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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Oct 14. 2020

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1.

임계장 이야기를 읽었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이 임계장이다. 4차 산업혁명 같은 혁신적이고, 반짝이는 단어들은 세상에 널리 널리 퍼진다. 그 자체로 새로운 희망으로 번쩍인다. 임계장처럼 비참한 세상을 보여주는 단어는 음지로 가라앉아서 더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준다. 임계장이라는 단어를 처음 듣고서 '고려장'이 떠올랐다. 찾아보니 실제로 행해졌는지 알 수 없는 유언비어라고 하지만 어쨌든 쓸모없는 존재가 스스로를 지탱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산 중턱에 내다 버렸다는 이야기. 임계장과 무엇이 다른지 고민해봤지만. 차이를 알 수 없었다. 고려장은 혈족이 직접 하는 것이고, 임계장은 사회 공동체가 그들을 내몬다는 차이일까. 

2.

임계장은 다양한 일을 했다. 고속 터미널 배차장, 오래된 아파트 경비원, 신축 고층 빌딩 경비원, 다시 고속 터미널 경비원. 일하는 현장도 해야 하는 업무도 조금씩 달랐지만 그가 받았던 대우는 비슷하다. 먼지가 날리는 곳에서 일하며 마스크를 요구하면 '노인이 살아봐야 얼마나 더 살라고 하느냐'라고 비아냥 거린다. 조용히 일하다 죽으라는 메시지가 모든 일터에서 흘러나온다. 아프면 그만둬야 한다. 산재처리니, 병가니 하는 것은 꿈에서도 안 나올 이야기다. 이런 조건에서도 임계장은 정말 성실하다. 38년 공기업 정규직으로 살아온 힘일까. 말도 안 되는 근무환경에서 자는 시간을 줄이고, 자신의 업무 범위를 넘나들며 일이 돌아가게끔 하려고 애쓴다. 수당은커녕 최저임금도 챙겨주지 않는 직장에서 그는 무섭게, 그래서 더 슬프게 성실하다. 이 책 자체도 그 노동조건 속에서도 하루하루 메모하고 기록하는 성실함이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지도 못할 이야기다. 책을 읽으면서도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일했을 텐데, 언제 시간을 내서 메모하고 적고 정리했는지 경의롭다. 

3.

그 성실함은 정규직, 중산층이었던 삶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열심히 일하면 고용이 보장되고, 수당이 주어지고, 회사와 주변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조건에서 근 38년을 일했다. 그에게 노동을 당연히 성실하게 죽을 둥 살 둥 해야 한다. 공기업 정규직을 벗어난 곳에서 그가 살아왔던 세상의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열심히 하면 빨리 다치고 빨리 쫓겨날 뿐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알아주지 않는다. 알아주기는커녕 업무와 아무 상관 없는 대표의 기분, 정규직의 기분을 기준으로 평가당한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는 채 피지 못하고 떨어지는 꽃봉오리를 보고 안타까워한다. 정말 성실하고 선한 인간이다. '성실한 자에게 복이 있다는' 이 나라의 오랜 속담에 따르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이토록 성실히 선한 마음으로 해내는 노동자에게 작은 복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복은 없었다. 일을 하면 할수록 몸은 아프고, 아프면 아플수록 더 일을 하기는 어려워진다. 그는 결국 4번째 직장에서 일을 하다 쓰러지고 병원에 간다.

4.

그가 일했던 고층 빌딩에서 경비 노동자들에게 마스크를 쓰지 못하도록 강제하고 있었다. 아마 입주민들이 기분 나빠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명만 독감에 걸려도 모든 경비원이 옮았다는 고속 터미널에서도 마스크는 없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마스크가 필수가 된 지금 그들은 마스크를 끼고 있을까. 이제는 아마 마스크를 하고 있지 않으면 징계를 받고, 시말서를 쓰게 되었을 거다. 화단에서 잠시 숨어서 마스크를 내리고 밥을 먹어도 안되겠지. 자기 목숨은 구할 수 없는 얇디 얇은 일회용 마스크를 입주민의 건강을 위해 끼고 있을터다. 여전히 고속버스터미널에서는 사회적 거리는커녕 누울 자리도 없이 옹기종기 모여서 쉬고 있을 것이고. 하루하루 코로나에 걸리지는 않았을지 조마조마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을 거다.

