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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Feb 28. 2021

고가 후미타케, 기시미 이치로,  '미움받을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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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수도 없이 봤다. 대형서점. 대학 도서관. 공공 도서관. 카페 옆자리 테이블 위.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도. 이미 수 번은 읽은 듯한 착각을 할 만큼 자주 봤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한 번도 읽지 않았다.


'용기'라는 단어 때문이다. 단어가 문제는 아니다. 용기는 인간에게 중요한 가치이며 덕목이다. 성장하기 위해서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개인의 성장, 도약과 연관되어 있다. 그렇기에 철저히 자발적으로 나와야 한다.


나는 강요된 용기를 싫어한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용기를 요구한다. 자신의 권력이나, 사회적 자원을 동원해서 압박한다. "용기를 내라!"라고 소리친다. 그 결과 누군가 '용기'를 낸다. 삶의 방향을 틀기도 하고, 이전에 없었던 시도를 할 때도 있다. 그렇다 해도 그것은 용기가 아니다. 권력과 권위에 순응하는 일에 불과하다. 그 윽박에 용기를 낸 인간은 스스로가 '용감해졌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더 순응을 잘하는 인간이 되었을 뿐이다. 틀어진 삶의 방향에서 넘어졌을 때. 이전에 없던 시도로 이전에 없었던 좌절을 맛보았을 때. 순응했던 인간은 수용하지 못한다.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거나, 자신에게 윽박을 질렀던 인간의 탓이라며 같이 윽박을 지른다. 강요에 의한 선택은 개인의 주체성을 박탈한다. 주체성이 없는 선택을 개인은 받아들일 수 없다.


책 제목에 들어있는 '용기'는 대개 강제적이다. 삶을 위해서라면 용기를 내야만 한다는 윽박. 용기를 낼 수 없다면 넌 계속해서 불행할 것이라는 협박. 내용의 차이는 있겠지만 정말 다양한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보편적인 뉘앙스가 싫다. 교보문고 자기계발 코너에 모여있는 '용기'가득한 책들을 보면 징글징글하다.


용기를 내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 용기의 방향이나 모양도 일정하지 않다. 너와 내가 다르다. 그렇다면 너와 나의 용기의 모양이 다르다. 내가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쉽지 않았을 사연이 있다. 나에겐 용기이지만, 너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다는 것은 용기를 냈다는 증표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용기를 내서 살아간다.  이미 자신만의 방식으로 목숨을 걸고 용기를 내고 있는 이들에게 소리를 친다. 더 용기를 내야 한다며 재촉하는 글은 살아가는 이들을 얼마나 비참하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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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용기를 재촉했던 수많은 이들의 뿌리다. 어째서 용기를 내야 하는지에 관한 성실한 대화록이기도 하다. 책이 말하는 바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한다. 현재의 선택이 중요하고, 인간관계가 핵심적이며, 공동체에 대한 공헌감이 개인의 자존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개인이 읽고 삶을 개척해나가기에 아주 좋은 질문과 대답들이 많이 있다.


문제는 슬프게도 이 좋은 내용이 출판되어버렸다.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많은 이들이 책을 샀고, 그중 일부는 읽었다. 독자 중 일부는 자신보다 힘이 약한 자에게 삶의 자세를 강요할 권력이 있다. 회사 간부 일 수도 있고, 학교의 교사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부모일 수도 있다. 그들이 이 책을 읽고 '행복'을 향한 길을 전도하고, '용기'를 가르친다. 개인이 삶에서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우고 익혀나가야 하는 '삶'을 강제로 욱여넣는다. 삶을 욱여넣는다니 너무나 큰 비극이고, 끔찍한 폭력이다.


인쇄되어 있는 이 좋은 이야기를 말하고 가르친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며 윽박을 지르고 진절머리 나 한다. 그 스스로조차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음에도 말이다.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라는 글을 읽고서 모든 관계가 이미 수평적이라 믿는 사람도 있다. 어제까지는 수직이었지만 오늘부터는 동무고 친구다. 왜냐? 그가 이 책을 읽었고,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고 믿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에 눈을 돌리라는 이야기를 타인에게 마음대로 이래라저래라 해야 한다는 말로 듣는 이도 있다.


개인이 자신의 마음을 가꾸기 위해 읽어나가는 책이었으면 한다. 자신의 마음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속상해하는 만큼 타인도 쉽지 않음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함부로 타인에게 가르침을 전도하지 않길 기도한다. 가르침보다는 지지와 연대를 전하기 위한 고민을 시작했으면 한다. 난 부디 이 책의 쓰임이 거기에서 멈추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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