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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 Jun 14. 2021

애나 키우고 있으면서 아이 공부하나 못 챙겼냐

나의 무능으로 아이에게 실패한 삶은 안겨주지는 않을까

 오늘도 노하고 말았다. 아이의 빗발치는 문제집을 보고 있으면 간밤의 자책과 결심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겨울 방학을 앞둔 딸아이가 새 교과서를 잔뜩 받아온 날 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아이는 무구한 얼굴로 3학년이 되면 영어, 도덕, 사회, 과학, 음악과 미술 수업이 생긴다고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더듬더듬 글을 읽어 내리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아이는 저학년 딱지를 벗게 생겼다. 머리를 맞대고 새 교과서를 뒤적여보았다. 새로 배우게 되는 영어는 차치하더라도 도덕이나 사회, 국어책의 글 밥이 상당했다. 놀라움은 수학책을 펼쳐보고 극에 달했다. 내용은 어른이 봐도 금방 이해하기 어려워 p씨는 가슴이 철렁하고 말았다. 내친김에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과정 수학을 얼마나 따라 가고 있는지 체크를 해 보았다. 아이의 현 상태에 한 번 더 가슴이 내려앉았다. 코로나로 등교가 들쭉날쭉해서 전반적으로 학생들의 학습능력이 떨어지겠다고 예상은 했다. 그러나 많은 아이들이 수학학원과 영어 학원을 다니며 학습 구멍을 메우고 있지 않는가. 내 아이만 야생 그대로일지 모른다는 자각이 들고 나니 마음이 급해졌다. 그날 밤 P씨는 아이의 상태와 자신의 심경에 대해 남편에게 상의했다.      


“정확히 말하면 상의가 아닌 구원요청을 한 겁니다. 남편의 직업은 한의사에요. 저보다 훨씬 공부를 많이 하고 공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죠. 그런 남편에게서 돌아온 말은 ‘ 남들 하는 소리에 신경 쓰지 말라. 공부는 알아서 하는 거다. 너무 마음 쓰면 아이들에게 오히려 득보다 실이 될 것이다.’ 였어요. 요즘 세상은 남편이 공부 할 때랑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더라구요. 본인이 스스로 했던 것만큼 아이들도 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감했어요. 아, 아이의 공부에 관해서 상당히 외로운 싸움이 되겠구나.”     


p씨는 엄마가 된 이래로 끝이 없는 사교육의 길을 두 눈으로 확인해 왔다. 태교로 수학 정석을 풀고 영어문법과 중국어를 공부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들어보았고 아이 돌부터 백화점 문화센터 수강신청을 위해 자정에 컴퓨터 앞에서 대기를 한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았다. 영유아를 위한 프로그램은 주로 음악에 맞춰 율동을 배우거나 선생님이 이끄는 대로 놀이감을 조작하는 수업들이다. 리듬감, 음감을 자극하고 소근육을 발달에 도움을 줘서 창의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어떤 이는 영어노출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고 누구는 수학감각을 길러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이를 위해 고가의 교재와 교구를 들이고 방문수업을 받기도 한다. 또 공간 전체를 도화지처럼 사용하고 미술재료를 온몸으로 느끼는 퍼포먼스 미술수업이 스트레스 해소와 창의성에 도움이 된다고들 했다. 연간 수업료가 상당한 영어유치원에 2,3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영어와 수학학원을 기본으로 예체능 학원을 비롯해 논술학원, 스피치학원을 보낸다. 이 모두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 P씨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저는 이 같은 열정에 동의하지 않았죠. 어릴 때부터 사교육비에 돈을 쓰고 싶지 않았고 인지교육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저 아이들이 자유롭게 노는 시간을 존중하고 그림책을 원 없이 읽어주는 것. 그것이 제가 교육에서 중요시 하는 유일한 것이었고 그 생각은 남편과 완전히 일치했어요. 그런데 저의 신념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한 날이 새 교과서를 받아온 바로 그 날이었습니다.”     


 수학전공자 지인과 아이를 먼저 키운 육아선배에게 차례로 전화를 돌려 조언을 구했다. 전화기 너머로 우선 들려오는 말은 ‘아직도 시작 안했니?’ ‘3학년 수학부터 어려워지니까 그전에 탄탄하게 기초가 잡혀 있어야 한다.’ ‘연산능력이 잘 되어있으면 고학년이 될수록 어려워지는 수학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였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짠 듯이 통화 말미에 똑같이 덧 붙였다. ‘ 너 영어는 시작했니? ’ ‘아직도 안했니? ’ ‘제 정신이니?’ 불안해진 P씨는 도서관에 들러 초등학습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았다. 어떤 문장들은 화살이 되어 가슴에 박혔다. 