5.

'어쩜 인간에게 이렇게까지 할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참기 보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내용과는 달리 책은 쉽게 읽혔다. 함께 읽었던 사람들은 작가님의 깔끔한 문장을 이유로 들었지만, 나는 좀 달랐다. 책의 한 페이지를 오래 들여다보기가 어려웠다. 화가 나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다. 내 일 같기도 했고, 우리 가족의 이야기로 느껴지기도 했다. 글에 적당한 거리를 두기가 어려웠다. 거리를 둘 수 없어서 페이지에 머무는 시간을 줄였다. 빨리 읽고, 빨리 넘겼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는 엄마 생각, 일하다가 해고돼서 쉬고 있는 동생의 기분. 몇 년을 경비 노동자로 살다가 몸과 마음이 둘 다 아파서 떠났던 아빠 이야기. 이것저것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돈과 안정적인 직장으로 남지 않아서 굶어죽을까 불안해하는 나. 머릿속이 어지러웠고, 속이 매스꺼웠다. 불안했고 무서웠다. 편의점 노동을 하고 있는 내 미래는 임계장이 아닐까 두려웠다. 한 인간의 비참함을 보고서 내가 미래에 마주할지도 모를 비참함을 계산하고 있는 내가 부끄러웠다. 

6.

이 책을 읽는 사람의 생의 역사와 현실의 조건에 따라 다른 감상이 내놓을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만 이 책은 반응이 더 큰 격차를 보여주지 않을까. 어릴 적부터 가난, 빚, 압류, 돈에 쫓기며 살아온 나같은 사람과 가난한 이야기는 책이나 기사에서나 볼 수 있는 안타까운 이야기였던 사람. 이 둘이 책을 바라보는 시선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의 인간에게 임계장은 스스로의 미래이자, 부모와 친지들의 현재다. 객관화할 수 없는 냉혹하다 못해 끔찍한 현실이다. 후자의 사람들에게는 한국 사회의 빈부격차와 모순을 보여주는 한 예시. 그것을 담담히 담아낸 인간의 에세이로 읽힌다. 사회가 양극화되면 이렇듯 한 사연을 받아들이는 감수성도 양극화된다.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아온 사람과 그 이하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감수성이 다르고, 기본 감정이 다르다. 

7.

참 좋아하는 장르의 책이라 반가웠다. 노동자로 살아가는 사람이 노동을 하며 쓴 자기 이야기. 부조리한 일터이고, 화도 나지만 그 속에서 아름다움도 느끼고 동료애도 느낀다. 마냥 비참하게 죽음을 기다리며 노동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노력하고 좌절도 하는 입체적인 노동자. '비정규직 경비 노동자의 비애'라는 사회 현상으로 요약할 수 없는 다양한 존재. 돈 많고, 글도 잘 쓰고, 학벌도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내가 궁금해하지 않아도 내 귀로 흘러들어오고, 내 몸에도 새겨져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는 마냥 불쌍하지도, 모든 것을 노력으로 돌파할 수 있다고 믿지도 않는 그 현실을 노동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서사와 이야기다. 그들은 이 사회에서 정말 많지만 그 이야기는 정말 들리지 않는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서사를 입체적으로 써 내려갔으면 한다. 찾아듣지 않아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현실의 모순을 온몸으로 견디며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가 명확히 보이길. 이 책을 읽고서 새벽길을 걸으며 괜히 경비실을 한 번 더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그 안에도 인간 노동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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