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영 엄마라는 틀에 갇혀야하는가
오랫동안 간직해왔던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봇물 터지듯 흘렀다. 흠모하던 소설가의 북토크에 다녀오고 부터였다. 작가의 말들은 가만히 다가와 J씨의 욕망에 말을 걸고 가슴에 오랜 울림을 남겼다. 소설을 쓰고 싶었다. 소설을 즐겨 읽기는 했지만 막상 쓰려고 하니 막막했다.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인문학 공간에서 소설쓰기 강좌가 열린다고 했다. 현직 소설가가 소설에 대한 강의를 하고 글에 대한 코멘트를 직접 한다고 했다. 강의는 저녁 7시부터 9시 까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수업을 위해 두 아이와 남편을 포함해 온 가족의 도움이 동원되어야 했다.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7시. 그녀는 6시 전에 집을 나서야 했고 매주 화요일 저녁시간대에 아이들 맡길 데가 마땅치 않았다. 8살, 6살 두 아이가 한 시간만 버텨주면 되는데. 한 시간의 공백은 tv 만화영화에 맡기기로 했고 아이들도 흔쾌히 동의했다. 그러나 지하철로 이동하는 동안 아이들에게서 대 여섯 통의 전화가 왔다.
“ 엄마 어디야? ”
“ 아빠는 언제와? ”
“ 무서워... ”
전화는 업무 중인 남편에게도 갔을 것이다. 6시 30분에 마치고 나와야 할 남편의 퇴근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은 업무 때문에 마치는 시간이 조금씩 미뤄지기 일쑤였다. 수업은 알차고 좋았지만 집에서 나서기 전부터 동동거리며 내내 불안했다. 불편한 마음은 집에 돌아와서 잠든 아이들을 확인하고서야 가라앉았다. 그럴 때 마다 마음을 다 잡았다. 힘들지만 6개월간의 과정을 무사히 마무리하자고. 소설을 잘 쓰는 것 보다 과정을 끝까지 하는 것이 목표라고.
수업 5주차되던 날 큰 아이가 폐렴을 앓아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출발 시간이 임박하도록 참석 여부를 결정할 수 없었다. 열은 내렸지만 기운을 잃고 누워있는 아이에게 결국 만화를 틀어주고 나왔다. 삼분의 일쯤 가고 있는데 평소 3~5회 오던 전화가 일분단위로 오기 시작했다. 막내가 축 늘어진 누나와 단 둘이 있는 것이 몹시 불안했을 것이다. 아빠의 퇴근은 그날따라 더 늦었다. 둘째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뒤에서 큰아이까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발을 동동 구르는 동안 지하철은 이미 도착지에 가까워지고 지금 집으로 돌아가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릴 터였다. 그녀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다음 역에서 내릴까 하고 있는 데 지금 집으로 간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사태는 일단락되었지만 수업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니 두 아이다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큰아이가 식은땀을 내며 회복하기 위해 혼신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다행이 큰아이의 상태가 차도를 보이고 주말에 예정되어 있던 친정아버지 생신 식사에 갔다. 식사가 끝나자 작은아이가 얼굴빛이 변하더니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이를 챙겨 급히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올랐다. 아이는 차에 타자마자 잠에 들었고 조금 후 이상한 낌새를 느낀 j씨가 뒷 자석의 아이를 돌아보고 까무러칠 듯 놀랐다. 아이는 눈이 뒤집힌 채 사지를 떨고 있었다. j씨는 안전벨트를 풀고 뒷자석으로 넘어가 아이를 안았다. 아이를 끌어안고 이름을 불렀지만 경련은 멈추지 않았다. 혼이 달아난 채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다시 불렀다. 떨리는 손을 가누고 119에 전화를 돌렸다. 그사이 남편은 꽉 막힌 6차선도로에서 초인적인 힘으로 차를 돌려 길가에 주차하고 구급차를 기다렸다. 아이의 경기는 가라앉았고 그 자리에서 기절한 것처럼 고꾸라졌다. j씨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 구급차가 다가왔고 구급대원이 아이의 상태를 보더니 열경기라고 했다. 위급한 상황은 지나갔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낯선동네의 응급실로 향했다. 그 사이 아이는 희미하게 눈을 떴다. 응급실의 의사는 격렬한 경기 후에 잠시 잠이 들 듯이 휴식을 취하는 현상이라며 수액을 놓아 주었다. 아이는 급성 폐렴이었다. 폐렴은 큰아이에게서 둘째 아이에게 고스란히 옮겨간 것이다. 링거를 다 맞고 네 식구는 집으로 돌아왔다. 시름 대는 아이를 달래어 수시로 보리차를 먹이고 약을 챙기고 몸을 닦아 주었다. 죽을 쑤어 떠먹이고 다시 몸을 닦아주고 다시 물을 먹였다. 열이 올랐다 내리기를 반복했고 j씨는 아이 곁에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간병은 계속되었다.
나을 듯 말 듯 며칠을 시름하던 아이는 차도를 보였고 가족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잠든 시각 부부는 마주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며칠 전 급박했던 아이의 경련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 날의 충격을 며칠 만에 입 밖으로 꺼내는 자리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울음을 터트렸고 두 사람의 눈물은 걷잡을 수없이 흘렀다. 그 땐 정말 아이가 잘 못 되는 줄 알았다고,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고, 겨우 말을 이으며 서로를 다독였다. j씨는 앓아 누운 큰 아이를 두고 소설수업에 나서던 날을 떠올렸다. 큰아이라고 겪지 말란 법이 없었다. 내가 배우고자하고 경험하고 느끼고자 했던 욕망과 열정이 한순간에 다 흩어졌다. 모두 부질없게 느껴졌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소설수업의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 선생님 안녕하세요. 수업 참여자 j입니다. 가정일 때문에 더 이상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연락드립니다. 매우 애석하지만 저의 피치 못할 사정에 넓은 이해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전송버튼을 누르고 멍하게 휴대폰을 응시했다. 일주일에 한 번, 단 한 번의 외출도 허락되지 못하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것은 엄마된 사람으로서 무리수인가. 나는 아무것도 시도해서는 안 되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내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시기는 언제인가. 영영 엄마라는 틀에 갇혀야하는가. 그리고 다음날 아침 j씨는 몸을 잘 가눌 수 없었다. 머리가 뜨거웠고 이내 예감했다. 큰아이로부터 작은 아이로부터 온 폐렴이 이제 j씨 차례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