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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 Dec 14. 2020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대지와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람, 조르바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출발한 배는 붉은 노을을 잠시 품은 뒤 물살을 가르는 소리만을 간직한 채 더욱 깊은 어둠 속으로 향했다, 조류상황이 좋지 않아 예정보다 3시간이나 더 걸린 항해 끝에 어둠 속을 밝히는 붉은 불빛을 발견 할 수 있었다. 크레타섬이 보낸 첫 번째 인사였다. 나의 상상 속에선 언제나 크레타를 향해 가는 발걸음은 경쾌했고, 부푼 마음과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실재는 달랐다. 낯선 곳에서 만난 돌발상황에 아내와 나는 신경이 날카로워지며 다툼이 있었다. 지도 한 장에 의지해서 찾아야 하는 숙소는 당최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캐리어 바퀴마저 고장이 났다. 도대체 여기 왜 온 것일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내일에 대한 기대는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그렇게 꿈꿔왔던 조르바와 니코스카잔차키스를 만날 예정이니깐.     


  *


  조르바와의 첫 만남은 학과 동생들과 함께했던 독서모임을 마무리 짓고, 새롭게 시작한 학교 내 독서모임에서였다. 조형, 기계공학, 한문, 수학, 예술문화 등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이들이 모였다. 어색한 침묵의 순간도 있었지만 간단한 자기소개를 시작하자 이내 긴장은 풀어졌다. 앞으로 함께 읽을 책은 각자 한 권씩 추천해서 읽는 것으로 정했다. 누구의 책으로 첫 시작을 하느냐만 남았지만 결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 참가자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를 추천하며 이렇게 얘기했다.     


  ‘저는 독서모임이 처음이에요. 그런데 독서모임을 한다면 꼭 이 책을 같이 읽고 싶었어요. 제게는 ‘인생책’입니다. 제가 여기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것 같은데, 27살 여자가 대학원생도 아닌 학부생으로 대학을 다니고 있다면 좀 늦은 편이죠? 이 나이에 대학원도 아니고 학부생으로 다시 학교를 다닌다는 게 남들이 보기엔 정상으로 보이진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하고 싶은 게 있었고, 늦진 않았을까 고민하던 순간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게 되었어요. ‘자유란 무엇인가, 나는 자유인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었고, 책을 덮는 순간, 망설이던 마음을 내려놓고 결정을 할 수 있게 도와준 소중한 책이거든요. 여러분에겐 이 책이 어떤 의미로 읽히게 될지 너무 궁금합니다.‘     


   이미 조르바를 몇 번이고 읽은 사람, 그 책 너무 읽고 싶었다며 반색하는 사람도 있었다. 책의 제목조차 처음 들어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이 책이 궁금해졌다. 우리는 만장일치로 『그리스인 조르바』를 함께 읽을 첫 번째 책으로 결정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걸렸을지도 모를 중대한 선택을 도와준 이야기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재빨리 학교 앞 서점으로 달려갔고, 다행히 재고가 있었다. 책장에서 책을 꺼내 드는 순간 덜컥 겁이 났다. 482페이지라는 엄청난 분량에 주눅이 들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4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다음 모임까지 남은 일주일 동안 이 책을 내가 완독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지하철로 집과 학교를 왔다 가며 열심히 읽었다. 나름 ‘고전’이라는 책을 처음 읽는 순간이었고, 처음 쥐어보는 양장본은 책 읽는 맛을 더욱 맛깔스럽게 만들어줬다. 괜히 ‘나 이런 책 읽는 사람이에요’하고 자랑하고 싶은 맘에 일부러 책 표지가 잘 보이도록 들고 읽기도 했다. 하지만 자기계발서 위주로 읽어왔던 지난 1년 동안의 책력(冊力)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괴물같이 섬세한 문장을 삼킬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고작 조르바가 뱉어내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며 읽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알겠다. 조르바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 『그리스인 조르바』 中