< 격차는 3학년부터 시작해서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벌어집니다. >

< 소위 ‘공부머리’라는 것은 부모님이 아무것도 안 하는데 그냥 터지지 않습니다. >


위안 삼으려고 책을 펼쳤는데 불안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아직 어리니까. 저학년이니까. 동기는 아이의 마음속에서 자연스레 싹트는 것이니까. 기다려 주는 게 부모의 일이니까. 자신을 다독이면서 지켜온 신념은 합리화에 불과했던 걸까. P씨는 비로소 자신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나서서 시키지 않았던 마음 깊숙한 곳에는 내 아이가 알아서 잘 해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의 이름은 믿음이 아니라 오만이었다.        


p씨는 곧바로 겨울방학의 목표를 세웠다. 큰 아이 2학년 수학을 복습하고 영어공부를 시작하는 것. 집 근처 수학학원에 보내고 영어학원에 등록하면 간단하겠지만 사교육에 아이를 맡기는 일은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수학은 문제집을 하나 선택해서 꼼꼼히 봐주고 영어는 집에서 하는 학습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이른바 ‘홈스쿨링’ ‘엄마표 공부’ 의 세계로 첫발을 들이게 된 셈이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초등학교의 입학을 앞둔 둘 째 아이의 한글을 잡아 주는 임무를 잊지 않아야한다. 방학의 일과는 아침을 먹고 9시가 되면 책상에 앉는 것부터 시작한다. 큰 아이가 수학문제집을 푸는 동안 7살 아이 한글을 봐준다. 작은 아이 공부가 끝나면 첫아이가 풀어 놓은 문제를 채점한다. 틀린 부분은 같이 짚어보고 다시 한 번 풀어보게 한다. 다시 푼 문제를 또 다시 풀이해줘야 하는 경우도 상당했다. 그러나 보면 점심시간은 다가오고 급히 밥을 차려 먹인다. 이후에 아이들 쉬는 동안 집안정리를 하고 장을 보러 나가고 반찬을 만들어 둔다. 오후 4시가 되면 큰 아이 영어공부를 챙긴다. 그 동안 둘 째 아이 알파벳을 가르친다. 첫아이가 하는 것을 보고 저도 해보겠다고 하는 아이를 말리지 못해서 계획에 없던 둘째의 영어가 시작되었다. 시간은 어느새 6시가 되고 저녁을 준비한다. 저녁을 먹고 뒷정리를 하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잠자리를 살핀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비로소 진이 다 빠진 몸을 소파에 내 던진다. 밀도 있는 하루를 보낸 보람보다 오늘 하루 아이에게 쏟아낸 화에 대해 생각한다. p씨에게 홈스쿨링의 최대관건은 정보와 전략 따위가 아니다. 감정컨트롤이다. 매일의 다짐은 언제나 보란 듯이 실패했고 오늘도 하루의 끝은 자괴감으로 얼룩진다.      


p씨는 자신이 홈스쿨링의 세계에 이렇게 발을 들여놓을지 몰랐다. 남편과 생각이 다르니 그에게서 공부방법이나 교재선택 등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아이 교육에 대해서 모든 책임을 혼자 짊어졌다는 부담감을 느낀다. p씨는 마음이 복잡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신념이 흔들린 데서 오는 혼란, 혹시 늦은 건 아닌가 하는 걱정, 이 방법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답답함, 홈스쿨링을 계기로 아이와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 그것은 총체적 불안감이었다. 나의 무능으로 아이에게 실패한 삶은 안겨주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남편이 아이 공부에 있어 태평할수록 제 마음은 더 조급해져요. 하루 밤에는 그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남편은 경제활동으로 바쁘고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것은 저인데 지금 이대로 가다가 정말 아이의 실력이 뒤쳐진다면 전업엄마인 저의 책임으로 돌아올 것 같아요. 아직 어려서 관대할 수 있다고 해도 정말 공부해야 할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아이의 학업이 부진하다면 온 집안의 원망이 어디로 갈지 불 보듯 뻔 하지 않나요? 집에 놀면서, 애나 키우고 있으면서, 아이 공부하나 못 챙겼냐는 원망은 남편으로부터 양가 어른들로부터 얼마든지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나 남편의 명석한 머리와 모두가 우러러보는 직업을 전제로 한다면 더욱이요. 고생하는 직장맘들께 죄송스러운 말인 줄 압니다만 솔직한 심정으로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 엄마였다면 최소한의 면죄부는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조급함의 근원은 경력단절된 전업주부의 부담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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