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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Aug 24. 2022

후회

  한다. 활동하던 조직이 깨부숴지고, 진행하던 일들이 헝클어졌다는 이제보면 ‘사소한’ 그 일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흘렀고, 마음도 거리를 두고 있는 지금 보면 그렇다. 일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오롯이 나의 능력, 우리의 역량에만 달려있지 않다. 수많은 외부요인들과 우연이 작동한다. 가령, 늘 4명을 넘지 못하던 인문학회의 학회원이 10여 명으로 늘어나는 것은 나의 홍보능력과 세미나 진행실력에 따른 결과가 아니었다. 시대적 흐름, 재학 중이었던 대학의 분위기, 누군가의 별 것 아닌 결심과 연락해볼 용기 등 상상도 할 수 없는 선택과 마음이 그 속에 그물처럼 엮여있다. 개인의 역량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활동가 조직의 이론과 그것을 따르던 기풍은 틀렸다. 그때 나와 동료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성공이 오롯이 우리의 성과가 아니듯이 실패가 완전한 우리들만의 탓도 아님을 수용하고 서로 토닥이는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일’은 별 것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진정으로 후회하는 일은 친구와 동료들이 아픔을 말하고, 도움을 호소하는 순간을 바보같이 피해버린 것이다. 혼란스럽다는 후배, 너무 힘들다는 동료, 도움을 청하는 이들의 말을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며 외면했다. 나 역시 힘들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냈다며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한계는 있었을지언정 들어주고 도움을 주기 위해 애는 써볼 수 있지 않았을까. 나를 지키는 일에만 급급했던 선택이 후회스럽다. 


  이제와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정토불교대학을 신청하는 일 그리고 비폭력대화 강의를 듣기 위해 수강료를 모으는 일들은 이 후회에서 비롯되었다. 다시금 누군가 용기를 내서 나에게 상처와 아픔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공부하고, 훈련하고 어제보다는 성숙한 인간이 되어서 나를 지키면서도 타인을 위로하고 지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간절한 욕망이다. 앞으로 활동가로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는 안개 속이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다. 다시는 친구들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외면하고 싶지 않다. 이 죄책감을 계속 간직하고 살아가는 일이 나를 괴롭게 하고, 하늘이 흐려지고 비만 내리면 혼자 눈물을 흘리는 삶의 연속일지라도 노력은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나의 계절>이라는 웹툰에서 과거의 친구에게 상처를 준 주인공에게 누군가가 말한다. 

“…(중략) 그러니 네가 그 애를 상처 준 사실은 평생 변치 않을 거야. 그러니까 계속 후회해, 후회하고, 후회하고, 앞으로도 죽을 만큼 후회했으면 좋겠어. 어설프게 걔를 못 잊을 바에는 그 죄책감을 절대로 잊지 말고 괴로워해. 그 친구를 다시 만났을 때 네 진심이 조금이라도 닿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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