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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Sep 14. 2022

# 생계를 견디는 노동.

생계를 견디는 노동의 견고함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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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편의점에서 주 4일 40시간 노동하고 있다. 함께 살고 있는 엄마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10년도 넘는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 동생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음식점에서 일하다가 강제 퇴사를 당하고 실업 급여를 받으며 호흡을 고르고 있다. 


  우리 가족은 은행에 면허만 가지고 가도 대출이 된다는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 아니고 평균 연봉이 1억에 육박한다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다. 나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하한선을 간신히 보장받는 시급제 아르바이트 노동자이고, 엄마도 비정규직으로 10년 이상 일하고 있다. 동생도 점장으로 불렸지만 시급제로 월급을 받는 노동자였다. 


 변호사나 교수처럼 사회적으로 발언권을 보장받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도 않고, 우리의 노동이 사회적 생산에 기여한다는 감각도 없다. 그저 한 달을 먹고살기 위해서 묵묵히 어떤 일이든 주어지면 해낼 뿐이다. 가끔은 엄마의 직업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이고, 아빠가 대학 교수 같은 전문직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인생의 평행우주를 그려본다. 그 세계 속 내 삶은 더 안정적이고, 더 많은 가능성을 보장받고 있지 않을까. 현생 우주의 처지를 생각하면 씁쓸한 마음이 올라와서 목구멍이 쓰다. 그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를 때면 엄마의 노동이 부끄럽고, 내 노동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순간에 나는 엄마의 노동과 나의 노동, 동생의 노동이 부끄럽지 않다. 자신의 삶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힘과 마음을 짜내서 일터로 나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고깃집이든, 편의점이든, 마제 소바집이든 어디에서 일하던 노동자에게 노동은 결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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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가족의 삶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엄마가 계속 노동했기 때문이고, 불안한 마음을 덩어리로 끌어안고서도 내 삶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내가 생계를 위해 노동하기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터로 나가기를 멈추지 않았기에 나와 가족의 삶은 이어질 수 있었다. 생계가 지속되어야 다른 삶도 고민할 수 있고, 의미를 들여다볼 여유도 생긴다. 아무리 거창한 이론을 들이대 봐도 지속되지 않는 생계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편의점 노동을 벗어나서 활동가로서 모임을 만들고, 단체에서 경력과 전문성을 쌓으면서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당장 편의점 노동을 그만둔다고 해서 마법처럼 원하는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고, 기회가 올 때까지 생계를 유지하고 삶을 지속해야 한다. 내 생계가 지속되어야 성장도 할 수 있고, 다른 미래도 꿈꿀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노동문제의 중심이 대기업 정규직이나 전문직에게 포커스 맞춰져 있는 것이 불편하다. 이 사회에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 하청, 일용직, 알바 같은 딱지를 안고서 매일 일터로 향한다. 그들의 노동은 대기업 정규직이나, 전문직들에 비해 무가치하지 않다. 그들은 삶을 책임지기 위해 오늘도 일터로 나간다. 


  나의 노동이 마냥 자랑스럽지는 않다. 누구에게든 자신의 노동이 싫고, 일터가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비정규직일수록, ‘알바’라고 불릴수록, 하청노동자일수록 그렇다. 그럼에도 자부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오늘도 내 삶을 버려두지 않고 지속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라고 토닥인다. 엄마가 일터로 나가는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깝고 부끄러울 때가 많다. 자식으로서 경제적 성공을 이루지 못해서 엄마가 고생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엄마를 불쌍하게만 여기지 않으려고 한다. 엄마는 스스로의 삶과 가족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일터로 향한다. 고되지만 책임질 것이 있고, 그 속에서 나름의 자부심과 즐거움이 있다. 


  엄마는 불쌍한 노동자가 아니고, 나는 비참한 노동자가 아니다. 우리는 각자의 일터에서 자부심과 즐거움 그리고 부끄러움을 느낀다.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노동을 멈추지 않는 우리 가족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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