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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 Dec 30. 2020

독서모임이 코로나 시기를 버티는 법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마주하는 날을 그려본다

  뉴스에서 중국 우한에 바이러스가 퍼졌고 봉쇄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처음엔 그냥 중국에서의 문제로 그칠 것이라 생각했다. 우린 우리의 삶을 살아가면 되었다. 상반기 시즌 준비에 그 어떠한 고려도 할 필요가 없었다. 2월이 되었고 예정된 일정대로 참가자 모집을 시작했다. 많은 분이 새로운 시즌에 대한 기대와 함께 신청을 해주셨고 모임은 하나둘씩 빠르게 마감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주일 뒤 대구에서 집단감염에 대한 뉴스가 나왔고 분위기는 평소와 다르게 흘러갔다. 결국 부산에도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사태에 대한 심각성은 높아졌다. 스태프 단톡창에서도 해당 문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시즌의 시작을 1~2주 연기할 것인지, 아니면 아예 취소를 할 것인지 빠른 판단과 결정이 필요했다. 확실한 것은 바이러스 백신 개발에는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불필요한 리스크를 안은 채로 모임을 운영하다 혹시라도 모임 내에서 확진자가 발생한다면 그동안 쌓아왔던 것들을 한순간에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리라 판단했다. 2월 22일,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준비해온 스태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즌 연기가 아닌 시즌 취소 공지를 했다. 이 일이 나의 본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3월이 되었지만 바이러스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독서모임을 쉬는 동안 당연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SNS를 통해서 모임을 취소하지 않고 연기하거나,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이어가는 이들도 접할 수 있었다. 대부분은 독서모임 비즈니스를 하시는 분들이거나, 고정비가 나가는 아지트를 운영하는 곳들이었다. 불안도 먹고 사는 것 앞에서는 제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의무적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 없다는 자유를 만끽하는 시간이었다. 4월이 되었고 바이러스는 더욱 거세졌다. 계속 이렇게 모임에 손을 놓고 있어도 되는 것인지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5월이 되었고, 언제까지 상황 탓만 할 수는 없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다행히도 시험 삼아 진행하던 온라인 모임이 있었고 이곳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들 나처럼 만남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지 첫 두 달은 잘 되었다. 하지만 점점 신청자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참가자분들의 피드백을 통해서 어렵지 않게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한 달 동안 일정 횟수 이상 읽고, 쓰는 미션으로 진행되는 모임이었기에 참가자들이 매일 쌓아가는 숫자가 중요했다. 자연스레 게시물의 수에 집중하게 되면서, 정작 중요한 그들을 놓치고 있었다. 대면 모임에서는 ‘한 팀’이라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전체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온라인 모임에서는 ‘한 명’과의 관계를 얼마나 세심한 관리와 소통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맺는지가 중요했던 것이다. 시행착오를 겪고 나자 온라인도 나름의 체계를 잡으면서 모임을 안정적으로 늘려갈 수 있는 토대가 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대면 모임보다 참가자 한 분에 대해서 더욱 깊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강연도 마찬가지였다. 정해진 장소, 시간에 직접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기엔 시간이 더 걸렸다. 세바시, 차이나는 클라스, 어쩌다 어른 같은 미디어를 통해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강연 프로그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직접 만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바이러스의 확산이 주춤했던 6, 7월에는 40여 명의 참가자들이 함께 모여 강연을 듣고, 애프터 토크까지 진행하는 모임을 가졌다. 하지만 8월이 되면서 바이러스는 다시 맹위를 떨쳤고 대면 모임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섭외한 연사님들과 신청한 참가자들에게 지킬 수 있을지 만무한 연기를 부탁드릴 순 없었다. 대안이 필요했고, 결국 유튜브 라이브를 시도하게 되었다. 약 400만 원을 투자해서 카메라, 마이크, 삼각대 같은 장비들을 샀으며, 방송 프로그램 조작법을 유튜브를 통해서 독학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진행을 하던 나의 위치는, 눈앞에 노트북과 카메라를 두고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마우스와 씨름하는 구석자리로 바뀌었다. 내가 잡던 마이크는 다른 누군가가 잡아야 했다.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다. 강연기획과 섭외를 모두 혼자서 했기에 연사에 대한 이해가 나와는 다를 수밖에 없고, 혹시라도 말실수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그들 역시 저자와 같은 자리에서 눈을 마주치며 호흡할 수 있는 자리가 흔치 않은 기회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한 명도 예외 없이 빈틈없는 준비와 노력으로 자리를 채워줬다. 동료들의 새로운 모습의 발견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스스로를 진행자가 아닌 프로듀서로 인식하게 되었고, 위치의 변화는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이끌어냈고 새로운 기획을 가능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해외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치료제까지 개발이 되어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마주하는 날을 그려본다. 온라인으로만 진행되던 독서모임이 오프라인의 날개를 달고 어떤 모습으로 비상하게 될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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