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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Mar 30. 2021

14.사죄

사람은 죄를 짓는다. 사람만이 죄를 짓는다. 인간만이 인간의 행위를 죄로 규정한다.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죄는 사람을 시험에 빠져들게 한다. 용서를 구할지 아니면 무시하며 살아갈지. 죄는 인식의 문제일뿐라며 자위한다. 내가 인식하지 않으면 죄가 아니다. 죄는 신념의 문제라며 비아냥 거리기도 한다. 내가 믿지 않으면 죄가 아니다. 죄라고 믿지 않으면 된다.


근원적으로 죄와 분리되는 방법은 '사람'이길 포기하는 일이다. 속세에서는 사람에게만 죄를 묻는다. 길 고양이가 쥐를 먹었는 일을 죄라고 부르지 않는다. 고래가 수십억의 플랑크톤을 한번에 먹어치우는 일을 학살이라 부르지 않는다. 죄는 오직 사람만 저지를 수 있다.


죄는 합의로 규정되고, 처벌로서 확정된다. 합의로 정해진 속죄의 방식을 끝내고 나면 죄는 사해진다. 씻을 수 없는 죄라는 표현을 자주 쓰지만 인간은 그런 죄를 지을 수 없다. 인간은 필멸한다. 필멸의 존재는 육신이 유지되는 기간만큼의 죄를 지을 수 있을 뿐이다.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죽으면 잊혀지고, 사해진다. 필멸한 인간이 저지르는 죄는 그렇다.

 

죄지은 인간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고루한 대답이지만, 정답은 없다.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무시하고, 누군가는 반항한다. 나의 죄는 죄가 아니라며 항변한다. 죄는 합의에 의해 규정되는 바 항변의 여지는 있다. 


나 역시 살아가며 많은 죄를 지었다. 유난히 그 죄의 감각에 민감한 사람이기도 하다.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죄책감이 있다. 죄책감은 내가 지은 죄를 어떻게 대할지 결정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죄를 안고 살아갈지. 죄를 지을 수 있는 인간이라는 지위마저 버려야할지. 죄 짓는 존재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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