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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Sep 15. 2022

경청 준비

듣기 위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누군가 말해도 들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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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틀에 한번 꼴로 오후 2시쯤이 되면 중년 여성이 가게에 들어온다. 표정을 보면 막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처럼 보인다. 피로에 절여진 몸의 자세다. 그래서 그런지 늘 구매하시는 것도 박카스 아니면 위생천이다. 피곤하고 지치면 소화도 안된다. 음료를 구매해서 그 자리에서 드시고 가게를 나간다. 나는 실은 이분에게 화가 나 있다. 


    이 사람은 나의 어떤 말에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와 나의 결제는 대개 이런 식이다.



삑삑

“900원입니다.”

신세계 포인트 카드 있으세요?

(천 원짜리 지폐를 준다)

“잔돈 여기 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묵묵 부답)



    결제하는 동안 내 말에 한 번을 대꾸하지 않는다. 앞에 있는 사람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 같아서 불쾌하다. ‘편의점 알바나 한다고 무시하나’하는 구린 생각이 마음에 쌓인다. 4개월 동안 수 십 개의 박카스와 위생천을 계산했지만 한 번도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

    중년 남성들, 아저씨들이 말에 대답하지 않는 일은 짜증 나지만 크게 분노하지 않는다. 그 나이대 남성들은 무례하다는 경험 데이터가 넘쳐난다. 가게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기대하지 않는다. 난동만 부리지 않으면 감사하다. 가끔 인사하는 사람이 있으면 ‘대체 왜 인사를 하세요?’하고 놀라기도 한다. 

기분은 나쁘지만 기대가 없으니 화도 안 난다. 얼른 결제를 끝내고 내보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중년 여성들, 청소년들, 또래로 보이는 사람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기대한다.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가장 어리석은 것이 손님에게 기대하는 일임을 모르지 않지만, 본능적으로 인간적 기대를 하게 된다. 통상 예의를 지켜주는 사람들이라는 경험치에서 나온 데이터가 있다. 이런 사람들 조차 말에 답하지 않고 계산만 하고 휙 나가버리면 기분이 확 상한다. 기대가 좌절되어 마음이 아프다. ‘당신들까지 나를 무시하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합니까!’ 하는 사소한 절망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가 들어왔다. 박카스 2병을 구매했다. 가격은 1800원. 



“1800원입니다.”

(네~)

뭔가 소리가 들리긴 했는데 포스기 삑삑 소리라고 생각했다.

“잔돈 여기 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네~)


-

    분명하게 들었다. 그가 대답을 했다. 환청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포스기 삑삑 소리가 사람 목소리로 들렸나 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지난 4개월 간 그와 포스기 앞에서 만난 시간을 되짚어 봤다. 불길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라왔다. 실은 그는 4개월 간 계속 대답해 주었던 것이 아닐까. 그의 작은 목소리에 집중하지 않아서 듣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그가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가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듣지 못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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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몇 번의의 경험으로 한 사람을 재단하고 나면 편견이 생긴다. 편견은 큰 계기가 없는 한 그와의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작동한다. 그에 대한 나의 편견도 마찬가지였다. 부끄러워서 창고에라도 들어가서 숨고 싶었다. 그는 분명 말했지만 내가 듣지 못했다. 그걸 빌미로 그에게 쌀쌀맞은 태도로 대하며 심술이나 부리고 있었다. 나의 부족을 빌미로 타인을 증오하기에 바빴다. 그가 나름의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참으로 빈곤한 삶이다 싶었다.


    다음 주부터라도 그가 오면 더 열린 마음으로 친절하게 두 손 모아 잔돈을 드려야겠다. 혼자 오해하고 혼자 사과하는 일도 그리 제정신은 아니니 사과도 혼자만 아는 방식으로 해야겠다. 너무 미안하고 부끄럽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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