  책을 읽으며 도대체 대지와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는 어떤 모습일까.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외치면서, 인간이 무슨 뜻이냐 묻는 질문에 ‘자유라는 거지!’라고 당당하게 정의내릴 수 있는 조르바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모든 세상이 정해놓은 규율, 규정을 무시한 채 온전히 자신만의 판단과 기준으로 살아가는 조르바를 보면서, 내가 단 한 번도 살아내지 못한 삶에 대한 동경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때서야 그녀가 지금의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조르바는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이 살아내고 싶은 삶을 살아내라고. 그녀는 조르바의 설득에 넘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조르바의 설득에 넘어가 버렸다. 대학생 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활동들을 열심히 하느라 대학을 7년이나 다녔고, 내 가슴이 외치는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조르바는 내 삶의 언저리에 늘 머물고 있었고, 선택의 기로에선 언제나 내 앞을 가로막으며 ‘이게 더 너를 자유롭게 만드는가?’ 라는 질문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


  언젠가 크레타 섬을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현실이 되었다. 신혼여행을 그리스와 터키로 가게 되면서 크레타를 일정에 넣었다. 이유는 하나, 크레타에 잠들어있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지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 간다면 ‘자유란 무엇인가’ 라는 거창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힘들게 도착한 숙소는 모든 것이 완벽했고, 아내와도 빠르게 화해했다. 이제 내게 남은 건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조르바의 메시지였다.     


  다음 날 아침,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으로 향했다. 세계적인 대문호의 무덤답지 않게 조용했고, 소박했다. 방문객은 우리 외에 아무도 없었다. 이 순간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만끽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수많은 책에서, 작가들의 인터뷰에서 봤던 그 유명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눈앞에 나타났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 30분 정도 멍하니 묘비만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그렇게 하면 자유에 대한 전언이 내려질 것처럼. 시간은 흘렀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그저 눈앞에 있는 건 우뚝 서 있는 외로운 돌비석일 뿐이었다. 결국 답은 찾지 못한 채 떠나야 했다. 아쉬운 마음에 맘에 드는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삼각대를 꺼냈다. 제대로 고정이 되지 않아 살펴보니 다리 부분이 파손되어있었다. 맘을 내려놓고 카메라를 다시 분리시키려 하는 순간 손에서 미끄러진 카메라는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앉은 상태에서 떨어져서 큰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우연의 일치인지 렌즈는 작동을 하지 않았다.      


  ‘아직 여행 4일째인데, 신혼여행의 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아직 아테네, 카파도키아, 이스탄불은 가보지도 못했는데, 그곳에서 보게 될 황홀한 경치, 경험, 순간들을 렌즈 속에 담아야 하는데 이 카메라 없이 어떻게 하지?’  


  여러 생각이 한순간 머릿속을 꽉 채우더니, 한동안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벤치에 앉아서 크레타의 도심을 끼고 있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옆에 있던 나의 아내도 그 침묵에 동참해주었다. 나 못지않게 그녀 역시 상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간의 침묵이 있은 후, 내 머릿속엔 다시금 그의 묘비명이 떠올랐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에 작은 외침이 들려왔다 ‘카메라의 구속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라!’ 생각해보니 여행을 시작한 후 줄곧 카메라에 구속되어 있었다. 여행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만 같았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 이 세 가지를 깊이 간직하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지만, 여행지에서 겪은 아내와의 다툼을 돌이켜보니 모두 제대로 된 사진 한 장을 찍지 못한 아쉬움에 있었다. 왠지 조르바가 내게 ‘여행에서의 자유’를 알려주기 위해 카메라를 망가뜨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조르바는 여행자가 가져야 하는 중요한 ‘자유’를 그렇게 알려주었다. 이후 우리의 여행은 스마트폰 사진만으로도 충분했고, 조금 더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하며 순간을 공유 할 수 있었다.     


  여러분의 삶에 『그리스인 조르바』가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조르바를 만나게 된다면 한 번쯤은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면 좋겠다. 분명 밑지는 장사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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