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망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mang Jul 20. 2023

할머니, 내 삶에 많은 걸 숨궈준 사람

김달님 <나의 두 사람> 출판사 어떤 책


내 삶에 많은 걸 숨궈준 사람


김달님 작가의 <나의 두 사람>은 할머니, 할아버지, 손녀딸이 서로의 사랑에 기대어 함께 살아온 이야기이다. 작가의 조부모님이신 두 분이 손녀딸 김달님 작가에게 밥을 먹이며 테를 만들어주고 마음에 많은 것을 숨궈둔 시간들이 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돌봄, 편견,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나이 많은 조부모의 시간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조바심, 미리 그리워하게 되는 세 사람의 시간이 고스란히 이 책 안에 녹아있다.


차분한 글투를 따라가다 보면 속수무책으로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이 세 사람의 이야기가 너무 아름답고 아프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아직 살 날이 팔팔한 손녀와 죽음을 가까운 곳에 맡겨둔 사람같이 구는 두 사람. 그들은 서로 조바심을 주고 동동거림을 받고 촌스러움을 보여주고 어색함을 들킨다. 김달님 작가는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성실하게 기억하고 기록했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의 이야기는 책의 물성을 가지고 나에게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마구 샘솟는 할머니에 대한 잊고 있던 기억과 내가 받았던 우직한 정성 가득한 사랑으로 주체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읽었던 그 무렵, 나는 자주 조바심이 났다. 할머니는 나보다 이미 너무 오랫동안 살아낸 사람이었고 자주 기억을 잃었고 넘어졌고 다쳤다. 하루는 팔이 부러지고 허리뼈에 금이 가고 코가 깨지는 식이었기 때문에 동동거리게 되었다.


다행히도 할머니는 자주 고꾸라지면서도 매번 다시 일어났다. 자주 쓰러지면서도 한 달에 한번 연금을 직접 인출하러 은행에 갔고. 가족들 입에 넣어줄 과일이나 생선이나 과자를 사 왔다. 때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무도 사지 않을 시장 한복판에서 두툼하고 투박한 양말 여러 뭉치를 사서 건네줬다.


할머니는 그렇게 계속 뭔가를 주고 또 주고 또 주고 싶어 했다.


나는 할머니가 언제고 이것들을 가져다줄지 모를 일이라, 과자는 받자마자 가져와서 냉동실 안쪽에 넣어두었고 양말 뭉치는 옷장 한편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할머니에게 이것들을 받을 수 있을 거라 믿고 싶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것들을 함부로 소비하지 않은 나를 얼마 지나지 않아 기특하게 여기게 되었다.


할머니가 횡단보도를 건너다 트럭에 치이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고. 이후 할머니는 여러 차례 생의 고비를 넘나들며 요양 병원 병상 하나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할머니가 쓰던 살림살이는 병상 옆 작은 테이블과 옷장 하나로 줄여졌고. 가족들 곁에서 평생 머물던 그녀는 낯선 이들과의 단체 생활을 아흔이 넘은 나이에 시작했다. 코로나로 인해 일주일 한 번 10분 면회가 그녀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데. 차로 4시간 넘는 거리에 살고 있는 나는 몇 달 건너 한 번 딱 10분 그녀를 만나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다. 그녀는 매번 "아가" 하면서 나를 반겨주고 손을 조물조물 만져주고 붙어버릴 것 같은 눈꺼풀을 힘겹게 뜨면서 나와 눈을 마주친다.


김달님 작가님의 <나의 두 사람>을 처음 읽고 2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길어 올렸다. 김달님 작가가 들려준 세 사람의 이야기를 마중물 삼아 가능했던 것이다. 번뜩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면 조금씩 써놓은 짧은 글이 다지만 내가 아직 할머니를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고 궁금한 일은 물을 수 있는 때라 몹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와 손을 잡고 누워있는 일상, 티브이를 보는 할머니 옆에서 하릴없이 뒹굴거리는 일상, 나는 거실에 할머니는 자신의 방에서 그냥 상대방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느끼며 안온함을 느끼던 일상은 역시나 귀한 줄 모르고 낭비해 버린 나지만.


할머니와 나의 이야기를 조각조각이라도 주워 담을 수 있었고 지난 시간들을 복기하며 글 안에 할머니를 새겨 넣을 수 있었다.


나는 김달님 작가에게 갚지 못한 빚을 졌다.


김달님 작가님의 <나의 두 사람>을 처음 읽고, 2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사이 김달님 작가님의 할아버지, 할머님께서는 소천하셨다.


<나의 두 사람>의 10 문장


8쪽. 그들이 준 사랑에 작은 대답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보낸 시간들을 쓴다.


63쪽. 할아버지는 텃밭뿐 아니라 내 삶에도 많은 것들을 숨궈 준 사람이다.


76쪽. 어떤 성실함은 때로 슬픔으로 다가온다.


146쪽. 내 몸 안에도 할머니의 밥을 먹고 새겨진 테가 있을 것이다.


161쪽. 차 뒷좌석에서 각자 최선을 다해 꾸민 세 사람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색하고 촌스러워 웃음이 났다.


164쪽. 뷰파인더로 어색하게 브이를 그린 할아버지와 웃음이 터진 할머니 얼굴이 보였다. 놓칠까 봐 서둘러 셔터를 눌렀다. 벌써부터 그리움이 스며들어 왔다.


188쪽. 나도 가 버리면 이 집엔 또 두 사람만 남을 텐데 서로 언성을 높일 둘의 모습을 떠올리면 마음이 무거웠다.


193쪽. 할머니는 엄마가 아주 어린아이를 두고 떠났다는 사실보다 세상 전체를 두고 떠났다는 거짓말이 내게 덜 상처가 되리라 믿었을 것이다.


209쪽. 너는 둘도 없는 자식이었어.


216쪽.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모두 늙고, 언젠가 사라진다. 그걸 알면서도 내 부모의 늙은 모습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겁이 많은 나는 살다가 문득 발을 동동 구르는 기분이 든다. 우리 사이에 50년이라는 시간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서, 항상 50년 어린 자식일 뿐이라서 어떻게 이 시간을 지나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나와 다른 게 그들은 가끔 친숙한 곳에 죽음을 맡겨 놓은 사람들처럼 군다. 마치 언제라도 그것을 찾으러 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이.

매거진의 이전글 맷집 좋은 감성, 반복되는 희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