근시간 동안 냉방 안 되는 지하철 안에서 음식이 변질될까 이도 저도 어려웠다)

- 내가 휴가 낸다고 누가 곤란해지지 않는 환경(대체근무자 없음 등의 이유) 남들 쉴 때 나도 쉴 수 있는 환경


 꽤나 까다롭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이전 직장들을 그만둔 건 저것들을 충족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래 다니면 심각하게 건강을 해칠 것 같거나 법적으로 지켜야 할 것을 안 지키는, 각자가 심각한 업무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 사람이니 한국 살 때 이 정도 바라고 직장을 찾으면 스스로 너무 따진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민자 입장에서 이런 조건들을 염두에 두고 직장을 찾는 건 많이 달랐다. 스스로도 까다롭다고 생각했는데 또 포기하기는 어려웠다. 이번엔 정말 오래 일할 직장이어야 했기 때문에 이미 어떤 조건이 정말 나쁘다는 걸 겪어서 아는 상태에 비슷한 결함을 가진 직장에 또 들어가는 건 시간낭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너무 아등바등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흘러가는 삶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저 조건들에 영향을 많이 미쳤다. 남들 배는 열심히 살아야 남들 비슷하게 흘러가는 게 이민자의 삶이라 현실성이 없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원했다. 원하는 건 공짜란 말이다..!


 '남들처럼 산다'


 정말 많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문장이다. 어떤 의미로든 나는 진작에 포기하고 살았다. 내가 남들 같은 건강도 아니고 남들 같은 조건을 갖추지도 않았는데 '남들처럼 살기'를 바라면 안 되지,라고 생각했다. 그 '남들'이 뭘 안고 사는지 자기도 모르면서 말이다. 재미있게도 '남들처럼 살고 싶어', '남들 쉴 때 나도 쉬고 싶어', '나도 저런 거 하고 싶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순간 나는 내가 우울에서 더 더 멀리 왔다고 생각했다. 많이 아팠을 땐 그냥 멍하니 시간 보내다 때 되면 점심 먹고 저녁 먹고 또 멍하니 현실보다는 과거나 미래에서 더 많이 시간을 보냈던 내가 이제 남들 뭐 하는지도 보고 꽤 구체적으로 뭔가를 원하고, 그걸 위해 힘을 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한창 아팠던 시절에 비해 내가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초점은 내가 과거나 미래에 어찌할 수 없는 지점만 보며 살다가 이제 겨우 지금 나, 지금 내 주변을 보고 뭔가를 원하게 되어 기쁘다는 것이지 남들처럼 사는 게 곧 잘 사는 것이다를 길게 풀어쓰려고 쓴 글이 아니다. 세상에는 타고나기를 초탈한 사람이 있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물론 세속적인 욕망중에 내가 그동안 지레 포기한 면도 있고 애초에 신경을 안 쓰는 부분도 존재하지만 내 손이 안 닿을 것 같아 보이거나 진작 포기했던 것들이 사실 손 닿는 거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나가는 과정이 생각보다 짜릿하다는 걸 배우고 말았다. 그리고 이런 감정은 내가 몇 살이 되어도 시원하고 짜릿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위에 내건 조건들은 객관적으로 내 조건에 다 이루길 바라기엔 까다로운 것이 맞고 작년의 이직 행렬은 누가 봐도 위험도가 높았다. 마지막 이직 앞에서 '이번에도 아니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안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새 직장은 대부분의 조건을 만족했다. 쉬운 것은 없었고 매번 실망할 수도 없어서 매일 이력서 넣는 기계처럼 커버레터를 쓰고 이력서를 고쳤었는데, 이제야 조금 더 '남들처럼' 살게 됐다. 2014년의 내가 이 글을 보면 꽤나 실망할 것이다. 고작 제도권에서 '남들'이라는 폭력적인 집합체의 사실조차 아닌 허상 속 평균치를 찾아 사는 게 내 행복이었다니, 하면서. 꽤나 신랄하게 화를 낼 것이다. 그렇다고 그 시기 내 생각에 비추어 봤을 때 더 대단한 뭔가가 되지 못한게 어떤 대단한 실패처럼 느껴지지도 않는다.


 지금을 사는 것, 생각보다 멋지다. '너무 힘 안 내도 살아지는 삶'이라고 하면 한없이 대충 사는 것만 같은데, 여기까지 오는 데 몇 발자국이나 떼었는지는 기억도 안나지만 쉬운 발자국은 없었다. 그럼 지금은 된 거 아냐. 그렇게 뭉개기로 한다. 어차피 다음 지점까지 더 걸어야 하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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